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죽음에 이르기까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기사승인 2023.11.16  01:42:46

공유
default_news_ad1

- 도마복음 구자만 박사의 《도마복음》 풀이 (5)

▲ 나를 발견하는 순간이 어쩌면 곧 구원의 시간일지도 모른다. ⓒGetty Images
예수는 말씀하셨다. “너희가 너희 자신을 알게 될 때 너희는 알려질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곧 살아 계신 아버지의 자녀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너희가 너희 자신을 알지 못하면 너희는 빈곤하게 되고 너희 자신이 빈곤 그 자체가 될 것이다.”(도마복음 3장 2절)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나는 누구인가?’를 확실하게 파악하는 일이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know Yourself)고, 부처는 ‘스스로 마음의 등불 (佛性)을 밝히라’(自燈明)고, 노자는 “자기를 아는 자는 깨달은 자이다”(自知者明, 도덕경 33장)고, 우파니샤드 (Upanishad)는 ‘자기를 알라’고 하였다.

구원이란 자기 자신을 아는 것 즉, 영적인 참나(神)를 깨닫는 것이며, 모양 있는 육적인 거짓 나(ego)는 존재하기를 멈추어버린 것이다(요 17:21). 또한 이원성의 이기적인 목숨(허상)을 버리는 자(ego)는 천하와 하나가 되는 생명 (실상)을 얻게 된다(마10:39). 인간은 이미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실상)이며(요 1:12), 예수 자신도 그 중 하나이므로 유일하게 성육신(成肉身)한 독생자가 아니다.

서울 서머나 교회의 김성수 목사는 ‘우리가 그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육(거짓 나)으로 죽고 영(참나)으로 살아, 독생자 (모네게네스)들이 된다’고 한다. 따라서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이 바로 ‘구원’이며, 자신을 모르는 것 자체가 ‘영적 빈곤과 결핍’ 즉 온전한 구원(천국)에 이르는 것에 실패가 된다.

예수께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요 18:36)라고 말씀하셨다. 상대적인 이 세상과 ‘몸과 마음(거짓 나)’은 안개처럼 일시적이지만, 일체와 하나로서 절대적이며 차별이 없는 하나님의 나라(참나)는 영원하다는 것이다.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東學)은 “우리는 내면에 절대자인 천주(天主, 참나)를 모시고 있다”(侍天主, 人乃天)고 하였다. 힌두교의 베다서에서도 “그대는 불사(不死)인 참나이다”라고 하였다. 현대 물리학도 물질을 분석하면 광명밖에 없는 텅빈 공이지만(析空觀), 충만한 신성(참나)은 ‘장場 에너지인 진리’(生命, 빛)로서 실재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예수는 “자신을 알지 못하는 자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며”(싸우는 자 도마서),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너희가 너희 자신을 알게 하려는.것이다”(야고보 비밀의 書 15)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아버지여, 아버지께 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옵소서”(요 17:21)라고 기도하셨다. 예수의 십자가의 목적은 이 기도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우리는 본래 무한한 능력의 하나님과 예수와 하나(神我一切) 즉, 하나님의 자녀(神)라는 것이다(平等無差別).

우리의 목표는 자신의 참다운 본성이 영원하며 완전한 신( 부처)임을 깨달아 예수처럼 하나(One)가 되는 것이다. 인류가 갈망해 온 구원(해탈)은 진정한 자기 자신인 본성(神性) 깨달음이며(갈 2:20) 탄생과 죽음으로 상징되는 모든 인간적 한계의 완전한 초월인 신(부처)과 하나(One)가 되는 것이다. 신(부처)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곧 신(부처)이 된다는 의미이다(見性成佛, 요 10:34).

우리는 뒤바뀐 헛된 생각(전도몽상[顚倒夢想], 반야심경) 때문에 자신 속에 있는 여의주의 보배 구슬 같은 마음(佛性)을 모르고 있다. 증도가(證道歌)에서는 참선을 통해서 직접 체험으로 파악되었음을 ‘여의주의 영롱함을 아무도 모르는 데, 여래장 그 안에서 저절로 얻어지구나’라고 노래한다.

바울이 기도하였을 때 그리스도가 영현(靈顯)하셔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고후 12:8)고 하셨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이미 베풀어져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미 신의 은혜로 자신 속에 무한한 능력의 신성(불성)을 가지게 되었으며(一切衆生悉有佛性), 또한 해가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어주듯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천국( 광명)의 삶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여야 한다(光明一元, 마 5:45).

예수는 “나는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하셨다. ‘나는 곧 길이요 진리요’에서 ‘나’는 상대적인 ‘나사렛 예수’(거짓 나)가 아니라 모든 만물에 깃들어 있는 절대적 참나이다(요 8:58, 골 3:11).

불교에서 ‘나를 보는 자는 법(진리)을 보는 자’라고 한 부처의 ‘나’도 상대적인 ‘인도의 석가모니’(거짓 나)가 아니라 모든 만물에 깃들어 있는 절대적 참나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는 것처럼 기독교와 불교는 인류 평화를 위하여 독선과 배타를 벗어나 둘이 아닌 보편적 진리(참나)로 대화를 하여야 한다(마 5:45).

구자만 박사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