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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 생태 위기에 청지기 사명을 감당하라!(레 17:10-14 행 6:1-10 막 2:1-12)

기사승인 2023.06.02  00: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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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강림 후 첫째 주일/환경주일(6월4일)

1. 환경오염의 발생 원인 6가지

오늘은 성령강림후 첫째주일이자 환경주일입니다. 지난주에 공장식 축산을 통해 환경오염을 살펴보았는데, 오늘 환경주일을 맞이하여 이곳 무제등 공원에서 야외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 주신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고자 합니다. 특히 이 아름다운 산과 바다를 바라보며 성령강림의 의미를 창조 질서 보전의 의미로 받아들여 생태 환경을 잘 보전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잠시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지만, 이제 다시 하늘이 그 푸른색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지구 환경은 이제 코로나 팬데믹으로 잠시 그 파괴가 멈췄다면, 이제 사람들의 숨겨진 욕망으로 인해 두 배의 가속도로 파괴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는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라, 황사와 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계속되는 환경오염의 발생 원인은 무엇인가요? 오늘 환경주일을 맞아 먼저 환경오염의 발생 원인을 여섯 가지 정도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 세계 인구 전망과 한국 인구 전망

첫째, ‘인구의 급증’입니다. 인구가 증가하면 식량 소비도 증대되고, 생활공간이 더 많이 필요하게 됩니다. 따라서 생활 쓰레기와 배설물이 더 많이 발생합니다. 특히 부요한 선진 국가일수록 한 사람이 소비하는 에너지양이 많아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큽니다. 사실 산업혁명 이전에는, 인간이 배출하는 오염물질은 자연환경이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환경문제는 날이 갈수록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협할 수준으로 발전했습니다. 기술의 발달로 수명이 늘고 인구가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00년 동안의 인구 변화를 살펴보면, 농경 사회 초기에 세계 인구는 500만 명에 불과했으나, 1800년경에는 1억 명이 되었습니다. 2015년 세계의 인구는 약 73억 명이었고, 2023년 현재는 78억 명이며 2100년에는 112억 명이 될 것으로 예측합니다. 산업혁명과 함께 발전한 의료 기술은 병원균의 발견, 공중위생의 개선, 백신 개발, 식량 공급 증대 등, 인구 증가에 큰 기여를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러한 가파른 인구 증가율은 1963년 이후 다행히 감소하고 있습니다. 가족 규모의 변화, 여성의 사회 진출, 산아제한 등이 인구 증가율 감소에 기여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추세는 주로 선진국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저개발 국가나 개발도상국의 인구는 조절되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나라는 저출생(저출산) 1위 국가로 인구 감소에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출생 국가가 되더라도 기술개발과 의학발전으로 수명이 연장되기에 인구수는 줄어드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다면 왜 저출생에 관해 최근 우리 사회가 이렇게 심각하게 생각할까요? 바로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근로 인력이 아닌 단순 연금 수혜자가 늘어나면 그 세금을 뒷받침할 젊은 세대가 필요합니다. 쉽게 말해 젊은 세대가 세금을 내거나, 연금을 부어줘야 은퇴 세대가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연금제도를 개선하고 은퇴 및 노령인구가 우리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하는 교육과 제도가 필요합니다.

▲ ‘자원의 과도한 사용’

두 번째 환경오염의 발생 원인은 ‘자원의 과도한 사용’입니다. 자원 사용량은 인구 증가와 더불어 생활 수준 향상과 관련이 깊습니다. 약 3억 명의 미국 인구가 사용하는 에너지양은 전 세계 에너지 소비량의 30%를 차지합니다. 사실 자원은 재생 가능한 자원과 재생 불가능한 자원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재생 가능한 자원은 산소, 물과 식량, 목재 같은 생물학적 산물이며, 재생 불가능한 자원에는 화석연료와 광물이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 대부분이 재생 불가능한 화석연료라는 사실입니다. 화석연료는 한 번 사용하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방사능이 문제가 되고 핵폐기물로도 더 위험한 핵발전이 대안이 될 수도 없습니다. 에너지 사용을 줄이거나, 아니면 풍력이나 조력, 태양력 등 재생에너지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할 것입니다.

