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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렬과 수치, 절망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았지만”

기사승인 2023.12.04  14: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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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주간의 “노조법 2·3조 즉시 공포 촉구 종교인 금식기도”를 돌아보며

▲ 11월 13일부터 12월 1일까지 노조법 2·3조 개정안 즉시 공포 촉구 종교인 금식기도가 진행되었던 감리회관 앞 금식기도천막 ⓒ이정훈

지난 11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대로 22년 간의 싸움 끝에 드디어 노동자들의 ‘노동자성’과 소위 원청의 ‘사용자성’이 법으로 규정된 것이다.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한(恨)이 조금이나마 풀어지는 듯 했다.

하지만 그야말로 기쁨도 잠시, 종교계나 노동계는 또 다른 걱정거리에 휩싸이고 있었다. 국회를 통과한 법이 정부로 이송되고 난 후, 현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이른바 거부권이 행사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이를 곁에서 지켜보며 종교계의 목소리를 대변해 왔던 대책위 관계자 역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길래 왜 그런 싶었더니 바로 거부권 행사 여부로 마음이 편치 않은 상황이었다.

이러한 예상이 보편화되면서 종교계도 노동계도 대책 마련에 분주해졌다. 당사자인 노동계는 연일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노조법 2·3조 개정안 즉시 공포를 촉구하고 나섰다. 종교계는 종교계대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이야기 하나

고심 끝에 종교계가 꺼내든 카드는 11월 13일부터 광화문 감리회관(동화면세점) 앞에서 ‘3개 종단 노동연대’와 ‘노조법 2·3조 개정 촉구 개신교대책위’가 공동으로 “노조법 2·3조 즉시 공포 촉구 종교인 금식기도”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남재영 목사(대전빈들공동체교회)가 금식에 돌입했다.

하지만 첫날부터 금식기도는 그야말로 산 넘어 산, 우여곡절로 점철된 금식기도였다. 감리교본부는 기도회를 허용했지만, 공권력은 감리교본부를 역으로 설득, 천막 설치를 막아섰다. 이 과정에서 천막을 반입하려던 옥바라지선교센터 노승혁 전도사가 현장에서 체포되기도 했다.

결국 남재영 목사를 비롯 박경양 목사가 천막도 비닐도 한 장 없이 한겨울 영하의 기온에 밤을 새워 금식기도를 진행하는 그야말로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 사태가 일파만파 알려지고 여론이 들끓자 이튿날 겨우 천막 설치가 허락되었다. 공권력은 이번에는 천막의 위치를 또 문제 삼아 결국 감리회관 본부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좌측 끝에 금식기도천막이 안정적으로 설치될 수 있었다.

▲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자성’과 원청의 ‘사용자성’을 담은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할 당시부터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예상되었다. ⓒ이정훈

이야기 둘

그렇게 “노조법 2·3조 개정안 즉시 공포 촉구 종교인 금식기도” 매일 기도회가 시작될 당시 국무회의를 통해 가부간에 결정될 것으로 예상되었던 11월 28일까지 진행하기로 했다. 매일 기도회는 다양한 교계 단체들이 기도회를 주관해 진행했고, 다양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연대 발언에 나서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즉시 공포되기를 촉구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다양한 사연들, 노동 현장에서 차별과 고통이 전해지며 눈시울을 적실 때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연대 발언에 나선 이들 중 몇 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교회를 떠났던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아 교회의 모습을 반성케 하기도 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두 서너 가지로 종합해 볼 수 있었다. 첫째는 교회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관심, 둘째는 노동 현장을 바꾸려는 노조활동에 대한 터부시, 마지막으로 현 시대와 동떨어져 접점이 없는 답답함으로 정리가 가능했다.

물론 연대 발언에 나선 노동자들이 속해 있던 교회만의 특성일 수 있고, 정반대로 사회적 약자나 노조활동을 지원하는 교회들도 많지만, 이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를 들으며 주류 한국 교회의 모습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특히 주류 한국 신학과 교회가 안고 있는 사회적 변화를 촉구하는 활동 자체를 좌익시 하는 경향은 노동자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상처가 되었던 것으로 보였다. 여기에 현실 문제를 도외시한채 오직 교회 중심, 천국 중심의 강단 메시지 역시, 특히 젊은 이들에게는 답답함 그 자체로 인식된 것으로 보였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부분이기도 했다. 더불어 ‘어쩌다가 한국 신학과 교회가 이지경이 되었을까?’ 하는 해묵고 해결되지도 않을 물음과 의문부호가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시간이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교회와 단체들이 많은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한국 신학과 교회의 주류는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매일 진행되는 금식기도회에서 들려오는 연대 발언 속에서 사회적 약자에게 무관심 하고 고통 받는 이들을 외면하고 시대와 호흡하지 못하고 ‘오직 교회’라는 구호에 매물되어 있는 한국교회는 결코 건강하지 않다는 오래된 결론에 또 도달했다. 한국 교회가 두고두고 갚아야 할, 어쩌면 ‘청산할 수 없는 빚은 아닐까?’ 하는 절망을 느끼기도 했다. 아니 청산하겠다는 의식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소망조차도 품기 힘들었다.

▲ 19일간 금식하며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공포되기를 기도했던 남재영 목사의 천막에서의 마지막 모습. 관계자에 따르면 남 목사는 아침 4시면 일어나 혼자 새벽기도를 진행하고, 오후에는 천막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맞이했다고 한다. ⓒ류순권

이야기 셋

이러한 절망이 또 다른 절망을 낳았을까, 예상했던 11월 28일 국무회의에서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안건으로 상정되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이 27일 금식기도회가 마치자마자 전해지기 시작했다. 금식기도를 하고 있던 남재영 목사나 3대 종단 노동연대, 기독교대책위 측은 또 다시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결론은 금식기도회 연장이었다.

남재영 목사와 3개 종단 노동연대, 기독교대책위,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 등은 ‘국회에서 정부로 이송된 법은 15일 이내에 처리해야 한다’는 법 규정상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12월 1일까지 금식기도회를 연장하기로 하고 또 다시 금식기도회를 진행했다. 금식기도회의 형식은 변하지 않았지만 발언은 더욱 간절해졌다.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더 이상 죽지 않고 안전하고 노동자 답게 노동할 수 있도록 노조법 2·3조 개정안이 즉시 공포되기를 바랬다.

하지만 김수영 시인의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는 노래처럼 “졸렬과 수치,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았다.” 12월 1일 오전에 진행된 임시 국무회에서 거부권 행사가 결정되었고, 오후 들어 윤석열은 결국 거부권을 행사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마지막 금식기도회를 진행해야 할 상황이었다.

마지막 금식기도회였던만큼 많은 이들이 발언에 나섰다. 그런데 김수영 시인의 싯구 중 하나인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가 또 생각났다. 김혜진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의 연대 발언은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이후에 다시 시작할 때는 ‘지금처럼 맨 바닥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국회를 바로 통과했던 바로 그 지점에서 더 이상 후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국회를 통과한 법안에 미처 담지 못했던 더 많은 요구, 더 많은 마음을 담아서 더 큰 걸음을 내딛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그러다 보니 ‘좌절할 필요가 없겠구나’ 이런 생각을 더 하게 되었습니다.”

근거 없는 희망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 누군가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강하게 비난했지만, 종교인은 그 근거 없는 희망으로 살아가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노조법 2·3조 개정안’ 입법을 향한 또 다시 길고 지루한 싸움이 시작될 것이지만, ‘이제 곧’이라는 희망으로 또 다시 그날을 기다리게 된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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