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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와 반비례

기사승인 2023.06.05  02: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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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는 거룩하라!”(레위기 19:1-4)

▲ 성령이 임한 마가 다락방 ⓒCNS/Crosiers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한 주간 불안하고, 두렵고 때로는 분노가 올라오는 상황들이 성도님들의 삶에 일어났을지 모르겠습니다. 직접적인 일들이 벌어지지 않았더라도, 그런 일들을 상상함으로 스스로 부정적인 감정 상태로 놓이게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상황과 감정이라는 파도에 자신을 떠밀려 가도록 내버려 두면, 우리는 성도다운 삶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나’에게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는 한 하나님의 말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런 상황과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면, 내가 누구와 함께 있는지 떠올리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며, 삶을 이끌어 가심을 깨닫게 된다면 평안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여전히 상황은 변하지 않았지만 이러한 믿음으로 평안을 되찾을 때 성도는 거룩한 삶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저와 성도님들이 이 거룩한 길을 향해 매일, 매 순간 향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 입니다. 성령이 강림한 일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거룩한 영이 성도들 안으로 들어온 사건입니다. 요한복음 14:15-17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다른 협조자를 보내 주셔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계시도록 하실 것이다. 그분은 곧 진리의 성령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 들일 수 없지만 너희는 그분을 알고 있다. 그분이 너희와 함께 사시며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을 지킬 수 있도록 성도를 돕기 위해 오십니다. 요한복음 14:26 “이제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 주실 성령 곧 그 협조자는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 주실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모두 되새기게 하여 주실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이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한 번 더 성령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6-8 “사도들이 한 자리에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었다.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되찾아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때나 시기는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권한으로 정하신 것이니, 너희가 알 바가 아니다.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성령은 성도가 세상의 가치나 개인적인 삶의 어려움을 당할 때 그 어려움을 돌파할 수 있는 능력이나 힘, 용기를 주시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삶,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삶을 위해 오셨습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이 성령강림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돌아가신 후 남성뿐 아니라 여성까지 참여한 제자 그룹이 다락방에 모여 한마음으로 기도에 힘썼습니다.(행1:14) 그리고 이스라엘 절기상 오순절에 성령강림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2:1-4 “오순절이 되어서, 그들은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었다. 그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불길이 솟아오를 때 혓바닥처럼 갈라지는 것 같은 혀들이 그들에게 나타나더니,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각각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제자들 각자가 지금까지는 용기가 나지 않아 평상시에 하지 못했던 말이나 행동을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한 사건이 아닙니다.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말하기 시작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도님들과 나누고 싶은 주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성령강림을 통해 제자들, 성도들이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말하고 행동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성령과 관련해서 말씀하실 때, 성령을 거역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2:32 “또 사람의 아들을 거역해서 말하는 사람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성령을 거역해서 말하는 사람은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성령을 받기는 하지만, 성령을 거역해서 말하고 행동할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되겠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성령을 거역하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 교회가 후원하고 있는 단체인 ‘청어람’에서 책 모임을 진행했는데, 청어람의 대표님이 책 모임의 후기를 SNS에 남겼습니다.

‘지난주에 책모임 할 때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더랬다. 신앙이라는 걸, 예전에는 활동으로 생각했는데... 점점 수행으로 받아들이게 된다고. 무엇을 할까, 어떤 걸 주장할까 … 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무엇을 덜어낼까, 어떤 걸 하지 말아야 할까, 누구의 이웃이 될까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고.’(청어람 대표 오수경님의 페북글 인용)

성도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앞으로 이런 방향의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을 거역하지 않고,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가기 위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무엇을 덜어내야 할까’,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할까’, ‘누구의 이웃이 되어야 할까’를 고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씀하시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거룩하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거룩한 삶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3-4절의 명령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바로 거룩한 삶입니다. 내 마음대로가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거룩한 삶입니다.

오늘날 우리와도 함께 하시는 거룩한 영은 어떤 역할을 합니까? 성도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안내하십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거룩한 삶을 우리도 살 수 있도록 안내하시는 역할을 합니다.