환경오염의 발생 원인 세 번째는 ‘생산력과 소비력의 증대’입니다. 우리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 각종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생산력을 급속하게 신장시켰습니다. 현대적인 제조시설을 갖춘 공장은 과거 가내수공업으로 1년 걸려 생산하던 양을 단 몇 시간 내에 생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동화 시설을 갖춘 대규모 제조공장은 막대한 생산력으로 하루 24시간 쉴 사이 없이 가동되고 있으며, 예전과 같이 소비가 생산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이 소비를 창출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향상된 생산력은 과소비로 인한 쓰레기의 과다 배출과 막대한 양의 자원과 에너지를 소비하게 됨에 따라, 지하자원 채광과 산림의 벌채로 인한 자연 파괴는 물론, 폐기물 발생과 폐수 및 분진 발생, 그리고 제조공정에서 각종 오염물의 발생 등 환경문제에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환경오염의 발생 원인 네 번째는 ‘자연에 대한 인간 우위 사상’입니다. 이러한 인간 우월사상에 따르면, 인간은 자연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으며, 자연 자원은 무한하고 공짜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결국 이런 잘못된 관념이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인간의 자연 정복과 우위 사상의 기원을 창세기에 기록된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창 1:28).”라는 성경 구절에서 그 원인을 찾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성경을 잘못 해석한 것이지만, 기독교 문화권인 서양의 역사를 보면, 변명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사실 서양의 기독교 신학은 인간과 자연이 동등한 피조물이라기보다는 자연을 종속물로 봄으로써 인간 중심의 자연에 대한 정복관을 유지해 왔습니다. 그 결과 모든 지하자원과 자연 자원이 인간 소비생활의 만족을 위하여 무분별하게 이용됐고, 대부분의 개발 행위에는 자연 파괴와 환경오염이 반드시 뒤따랐습니다. 그 예로 지금까지도 야생동물을 죽이고 포획하는 사냥, 낚시 등이 인간의 재미를 위한 스포츠로 규정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환경오염의 발생 원인 다섯 번째는 ‘인간의 이기심’입니다. 이러한 이기심에 대하여 일찍이 개릿 하딘(Garrett Hardin)은 ‘공유지의 비극’이란 예를 들어 설명한 바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 공유지의 비극

“여기에 좋은 공동 방목지(commons)가 있다. 이곳은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자기의 소를 몰고 와서 풀을 뜯어 먹게 할 수 있다. 모든 목자는 가능한 많은 소를 공동 방목지에서 기르려 하였다. 그런데도 과거 수백 년 동안 부족 간의 전쟁, 가뭄 그리고 질병이 공동 방목지에서 생활하는 인간과 가축의 수를 제한하였기 때문에 이 공동 방목지는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사회적 안정이 찾아들자 모든 목자는 그들의 소득을 증대시키려고 방목 가축 수를 증가시켰다. 이들은 한계를 모르고 가축 수를 증가시켰기에 결국 초원은 황폐되고, 가축은 굶어 죽었으며, 목자도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공동 방목지에서의 자유는 결국 이기심으로 말미암아 모두를 파멸시켰습니다. 이러한 ‘공유지의 비극’은 환경오염 문제에서도 나타납니다. 사람들이 이번에는 공동 방목지에 소를 방목시키는 것이 아니라, 각종 폐기물을 내다 버리는 것입니다. 버리는 것은 개개인이 이를 정화하는 것보다 훨씬 편리하고 경제적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대기, 물, 토양, 바다 등의 오염도 바로 공유지의 비극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즉, 이러한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환경오염이 발생하게 됩니다.

환경오염의 발생 원인 여섯 번째는 ‘인간의 근시안적 사고방식’ 때문입니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간의 근시안적 사고방식이 환경오염의 또 다른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 대부분은 현재와 가까운 미래에만 관심이 있을 뿐, 인류의 장래와 자연환경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습니다. 즉,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감이 부족하며 후손들에 대한 배려에는 더욱 인색합니다.

또한 우리는 공간에 대해서도 근시안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우리의 가정, 사무실 등 좁은 공간에 집중되어 있고, 국가, 세계 등. 더 넓은 공간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가정이나 사무실을 깨끗이 청소하고 청결하게 유지합니다. 그러나 산이나 강, 해수욕장 등 보다 더 넓은 공간은 어지럽히고 더럽게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환경오염, 곧 위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오늘 말씀은 바로 이 위기에 대한 대안의 말씀입니다.

오늘 세 본문 말씀은 먼저 성령강림의 의미를 청지기 사명을 감당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먼저 사도행전 말씀은 초대교회가 청지기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역할 분담을 시행한 것을 소개합니다. 봉사의 직분을 위해 집사를 세우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공동체 구성원과 이웃에 관한 봉사입니다. 복음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서 말씀은 한 중풍 병자를 네 사람이 메고 예수님께로 나온 사건입니다. 이것은 고통받는 이에 대한 청지기 사명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에 대한 봉사와 섬김이 구약 본문에서 확장됩니다. 구약 말씀은 피에 관한 규례로 피는 생명이니 먹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에 대한 청지기 사명, 곧 사랑입니다. 이렇게 청지기 사명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 주신 창조 세계를 잘 보전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하여 이 도에 복종하도다!

