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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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 C. Ducdale, 「Hezekiah reopens the temple」 (2 Chron. 29:20-26) ⓒMuseon.nl |
히스기야가 그들을 위해 기도하였다. 선하신 야훼여,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이 성소의 정결예식대로 못했어도, 하나님, 곧 조상들의 하나님 야훼를 찾기로 마음을 온전히 정했습니다.(역대하 30,18b-19) |
히스기야가 유월절을 지내는 모습은 특이한 면들이 있습니다. 그가 유월절을 지키기로 계획한 것은 어떤 정치적 함의가 있든 그 이전에 대규모 제사를 드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제사장들이 숫자가 모자란 것은 아닌데 제사를 드릴 제사장들이 부족했습니다.
직무를 수행할 정결한 몸가짐이 갖추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기간의 일시적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히스기야가 전국적 규모의 유월절을 드리고자 했을 때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정해진 대로 첫달 십사일에 지킬 수 없어 유월절이 한달 미루어졌습니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모이지 못한 탓도 있지만 자신을 정결케 한 제사장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들의 태만에서 당시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멀리하고 돌아오라고 외치는 하나님의 예언자들을 배척했던 이스라엘의 태도와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적 무감각이 이들에게도 깊이 스며든 것 같습니다. 그나마 종교적으로 깨어 있었던 레위인들이 있어서 유월절이 한 달 늦게라도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유월절 소식을 들고 전령들이 이스라엘 전역을 다녔지만 호응은 그다지 높지 않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이 망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망했어도 마음이 쉽게 유다로 향하지 못했습니다. 긴 분단의 시간이 마음을 기꺼이 열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분단 극복도 그만큼 오랜 시간이 걸릴 일일 수도 있습니다.
마침내 유월절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북이스라엘 일부 지역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레위인들이 참석자들을 위해 정결의식을 행했음에도 그들은 무엇 때문인지 이로부터 벗어나 있었습니다. 유월절 규례라는 것이 있었지만 그들은 그 상태 그대로 유월절에 참여하고 그 양을 먹었습니다.
이로부터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직접 보도되지는 않지만 히스기야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들을 고치셨다는 말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일이 바로 히스기야에게 알려졌고, 그는 이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며 용서해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유월절 규례를 지키지는 못했어도 그들은 마음을 모두어 하나님은 찾기로 한 사람들이라는 것이 변호의 내용입니다. 규례가 중요하다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사정상 지킬 수 없는 경우도 있음을 인정해야 되지 않을까요? 히스기야는 한편 하나님께 그렇게 묻고 다른 한편 그들의 마음을 변호합니다.
무엇으로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겠는지요?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거리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북이스라엘 출신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오게 한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을 찾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없었다면 오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마음만은 그들이 왔다는 사실에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 마음에서 모든 것은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간구에 동의하고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들을 정결케 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보듯이 규정이란 지켜져야 하는 것임에도 예외를 인정합니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이해이고 규정 위에 사람과 하나님이 있음을 아는 깨달음입니다. 이런 이해와 깨달음이 사람과 사람,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더욱 충만케 할 것입니다. 기쁨과 활력이 넘치게 하고 하나가 되게 할 것입니다.
규정을 사람을 보는 예수의 눈이 우리 눈이 되는 오늘이기를.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 우리를 움직이는 이날이기를. |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