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에게 힘을 주십시오”(시편 119: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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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고난은 필연적인 것이다. ⓒGetty Images |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나라는 존재의 외적인 상황을 통해 평안을 얻으려 하지 않고, 나의 내면에 이미 존재하는 평안을 선택함으로 세상이 줄 수 없는 온전한 평안을 누리는 저와 성도님들이 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성도님들은 ‘이렇게 되어야 한다, 저렇게 되어야 한다. 이러다가 이렇게 되는 게 아닌가, 저러다가 큰일이 나는 건 아닐까?’ 미리 걱정하며,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지는 않으십니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삶은 꼭 우리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당장 코앞의 일도, 내일 일도 예측할 수 없는 존재일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알고 계십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삶을 맡겨야 합니다. 삶을 맡기고 그저 주어진 하루에 최선을 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제공하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하루하루를 살게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지난주 말씀을 통해 성도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성서는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성서 속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은 끊임없이 당시 사회의 약자였던 고아, 과부, 병자, 이방인, 어린아이, 여성 등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은 차별받는 존재였고, 소외된 존재였고, 죄인으로 취급받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예수님은 이런 약자들이 정의와 공의가 실현되는 세상, 자신의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고, 억울함이 해결되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사회적 약자들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들의 잃어버린 권리를 위해 함께 연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더 정의롭고 공의로운 세상을 향한 기도와 삶의 실천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한 성도 한 사람의, 한 사람의 기도는 힘이 있고, 영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듣고 움직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도가 이루는 정의와 공의를 향한 실천에 힘을 주시고, 함께 하십니다.
내 삶에만 매몰되어 신앙생활 하지 않고, 지경이 넓어져 나와 함께 살아가는 가까운 이웃들에게 더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초도제일 믿음의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또한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나에게 힘을 주십시오.”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에서 나오는 시편 기자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나에게 힘을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겠습니까? 네, 힘을 주십니다. 그런데 힘을 달라는 모든 경우의 기도에 응답하실까요?
어떠한 맥락에서 시인이 이런 요청의 기도를 했는지 그리고 이 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씀을 통해 이야기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176절까지의 긴 구절을 가지고 있는 시편 119편에서 중요한 구절은 1-2절 입니다. “1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2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119편의 2절 이후 176절까지의 나머지 긴 구절에는 1-2절에 있는 말씀을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살아내고자 하는 분투의 기록이 담겨있습니다. 마지막 176절입니다. “나는 길을 잃은 양처럼 방황하고 있습니다. 오셔서, 주님의 종을 찾아 주십시오. 나는 주님의 계명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1-2절과 176절의 구절을 근거로 시편 119편의 전체적인 내용을 요약하면, ‘하나님의 율법을 행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지금 저는 길은 양처럼 방황하고 있지만, 이런 방황하는 삶 속에서도 율법을 어떻게든 지키고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복(구원)을 나의 삶 속에서 경험케 하소서.’가 됩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 나에게 힘을 주십시오!’라고 요청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삶의 환경이 나를 방해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일은 하지 않도록 힘을 달라고 요청합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삶, 나 자신의 목적을 위해 힘을 달라는 요청이 아닙니다. ‘나에게 힘을 주십시오.’라는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감으로 은혜를 경험하고자 하는 시인의 간절한 요청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 시인은 어떤 상황에 있습니까? “내 영혼이 진토 속에서 뒹굴고 있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시인이 자신의 영혼이 진토 속에서 뒹굴고 있다고 고백하는 이유는 ‘오만한 자들이 나를 멸시하고 비웃으며’(21-22), ‘고관들이 모여 나를 해할 음모를 꾸미기’(23) 때문입니다.
시인은 이런 불안하고, 두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놓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가까이하려 하고, 최선을 다해 말씀을 지키고자 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께 당당하게 요청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자 하오니, 힘을 주십시오!’, ‘나에게 새 힘을 주십시오!’, ‘나를 살려주십시오!’