먼저 사도행전 말씀을 볼까요? 초대교회의 청지기 사명에 관한 말씀으로 역할 분담에 관한 말씀입니다. 특히 청지기 사명을 잘 감당한 스데반 집사님에 대한 소개도 있습니다. 말씀을 볼까요?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구제하는 일)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행 6:1-4)

본문 말씀에 나오는 과부들은 교회의 공공비용으로 생계를 꾸려가던 이들입니다(행 9:41). 이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자 불만이 생겼습니다. 따라서 초대교회는 이러한 접대를 감당할 일꾼을 세웁니다. 일곱 집사를 세우는 것입니다.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 6:5-7)

이렇게 성령이 임한 교회는 역할을 분담하여 청지기 사명을 감당합니다. 당시 초대교회의 주요 사명을 살펴보면, 복음 전도(행 5:42), 말씀을 가르침(행 2:42), 성도의 교제(행 2:42-46), 성만찬과 세례 집전(고전 11:23-34), 권징(마 18:17), 구제(행 6:1-3) 등이 있었습니다. 물론 인간 공동체에 관한 것이고 이웃 사랑에 관한 것이기도 합니다만, 이렇게 초대교회가 역할 분담으로 튼튼히 서야 시선을 피조 세계로 돌릴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이러한 청지기 사명자 가운데 스데반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따라서 스데반과 논쟁하여 이길 사람이 없었습니다. 말씀을 볼까요?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이른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행 6:8-10)

스데반 집사는 이렇게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했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그저 예수님께 나옵니다. 오늘 복음서 말씀이 그렇습니다. 한 중풍 병자를 네 사람이 메고 예수님께로 나온 사건입니다. 이것은 고통받는 이에 대한 청지기 사명입니다. 말씀을 볼까요?

3.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수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사람들이 한 중풍 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 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막 2:1-4)

▲ 한 줄풍 병자를 돕는 네 사람

걷지 못하는 한 중풍 병자를 위해 네 사람이 그를 돕고자 예수님께 침상째 메워서 나왔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막 2:5)”라고 말씀하시며 그를 고쳐주십니다. 그러나 이를 속으로 비난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중풍 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막 2:6-10a)

예수님께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는 말씀이죠? 우리의 질병을 고치시고 죄를 사해주시는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막 2:10b-12)

이렇게 사도행전과 복음서 말씀은 청지기 사명으로 봉사하고 이웃을 섬기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제 구약 말씀을 통해 청지기 사명은 피조물로 확장이 됩니다. 말씀을 볼까요?

4.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 중에 무슨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를 먹는 그 사람에게는 내 얼굴을 대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 17:10-11)

잘 아시다시피, 레위기 17~27장은 이스라엘의 ‘성결법전’입니다. 일상생활과 의식, 도덕과 절기 등에 관한 규율 모음집입니다. 이 법전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을 받았기 때문에 세상의 다른 민족들과 구별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특히 세속과 관계를 맺지 않고 의식적·도덕적으로 성결을 지킴으로써 그들이 유일하게 선택받았음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성결법전에는 동물 제사, 식사, 성결, 제사장의 행동, 언어, 성관계 등에 관한 규율과 거룩하게 지켜야 할 절기의 목록 및 안식년(희년)에 관한 법이 담겨 있는데, 이 법은 안식년에 이스라엘인 노예들을 풀어줄 것을 명령하고 빚진 자의 이자를 받는 것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17장은 희생 제사에 대한 규례로 피를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피는 생명이므로 구약시대에 짐승의 피는 인간의 유일한 속죄 수단으로(히 9:22)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피를 먹는 것은 생명을 먹는 것과 같기에 금지하였습니다. 말씀을 볼까요?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너희 중에 아무도 피를 먹지 말며 너희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라도 피를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나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 먹을 만한 짐승이나 새를 사냥하여 잡거든 그것의 피를 흘리고 흙으로 덮을지니라.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어떤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것의 피인즉 그 피를 먹는 모든 자는 끊어지리라.”(레 17:1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부 시대인 구약시대에는 짐승의 피가 인간의 유일한 속죄 수단이었다면 성자 시대인 신약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 우리를 구원하는 은혜의 복음입니다. 그리고 성령 시대인 지금은 우리의 청지기 사명이 창조 세계를 보전하는 생명의 복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사명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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