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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담긴 그릇

기사승인 2023.11.26  02:5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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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 십계명과 모세의 싹난 지팡이, 만나 항아리가 담겨 있다고 전해지는 법궤 모형 ⓒGetty Images
에스라가 야훼의 토라를 탐구하고 지키고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칠 것을 결심하였다.(에스라 7,10)

에스라는 성전 재건 이후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의 후원 아래 이스라엘로 귀환했습니다. 그는 상당한 권한을 부여받았지만, 그 사용에 대해서는 기록된 것이 없습니다. 페르시아 왕의 지원은 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의도가 에스라 등에 의해 얼마나 어떻게 관철되었는지 그리고 성서에 얼마나 반영되어 있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그가 한 일도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 사람들에게 그들을 내보내도록 한 것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가 대단히 많은 시행조치인데, 당시 상황에서는 민족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추정됩니다. 제2의 사마리아가 되지 않기 위한 고육책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방여인들과의 혼인 파기는 하나님과 계약을 맺고 법(토라)에 따라 실시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10,3). 그는 귀환한 목적이 토라를 연구하고 실천하고 이스라엘에 율례를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혼인 파기는 그 가르침의 내용들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일 리는 없습니다.

우리가 관심 갖는 것은 그가 그와 같은 뜻을 품고 귀환한 것은 성전 재건 이후라는 사실입니다. 출애굽기에서는 하나님이 먼저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고 그들에게 법을 주십니다. 성막 건축 명령과 설계는 그 이후에 주어지고 실행됩니다. 출애굽기의 이야기는 성막 건축과 함께 끝납니다.

성막은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계시고 그들과 함께 동행하시겠다는 그의 의지의 표현입니다. 이에 대한 이스라엘의 응답은 그들이 받은 말씀의 실천에 있습니다. 이를 위해 성막은 말씀을 담은 건축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왕상 8,9 참조).

지성소 궤안의 돌판이 그의 말씀을 대표합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만나는 성막을 성막이 되게 한 것은 곧 말씀입니다. 말씀 없는 만남은 없습니다. 성막은 말씀을 보존하고 선포하고 가르치는 곳입니다.

여기서는 말씀과 성막 건축의 순서가 거꾸로 되어 있습니다. 전에 성전은 무너졌지만 말씀은 남아  있어서일까요? 에스라는 그가 오기 전에 성전이 재건되었지만 성전은 말씀의 담지자 역할을 못하고 말씀이 사람들의 삶속에 자리잡지 못했기에 말씀을 탐구하고 실천하고 가르치려 했던 것일까요?

말씀 없는 성전과 말씀과 괴리된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말씀 탐구와 실천을 한 축으로 하고 가르침을 다른 한 축으로 삼았습니다. 마침내 그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계약을 맺게 하는데 이릅니다. 계약은 출애굽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산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이 맨처음 시도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과의 계약으로 이스라엘은 다시금 성전과 말씀의 이스라엘이 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우리의 몸을 가리켜 성령의 전이라고 한 말도 이와같은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령은 말씀의 영으로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를 말씀 속에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과 계약관계에 있는 우리는 말씀을 호흡하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이 정의와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하고 그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을 실천하게 합니다.

성령의 전이 말씀을 채워지는 오늘이기를. 정의와 공의와 사랑이 필요한 곳에서 그 필요에 응답하며 실천하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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