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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그렇게 껄끄러운가

기사승인 2023.09.24  02:3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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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끄러움을 딛고서(요한복음 4:23-24)

▲ 실질적인 개혁은 외면한채 외형의 개혁만을 외친 모양새가 된 제108회 기장 총회 ⓒ에큐메니안
23 참되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24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1.

지난 주간 우리 교단 한국기독교장로회의 제108회 총회가 열렸습니다. 전남 신안의 자은도라고 하는 아름다운 섬에서 모였습니다. 오가는 길은 너무 멀고 힘들었지만, 복되고 보람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저와 김용길 장로님 두 명이 노회의 대표가 되어 다녀왔습니다. 목사들은 총회에 참석하는 것이 공식적인 목회의 연장이지만, 장로님들은 총회 참석을 하시려면 생업을 멈추고 휴가를 내는 등 특별한 결심을 해야 합니다. 장로님들의 섬김과 봉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총회에서는 특별히 우리 노회의 강신옥 장로님께서 장로부총회장으로 당선이 되었습니다. 교단을 대표하는 임원을 배출하는 것은 노회의 큰 영광입니다. 부총회장이 되신 장로님을 통해 이번 회기 교단 총회가 큰 일들을 해나갈 수 있도록,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앙의 현장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그 교회를 교회되게 만들어주는 뿌리가 총회입니다. ‘교회마다 개별적으로 신앙생활 잘하면 되지, 총회나 노회가 무슨 소용이냐?’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총회가 바로서지 않으면 교회의 개별적인 신앙생활이 흔들리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알아서 혼자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하고 찬양도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절을 맞이하면서 하나님의 창조의 핵심을 뭐라고 말씀드렸는지 기억나시나요? ‘함께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핵심은 ‘함께하는 것’입니다. 혼자 자기 잘난 대로 알아서 사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가 아닙니다. 잘났으면 그 잘난 것을 나누어야 하고, 못났으면 못난 대로 도움받으면 됩니다. 그렇게 더불어 하나가 되는 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의 선포의 핵심에도 ‘함께’가 있습니다.

치열하게 고민한 신앙의 진리를 ‘함께’ 나누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신앙의 방향을 ‘함께’ 결정하고, 그렇게 결정한 신앙실천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것이 교단과 총회, 노회를 통한 신앙의 임무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번 기장 총회의 주제 말씀과 함께, 총회에서 특별히 결정된 사항들과 이를 통해 우리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신앙에 대해 이야기 나누려고 합니다.

2.

우리 교단은 올해 새역사 70주년의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 땅에 신앙이 전파되고 장로회가 세워진 역사는 108년을 맞습니다만, 그 역사의 한가운데에서 우리 기장만의 특별한 고백을 하게 된 것이 70년 전, 1953년입니다. 1953년 우리 기장은 예수교장로회와 결별하여 기독교장로회로 독립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정치적인 분열이라고도 표현합니다만, 그것은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말입니다. “신앙의 핵심이 어디에 있느냐? 성경에 있다. 그러면 그 성경말씀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 기장의 신앙고백입니다. ‘당연한 말 아닙니까? 그렇게 말하지 않는 교회가 어디 있습니까?’ 하겠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언어를 인간이 알 수 없기에,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언어로 주어집니다. 그래서 ‘말씀에 대한 해석’이라는 과제가 우리에게 남겨집니다. 말씀의 해석이야말로 신앙의 진리를 옳게 파악하는 핵심입니다.

우리 기장은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가 무엇일까?’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이 신실한 신앙이라고 고백합니다. 아무런 고민 없이 쓰여진대로만(!) 믿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신앙의 왜곡이요 태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화석처럼 새겨놓고서 그 흙먼지만 더듬고 있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내 안에 내 삶 속에 내 영속에 모시고, 말씀 속에서 울려 나오는 진리를 느끼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말씀을 묵상합니다. 그 말씀의 명령이 이 사회의 현실에 어떻게 울리고 있는지를 고민합니다. 지금껏 믿어왔던 말씀에 인간적인 오류와 왜곡이 끼어들어 가지는 않았는지 성찰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실천이 하나님의 뜻과 합치하는지를 성찰합니다. 그 과정이 총회라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총회의 모든 논의는 한편으로는 만장일치로 아무런 논란이 없으며, 또 한편으로는 매우 치열합니다.

