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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며 함께 걸어가는 길

기사승인 2023.05.28  03: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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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하는 교회(골로새서 2:1-3)

ⓒFreepik.com
1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2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들어가는 말

이번 주일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그리고 13주간 성령강림 절기가 이어집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아 세상으로 나아갔던 초대 교회 성도들처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성령을 받아 세상에 그 사랑을 전하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이번 주일이 성령강림주일이긴 하지만, 제가 명일한움교회의 담임목사로서 전해드리는 마지막 설교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제가 사임하기 전 마지막으로 전해드리고 싶은 말씀, 이미 처음에 여러분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면서 전해드렸던 이야기를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골로새서의 연합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연합한다’는 단어는 다른 본문에 나오는 ‘연합’과는 단어에 차이가 있습니다. 골로새서의 표현을 살펴보기에 앞서 구약성경의 표현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연합한다는 표현을 쓸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성경구절이 시편 133편 1절일 것입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여기에서 ‘연합’은 히브리어 ‘야하드(יַחַד)’로 집회, 모임의 뜻을 갖습니다. 이런 비슷한 뜻이 ‘모으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아사프(אָסַף)’가 있습니다. 보통 히브리어 성경에서 ‘모인다’. ‘연합한다’라는 뜻으로 이 단어들을 사용합니다.

이 두 단어에 상응하는 헬라어는 ‘쉬나고(συνάγω)’입니다. 우리가 유대인 회당이라는 의미로 자주 들어본 단어인 ‘시나고그(Synagogue)’가 헬라어 ‘쉬나고게(συναγωγή)’에서 나온 말이고 집회를 의미하는 ‘쉬나고게’는 ‘모인다’는 의미의 ‘쉬나고’에서 나온 말입니다.

모임을 의미하는 몇몇 단어들이 더 있지만, 이때 사용된 단어들은 그냥 ‘모여있음’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물을 모으셔서 물이 하나로 모였다고 할 때 ‘쉬나고게’가 사용된 것처럼 그저 한 데 묶여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골로새서에서 사용된 연합이라는 단어는 헬라어 ‘쉼비바조(συμβιβάζω)’입니다. 성경 전체에서 17번 밖에 사용되지 않은 단어이고, ‘연합한다’는 뜻으로는 신약성경에서도 에베소서와 골로새서 두 군데에서밖에 사용되지 않습니다.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를 제외한 나머지 14번은 전부 ‘가르친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렇다면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의 번역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듯 합니다만, ‘쉼비바조’의 본래 의미, 언어의 기원을 생각해보면 ‘연합하다’가 잘못된 번역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쉼비바조’는 ‘~과 함께’라는 의미를 가진 전치사 ‘쉰(σύν)’에 ‘발’, ‘한 걸음’이라는 의미를 가진 ‘바시스(βάσις)’의 합성어입니다.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에서는 ‘받침대’라는 단어를 전부 ‘바시스’로 번역해놓았고, 이는 영어 basis(기초)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쉼비바조’는 ‘함께 걸음을 내딛는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렇기에 알고 있는 지식을 가르친다는 의미로도 사용되는데, 이때도 그냥 무언가 지식을 전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함께하며 지식을 나누어준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골로새서가 ‘연합’이라는 의미로 ‘쉼비바조’를 사용했다면, 이는 분명 그저 모여있는  ‘쉬나고게’의 상태와는 다른 상태를 말합니다.

사랑 안에서 연합하는 교회

골로새서의 저자는 연합한다는 말 앞에 한 가지 단서를 붙여놓습니다. ‘사랑 안에서’ 연합하라는 것입니다. 사랑 안에서 연합할 때,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는다고 말합니다.

‘함께 걸음을 내딛는다’는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사랑 안에서’라는 말은 반드시 필요한 전제입니다. 사랑이 없다면 누군가와 맞춰가는 일, 누군가와 함께 하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한 걸음을 내딛는 일이 쉬워보이지만, 어떤 사람은 오른쪽으로 발을 내딛고, 어떤 사람은 왼쪽으로 발을 내딛는다면 그들은 함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서로 발이 엉키게 되거나 서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게 될 뿐입니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 안에서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서로의 뜻을 맞춰나가며, 같은 방향으로 한 걸음을 옮기는 일이 그리스도인의 연합입니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는 길 속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깨달아가게 됩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 대면 예배에 어려움이 있던 시기에 에베소서 말씀을 통해 성도님들이 교회라는 이야기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교회 건물에 다같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외치던 이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건물은 교회가 아닙니다. 모임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특정 장소일 뿐입니다. 교회라는 건물 안에 모여계신 성도님들이 교회입니다. 사랑 안에서 연합한 성도님들의 모임이 교회입니다.

그렇기에 교회에서 대면 예배를 드리건, 온라인 화상 통화를 통해 모이건, 유튜브 영상을 통해 모이건, 연합한 성도님들이 모여있는 그곳이 교회입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성도님들이 모여있다 하더라도 서로 사랑으로 연합하지 못했다면, 그곳은 교회라고 부를 수 없을 것입니다.

시대에 따라 교회의 외형은 바뀔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의 연합이 교회라는 본질은 언제라도 변하지 않습니다. 성도님들이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있다면, 그 교회는 결코 흔들리지도 무너지지도 않습니다.

사랑 안에서 연합하는 일은 성도님들이 모두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똑같은 길을 걸어간다는 의미와는 조금 다릅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때로는 자신의 뜻을 양보하기도 하고, 서로를 생각하며 발맞춰 나가는 일이 연합입니다.

사랑으로 연합한 교회를 이루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더 나아가 각각의 교회들이 연합해가고, 교단들까지도 연합해 나갈 수 있다면, 더 이상 이 땅에서 개신교의 위기라는 말은 들리게 되지 않을 줄 믿습니다. 또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져 갈 줄 믿습니다.

나가는 말

2018년 말부터 에큐메니안에 설교문을 기재했습니다. 제 글솜씨가 좋아서도 아니고 제 설교가 너무 은혜롭기 때문에 이를 자랑하기 위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성경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나눠보려 했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조금 더 깨달아 가고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이제 시무하고 있던 명일한움교회를 사임하게 되어, 더 이상 설교문을 기재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말씀을 읽고 함께 나눠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또 여러분이 속한 교회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 됨을 이루며 날마다 은혜로 충만하시길 바랍니다.

이성훈 목사(명일한움교회) joey8100@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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