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 Julius Schnorr von Karolsfeld, 「Rahab lets the spies escape」 (1860) ⓒWikipedia |
우리가 들었을 때 너희들 앞에서 마음이 녹았고 사람들 속에서 기(氣)가 다시 살지 못했다. 참으로 너희 하나님 야훼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다.(여호수아 2,11) |
광야의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왕정체제의 도시국가들과 전쟁을 치루어야 했고, 특히 헤스본과 바산을 초토화시키고 그 왕들인 시혼과 옥을 처형한 것은 오래도록 기억되었습니다(민 21장). 뿐만 아니라 이 소문은 지금 여리고 지역까지 퍼져 있었고, 그들을 두려움에 그들의 침입 소식이 전해졌고 그들에 대한 수색작업이 떨게 했습니다. 간이 녹았고 기가 완전히 죽었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여호수아는 여리고에 정탐꾼들을 보내고, 그들은 라합의 집에 숨어 들었습니다. 라합의 기지와 도움으로 그들은 위기를 모면합니다. 이때 라합이 자신의 속내와 저 소문에 대한 성읍 사람들의 반응을 이야기합니다. 위의 본문은 바로 그 이야기의 일부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관심사가 될 이야기부터 먼저 말합니다. 나는 야훼가 너희에게 이 땅을 준 것을 안다. 라합의 입에서 나온 말은 비단 그만의 생각이 아니라 성읍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는 중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홍해 사건으로부터 시온과 옥 사건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은 이를 들은 사람들에게 야훼의 뜻이 무엇인지 알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의 당사자들로 그 사건 안에 있는 이스라엘이 정작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신뢰했는지 의문입니다.
라합의 입으로 여리고 사람들은 한걸음 더 나아가 참으로 너희 하나님 야훼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라고 인정하기도 합니다. 이는 마치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유대 사람들과 달리 그의 죽음을 지켜본 백부장이 이 사람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인정했던 것과 같습니다(막 15,39). 하나님의 일이 그와 가깝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고 국외자로 간주되는 사람들에게서 오히려 인정받는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성서에서는 비교적 자주 있는 일입니다.
위로는 하늘에서 아래로는 땅에서 하나님은 다른 이 아닌 바로 야훼입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땅의 역사임에도 거기에 나타난 야훼는 땅을 넘어 하늘에서도 한분 하나님입니다. 위-아래, 하늘-땅의 대비는 전체를 아우르는 수사법입니다. 땅의 사건에 개입한 하나님에게서 온 우주의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은 놀라운 통찰입니다.
여리고 사람들은 하나님과 관계 없었던 사람들이고, 그들이 이렇게 깨달은 야훼는 심지어 그들에게 적대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들에 의해 확장됩니다. 이러한 하나님 이해는 먼훗날 우리들의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야훼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 한 나라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땅 위에서 설정했던 것처럼 보이는 경계들을 넘어서고 분열과 갈등이 넘치는 세계 안에 일치와 평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는 사익을 위한 불의가 팽배한 땅에 공의와 정의를 세우기 위해 땅의 사람들 안에 사랑과 자비를 심으십니다. 죽임과 파괴가 일상이 되어가고 있는 세상에 우리를 불러 생명과 창조의 길을 내시는 분, 그분이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과거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을 잊어가는 이 시대에 새겨진 하나님의 뜻을 읽어내고 그 뜻을 따라 용기 내어 사는 오늘이기를. 자연 파괴와 전쟁으로 죽어가는 세상에 평화와 새창조의 꿈을 실어나르는 이날이기를. |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