3.

이번 총회에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제가 주목한 것은 제7문서의 채택입니다. 제7문서는 우리 기장이 사회적으로 선포하는 일곱 번째 문서라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기장은 시대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응답하는 신앙고백의 문서를 여섯 개 발표했습니다(<교회교육정책(1969)>, <사회선언지침(1971)>, <신앙고백서(1972)>, <선교정책(1973)>, <제5문서(1987)>, <희년문서(2003)>). 이 문서들은 변화하는 시대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새롭게 고백해야 하는 복음의 진리와 신앙의 정수를 밝힌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는 묻고 대답하는 우리의 고백이었습니다.

새역사 70주년을 맞이하는 이번 총회에서 여섯 개의 문서를 관통하는 ‘기장성’과 ‘하나님의 선교’ 정신을 잇고 계승하여,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를 향한 우리 기장의 목소리를 외치는 제7문서를 채택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총회 본회의에서 7문서의 채택이 불발되었습니다. 일부 언론에는 부결되었다고 보도되기도 했지만, 정확하게는 임원회에서 그 내용을 더 논의하여 실행위원회에 보고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저 개인적으로는 설교 계획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10월 한 달간 종교개혁의 달을 맞아 기장의 7문서를 놓고 하나하나 깊이 있게 이야기해 보려고 했는데,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되었습니다.) 기장의 유수한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오랜기간 고심하여 연구한 결과물인데 무슨 내용을 더 논의하라고 했을까요?

문제가 된 부분은 이렇습니다. 제가 읽어드릴테니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차별 없는 사랑의 공동체’라는 제목 아래 내용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인종, 국적, 지역, 출신, 종교, 학별, 연령, 성별, 결혼, 성적지향, 장애 등에서 차별이 발생하고 있다. … 차별받아도 마땅한 소수자는 없다. 약한 지체일수록 더 요긴하고, 다양성이 인정될수록 그 사회는 건강하고 평화롭다.”

어떻습니까?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불경건한 내용과 표현이 느껴지십니까? 다시 한번 읽어드릴테니, 찬찬히 들어보십시오. “우리 사회에서는 인종, 국적, 지역, 출신, 종교, 학별, 연령, 성별, 결혼, 성적지향, 장애 등에서 차별이 발생하고 있다. … 차별받아도 마땅한 소수자는 없다. 약한 지체일수록 더 요긴하고, 다양성이 인정될수록 그 사회는 건강하고 평화롭다.”

일부 총대들이 반발하고 나선 곳은 바로 ‘성적지향’이라는 표현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고 남자와 여자가 만나 한 몸을 이룬다’고 했지, 그 외의 상황은 인정할 수도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물론 받아들이기 힘든 분도 계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성적지향을 억지로 강요하는 것도 아니요, 그들에게 특권을 부여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홀로 아파하는 사람들을, 사회적으로도 외면하지는 말자는 겁니다. 차별하지 말자는 겁니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주고 그들도 한 사람으로 한 생명으로 존재하도록 하자는 겁니다. 일부러 나서서 ‘너희들은 괴물이야! 없어져야 해!’ 그러지 말자는 겁니다.

4.

영화나 드라마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번개치고 벼락이 떨어지는 날 어떤 남자와 여자가 그 번개를 맞고 서로 영혼이 바뀌어 버린 겁니다. 그래서 일어나는 일들을 코미디로 그려냅니다. 시크릿가든이라는 드라마도 있었고, 체인지라는 영화도 있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웃긴 이야기 정도로 그려집니다. ‘어머, 속은 남자인데 겉모습은 여자니까 여자목욕탕에 들어가도 되겠네~’ 같은 저급한 성적인 코미디로 치부됩니다.