여기서 근래에 제가 겪고, 느꼈던 개인적 간증을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얼마 전 후배 가정이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희 초도제일교회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교회인 줄 모르고 ‘큰 교회에서 이런 목사님과 사모님 모셔가지 않겠어요?’라는 본인들이 생각하기에 좋은 의도의 말을 해주었습니다.
지난주 목요일 교단에서 발행하는 2024년 사순절 묵상집 집필 모임을 위해 총회에 갔을 때는 여러 목사님이 우리 교회 새벽기도회가 4시인 것을 아시고서는 저에게 대단하다고, 훌륭하다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금요일에 신세계교회 담임목사님과 장로님 부인되시는 권사님들 열네 분이 교회에 방문하셨을 때는 제가 인도하는 평화통일순례를 경험하시고서 목사님의 사역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감사하다고 칭찬과 격려를 아낌없이 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칭찬을 들었다는 자랑을 하려고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닙니다. 이런 격려와 칭찬의 말들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순절 묵상집 집필 모임 때 한 목사님이 저를 칭찬하시면서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교단 총무로 지낸 김상근 목사님(67-74회)이 교단의 업무로 지방 사역을 가셨다가 주일이 되어 기장의 작은 시골 교회로 예배를 드리려고 들어가셨다고 합니다. 처음에 교회에 들어갈 때는 이런 작은 시골 교회에서 사역하시는 목사님이 대견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교회에 들어가니 머리가 하얗게 되신 성도님들만 앉아 계셨다고 합니다. 김상근 목사님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데 11시가 되고, 11시 5분이 되고, 11시 10분이 되어도 시골 교회의 목사님이 강단에 올라가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이상하게 여기며 기다리고 있는데 시골 교회의 목사님이 김상근 목사님을 찾아와서는 오늘 주일 말씀을 준비하지 못해 말씀을 전하지 못한다며 죄송하다고 하더라는 겁니다. 김상근 목사님을 사무실로 모신 시골 교회의 목사님은 처음부터 자신이 이렇게 사역했던 것은 아니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렇게 되었다고 고백하셨다 합니다.’
이 이야기를 하시면서 너는 그러지 않고 열심히 사역하는 것 같아 좋다는 의미의 말씀을 하셨는데, 7명이 모인 식사 자리에서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기 직전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눈물을 겨우 참았습니다. 이 시골 교회의 목사님과 제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2주 전 주일예배 시간에 강대상에 올라와 속으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난 쓰레기 목사다.’ 그래서 예배 전 기도하면서 나는 비록 이런 목사이지만 예배드리는 성도님들에게는 영향을 주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고 기도하며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를 했었습니다.
성도님들께 죄송하고, 하나님께 죄송하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시간을 조금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한 고백이 시편 기자의 고백과 같습니다. ‘저에게 새 힘을 주십시오.’, ‘저 좀 살려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습니다.’ 감사하게도 2주 전에 이런 고백을 한 이후 이런저런 모임과 만남을 통해 여러 사람에게 격려와 칭찬을 듣게 하셨고, 정말 새 힘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싶다는데, 하나님이 성도에게 새 힘을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의 요청에 당연히 응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27 나를 도우셔서, 주님의 법도를 따르는 길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주님께서 이루신 기적들을 묵상하겠습니다. 28 내 영혼이 깊은 슬픔에 빠졌으니,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나에게 힘을 주십시오. 29 그릇된 길로 가지 않도록, 나를 지켜 주십시오. 주님의 은혜로, 주님의 법을 나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요청에 응답하셔서 성도에게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실 줄 믿습니다. 위로와 격려로 성도가 달려가야 할 길을 갈 수 있도록 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시편 119편의 1-2절의 말씀. “1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2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 복과 은혜가 우리의 삶을 통해 경험될 줄 믿습니다.
성도님들의 영혼이 진토 속에서 뒹굴고 있습니까? 괴롭고 고통스러운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자 몸부림치고 계십니까?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주님 새 힘을 주십시오.”, “나를 살려주십시오!”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