구약시대에서도 하나님은 ‘너희도 거룩하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아서 거룩하게 살아가도록 두지 않으셨습니다. 거룩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오늘날 성도들이 거룩한 삶을 향해 갈 수 있도록 성령을 요청하셔서 보내주신 것처럼,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은 거룩한 삶을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습니다. 이런 도움이 바로 당시의 제사였습니다. 

민수기 28:16-18 “첫째 달, 그 달 열나흗날은 나 주의 유월절이다. 같은 달 보름부터는 절기가 시작되니, 이레 동안은 누룩을 넣지 않고 만든 빵을 먹어야 한다. 첫날에는 거룩한 모임을 열고, 생업을 돕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말아라.”

28:25-26 “이레째 되는 날에, 너희는 다시 거룩한 모임을 열고, 생업을 돕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말아라. 햇곡식의 날, 곧 새 곡식제물을 나 주에게 가져오는 칠칠절에는 거룩한 모임을 열고, 생업을 위한 일은 아무것도 하지 말아라.”

29:1 “일곱째 달, 그 달 초하루에는 거룩한 모임을 열고, 생업을 돕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말아라. 그 날은 나팔을 부는 날이다.” 29:7 “같은 달, 곧 일곱째 달 열흘날에도 너희는 거룩한 모임을 열고 고행하여라. 너희는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된다.” 29:12 “일곱째 달 보름날에도 거룩한 모임을 열고 생업을 돕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말아라. 이레 동안 주 앞에서 절기를 지켜라.”

매일 아침, 저녁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정해진 날과 절기마다 생업 돕는 일도 하지 않으면서 이런 제사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듣고, 온종일 하나님을 향해 자신을 조율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신약 시대에 성령강림의 사건이 일어나고 성령을 받은 이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사도행전 2:42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몰두하며, 서로 사귀는 일과 빵을 떼는 일과 기도에 힘썼다.” 사도행전에는 심지어 공동생활을 하며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도님들 혹시 부흥회를 통해 은혜받으신 경험이 있으십니까? 1990년대나 2000년대까지는 아마 부흥회를 통해 은혜를 받은 경험이 있으시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런 부흥회의 영향도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엄청나게 줄게 됩니다. 왜일까요? 부흥회를 통해 예전만큼 은혜를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믿음이 예전만 못해서?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부흥회를 통해 예전만큼 오늘날 은혜를 받지 못하는 이유는 예전만큼 시간을 들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90년대에는 새벽, 오전, 오후, 밤까지 네 번의 집회를 사흘 나흘을 연속으로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이 집회가 열리는 동안 많은 성도가 참여하기 위해 생업을 쉬고, 휴가를 내고, 아이를 앞뒤로 매고 지고도 모자라 양손에 아이 손을 잡아가면서 대중교통을 타고 교회로 향하기도 했습니다. 72시간, 86시간을 찬양, 말씀, 기도에 집중했습니다. 이런 결단과 헌신을 통해 시간을 쏟았기 때문에 은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정성을 쏟았습니다. 신약시대의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들도 엄청난 시간과 정성을 쏟았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성령을 거역하지 않고, 인도하심에 따라 거룩한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취미 생활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알려고 하거나, 말씀에 따라 살아가려는 시간을 내지 않습니다. 지난주에도 들으셨지만, 마태복음 6:33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라는 예수님이 약속하신 말씀은 신화 속에나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신앙생활 하면서도 저와 성도님들은 거룩한 백성이 되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싶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싶다면, 하나님,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고 누리고 싶다면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만 합니다.

시간과 정성을 쏟음으로써 성령강림절기에 저와 성도님들이 이미 우리에게 오신 성령님이 우리 각자를 어떤 방향으로 인도하고 계시는지를 깨달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경험케 되기를 소망합니다. 

거룩한 삶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저와 성도님들에게 참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직분의 이름 그대로 거룩한 길을 걷는 성도가 되시기를 다시 한번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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