그러나 그런 우스개 같은 이야기가 현실의 삶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도 자신의 결정과 선택이 아니라, 그저 그렇게 태어나서 평생을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는 우스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현실에서는 엄청난 비극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마지막에 모든 것이 다 제자리를 찾고 이야기는 마무리되지만,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채 삶은 계속됩니다.

소위 ‘정상’이라는 사람들은 그런 ‘이상’인 사람들을 거북해하고 껄끄러워합니다. 나아가 혐오하고 차별하고 배제합니다.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를 차별하지 않고 사랑으로 보듬겠다고 고백하는 기독교인들조차, 원수를 사랑하고 왼뺨까지 겉옷까지 저~ 십 리 밖까지 결단하고 아멘하는 사람들조차, 신앙의 자유를 외치고 말씀을 올바르게 해석하겠다고 나선 우리 기장인들조차, 그런 기장인들 중에서 고르고 골라 총회대의원으로 모인 목사 장로들조차, ‘당신들만은 절대 사랑할 수 없다’고 ‘아니오’를 외쳐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집트 땅에서 너희가 나그네 되었던 것을 절대로 잊지 말라(신5:15, 15:15, 24:22)’ 하셨는데, 하늘이 도는지 땅이 도는지도 미처 몰랐던 우리가, 코로나 바이러스 하나 어찌해보지 못하는 우리가, 이 땅을 다스리고 질서를 바로잡기는커녕(창1:28) 인간사회조차도 혼란스럽게 만드는 우리가, 무슨 권리와 무슨 권위로 ‘하나님의 섭리에 위배된다’고 감히 말하는 것일까요?

(‘성적지향’에 핏대를 올리며 아니오를 외치던 한 총대 목사님이 폐회직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기장 전체가 윤석열을 반대하는 것처럼 기도회도 하고 성명서도 내고 하는데, 기장 안에도 나처럼 윤석열을 지지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윤석열 지지자들을 차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자기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5.

이번 총회의 주제는 오늘 말씀 제목과 같습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생명·평화·선교 공동체.” 기장 새역사 70년을 보내는 총회의 주제가 ‘예배’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지금껏 우리는 정의를 이야기하고, 생명, 평화, 선교를 이야기했습니다. 삶에서의 실천에 방점이 찍혀 있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올바르다고 자부하면서, 그 올바른 신앙을 어떻게 실천해 나갈까를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솔직해져야 합니다.

예배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예배의 자리에서 나를 사로잡고 있는 영을 돌아보고, 내가 붙들고 있는 진리를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나를 사로잡고 있는가? 아니면 나의 영이 하나님의 영을 몰아내고 있는가? 하나님의 영이라는 명패를 탈취하여 내 안에 왕노릇하는 것은 아닌가? 그런 영이 제시하는 진리가 참된 진리일 수 있는가?’ 하나님 앞에 겸손히 꿇어 앉아 내 안을 살피고 내 영을 살피고 내 진리를 살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생명, 평화, 선교 공동체’를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하십니다. ‘아버지께서 그 사람들을 찾으신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이 찾으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주님을 찾는 방법은 의외로 매우 간단합니다. 겸손과 순종입니다.

겸손은 나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조차, 내가 믿는 진리조차, 나의 가치관, 나의 세계관, 나의 신념, 나의 판단, 나의 계획, 나의 소망, 나의 바람… 그렇게 조용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 앞에 벌거벗은 나를 세워놓는 것입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신앙의 신비가 일어납니다. 말씀을 두고 치열하게 고민했던 모든 고민이, 삶 속에서 실천하려 애썼던 모든 노력이, 그런 우리 모두의 고민과 노력의 역사가, 겸손한 예배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과 만나게 됩니다. 바로 그런 신비 앞에서 우리는 순종할 수 있게 됩니다.

108회 총회는 참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나 그 부끄러움이 예배의 자리로 우리를 부르게 될 것이니, 한편으로는 안심해 봅니다. 이 부끄러움을 딛고 참된 영과 진리를 회복하는 우리 기장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재훈 목사(생명교회) lewiscip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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