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자모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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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임없이 세상의 흐름을 살피고 행여 그것에 뒤쳐질까 고민하는 것이 목회를 잘 하는 것일까. ⓒGetty Images |
며칠 을씨년스럽던 날씨가 입동을 앞두고 체감하기에 무척이나 추워졌다. 11월, 어느덧 올 해의 교회력이 끝나간다.
내년을 위한 목회계획을 한다면서 잘 나간다는 목사님들이 트렌드코리아, 한국교회트렌드 같은 책들을 보면서 분석하고 방안을 찾는단다. SNS에 보란 듯이 인증하는 사진과 함께 게시글로 자랑을 한다. 그런데, 소비자적 관점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다방면으로 영민한 자신감은 내게 썩 유쾌하지 않았다.
물론, 세태의 흐름도 알아야겠고, 시대적 필요도 충족되어야 하며, 술술 읽혀 재미도 있다만
사회과학적 기법으로 분석하여 외래어와 신조어를 남발하며 키워드로 제시한 그 ‘팔리는’ 일회적 소비재 책들 역시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자기계발서와 다를 바 없이 써먹을 거리들을 찾는 것 말이다.
삐딱한 나에게만 그리 보이는 것일까? 그들이 그럴듯하게 이유를 대지만, 자본에 물든 시장이 된 교회의 처세요, 참을 수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드러내는 목사들의 욕망이다. 게다가 교인들을 소비자로 전제하는 그 저급하고 무식한 기업 경영적 총수 목회가 바로 종교로서 기독교 침체, 교회 영향력 상실의 큰 원인이다.
사회과학에 관심을 갖기로 했다는 목사님들에게 고함
AI분석의 신종무당에게 의탁한 당신들의 목회경영에는 소비자 확보가 곧 경쟁력인 플랫폼경제, 소비재들의 ‘동적 가격 설정(Dynamic Pricing)’ 열풍 중인 현상에서 시사점을 찾아보는 것이 훨씬 구미에 맞을 것이요!
물론, 기존의 대형교회들의 틈을 파고들어 고상한 듯이 힙한 플랫폼을 추구하고 있는 당신들이 하루 250만 번의 가격을 바꾸는 아마존만큼 찰진 대응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오.
여하튼, 리빌딩(rebuilding)이니 하는 용어들을 빌려오지 않아도 무엇보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기본으로 돌아가고,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교회를 교회되게, 교회를 교회답게!
종교사회학 관점에서 요사이를 ‘영적이지만, 종교에 매이지 않는’(Spiritual But Not Religious) 시대로 규정한다.
가나안(안 나가) 성도가 소위 ‘시험에 들어’ 교회출석을 하지 않던 그리스도인의 낙심현상이었다면, 코로나 이전에 교회를 다녔던 42.6%가 현장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정체성을 교회 출석 여부에 두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것이라 할 것이다.
타락한 중세 기독교에서 저항하여 나와 500여년이 지난 지금 교회는 과연 날마다 새로워지고 있는가? 한국 개신교의 상황은 결코, 개인들의 영적인 나태로만 그 책임을 돌릴 수 없다.
단순히 코로나 이전 출석률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들이 영성의 본질을 추구하는 것이 절실하다. 영성이라는 것이 빠른 시간, 가벼이 추구하기란 어렵다. 게다가 영성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 아니라 보이지 않는다. 궁극적 실재이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은 단순히 육체적 완벽이나 지적인 우월 그 이상의 목적에 의해 움직이며, 영적 성취를 원한다. 그러니 영성에 대해 지속적 관심이 인간에게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다.
당장 써먹을 어떤 방법론이나 프로그램으로 되지 않는 그것에 대한 연구와 구도적 실천에 전
력을 다하는 중인 내 남편을 더 자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씨, 이 글을 혹시 보거든 힘내라잉?!!”
내년의 목회를 계회하는 이 시점
사실, 잘하고 있다는 칭찬과 격려가 남편에게 절실히 필요하기도 하다. 목회를 바르게 잘 하는 것, 본질을 추구한다는 것이 참 편하지 않다. 그래도 우리 함께 뚜벅뚜벅 가보자고…
영적공동체,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로서의 예배’다. 기독교 예배는 ‘대화’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그 분의 전능하신 행위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가인아 네가 어디 있느냐’ 물으실 때 응답하는 것이 책임(Responsibility)을 다하는 것이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금주 남편이 공동체와 함께 나누기 위하여 쓴 글의 일부를 포함하여 글을 마무리 한다.
“세상풍조에 떠밀리지 않고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 신실한 예배자로서 살아가려는 다짐으로 내년을 기다린다.”
장사모 webmaster@ecumen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