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흐와 산책하기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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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 레미, 「첫걸음마」 (1890, 캔버스에 유채, 72.4×91.1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
고흐의 그림을 독점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그의 많은 작품 가운데 하나를 가지라고(?) 하면 <첫걸음마>를 택하겠다. 굳이 미술 전문가가 설명하지 않아도 작품의 의도가 한눈에 쏙 들어오는 따듯한 그림이다. 이 그림의 모작(母作)인 밀레의 작품과는 결이 다른 감동이 있고 더 유명하다.
고흐는 결혼하지 않았다. <첫걸음마>에 담고 있는 가정의 행복을 경험하지 못했다. 하지만 경험하지 못했다고 그 아름다움을 모른다고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 도리어 가정의 아름다움을 누구보다 더 간절하였을 수 있다. 고흐에게 가정은 구원의 장소이자 정체성의 밑절미였고 예술혼의 시발점이었다.
요즘은 원작 시비가 많고 지적재산권에 대한 논란이 많지만, 고흐 시대에는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모방, 또는 모사를 용납하는 분위기 탓에 고흐의 <첫걸음마>가 탄생할 수도 있었으니 격세지감이다. 처음부터 누구나 대가가 되는 게 아니다. 모방은 창조에 이르는 첫걸음마이다. 자기 작품의 모작을 넉넉한 마음으로 용납하는 밀레 같은 스승이 많아야 고흐 같은 제자가 많아진다.
최광열 목사(인천하늘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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