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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물며 너희일까보냐

기사승인 2023.05.22  00: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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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민수기 28:1-2)

▲ 성경의 정신은 땅은 하나님의 것이기에 소유물로 파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Getty Images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한 주간 아무 일도 없이 잘 지내셨냐는 질문이 아닙니다. 좋지 않은 일, 좋은 일을 겪으면서도 상황들에 끌려가지 않고, 상황과 관계없이 마음의 평안을 누리셨냐는 질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즐거움, 분노, 슬픔, 기쁨인 희로애락 중에 희와 락만 경험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노와 애, 분노나 슬픔을 피해 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살아가다 보면 갑자기 또는 시시때때로 두려움과 불안의 감정이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어떤 일,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음에도 그렇습니다. 이런 두려움과 불안의 감정이 느껴지면 삶에 힘이 들어가게 됩니다.

누가 쫓아오거나 부추기는 것도 아닌데, 괜히 혼자 좌불안석이 되어서 마음이 급해집니다. 두려움과 불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 때문에 자연스럽지 않은, 억지스러운, 무리한 일이나 감정 소모를 하게 되는 경우가 참 많아집니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은 생각이 끊임없이 들기 때문입니다.

두려움과 불안이 발생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크게 두 가지 이유로 두려움과 불안의 감정을 느낍니다. 하나는 개인적인 목적이 생길 때 발생합니다. 목적이 생기면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마음’이 자리를 잡게 되는데, 그렇게 되지 않을까 봐 불안합니다. 큰 목적이건 작은 목적이건 상관없이 이런 마음이 듭니다.

또 다른 하나는 결핍 때문입니다. 부족하다는 겁니다. 아마 저를 비롯해 대부분의 성도님에게 있어 경제적인 결핍의 경우가 가장 클 것입니다. 건강, 자녀, 관계, 직장, 사람의 인정이라는 결핍을 느끼면 불안과 두려움이 올라옵니다. 이러한 결핍에 책임감까지 더해지면 두려움과 불안의 감정은 더 폭발력이 생기기도 합니다.

두려움과 불안의 감정이 커지면 숨을 쉬기 힘들어지거나, 두통으로 머리가 아플 때도 있습니다.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밀려오고, 단시간 안에 해결될 수 없다는 절망감이 들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 놓이거나, 감정에 휩싸이게 되면 삶에 힘을 주게 됩니다. 삶에 힘이 들어갑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억지스러운, 무리한, 불필요한 일을 하거나 감정을 소모하게 됩니다.

성도님들은 이런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해오면 어떻게 하십니까? “내가 너무 힘주고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 어떻게 하십니까? 저는 두려움과 불안의 감정이 엄습하면, 잔뜩 힘을 주고 살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면, 이 모든 감정을 느끼면서, 이 감정들과 함께 침묵하며 묵상으로 들어갑니다. 묵상하면서 집중하는 것은 한 가지입니다. ‘내가 누구와 함께 있는가.’를 떠올리는 것입니다.

나와 함께 있는, 우리와 함께 있는 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네, 하나님이십니다. 나와 우리와 동행하고 계십니다. 침묵하며 묵상할 때, 나의 존재가 이런저런 상황과 감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 안에 있음을 느끼게 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꽉 쥐었던 손을 펴게 됩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꽉 쥐었던 손을 놓는, 삶에 힘을 뺄 수 있게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깨달음이 내 삶에 어떤 도움이 되기에 이런 감정을 느끼고, 삶에 변화를 줄 수 있습니까? ‘내 삶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삶과 우리의 삶을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 되심을 떠올리게 되면 힘을 주었던 어깨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새 두려움과 불안의 감정도 물러서 있음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가 ‘내 삶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함께 읽은 민수기 본문을 통해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내 헌물, 내 음식인 화제물 내 향기로운 것은 너희가 그 정한 시기에 삼가 내게 바칠지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의 소유에 대해 오늘 본문에서 어떻게 표현하고 계십니까? ‘내 헌물’, ‘내 음식’, ‘내 향기로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그 정한 시기에 삼가 내게 바칠지니라.’는 표현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의 시간마저도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소유권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지 않으시고, 자신에게 하나님에게 두고 계십니다. 애초에 내 것이라고 여겼던 모든 것들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에 ‘내 삶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까닭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노예였던 이집트에서 탈출하는 과정과 가나안으로 가기까지 광야 여정의 과정을 통해 이런 소유권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이 정당하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이들의 삶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내 공로는 없고 오로지 하나님이 하셨다. 하나님이 나와 우리의 삶을 이끄셨다.’라는 고백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26장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두 번째 인구조사를 하신 뒤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 분배에 관한 말씀을 전하십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땅은 사람 수에 따라서, 그들의 유산으로 나누어 주어야 한다. 사람이 많으면 유산을 많이 주어야 하고, 사람이 적으면 유산을 적게 주어야 한다. 유산은 등록된 사람 수에 따라서, 각기 나누어 주어야 한다. 유산으로 받는 땅은 오직 제비를 뽑아 나누어야 하고, 그들은 그것을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지파의 이름으로 물려받아야 한다. 각 유산은 제비를 뽑아 나누어야 한다. 사람 수가 많은 지파들은 큰 땅을, 사람 수가 적은 지파들은 적은 땅을 놓고 추첨하여야 한다.’”(민수기 26:52-56)

앞으로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면, 원주민들과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그럼 그 과정에서 지파별로 희생된 수도 다를 것이고, 공과도 분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땅 분배는 전쟁 이후,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후에 해도 늦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당연하게 보입니다.

내 가문이 더 큰 희생을 했고, 내 가문이 더 전쟁에서 승리했으면 더 많은 땅 또는 더 비옥한 땅을 갖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닙니까? 땅을 선택할 권한이 가장 먼저 주어져야 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앞으로 지파별로 나오게 될 희생자나 공적과는 상관없이 인구수에 비례해서 그것도 제비뽑기로 땅을 나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땅 분배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도 불평을 토하거나, 가나안 정복 전쟁 이후 그대로 수용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기를 가지고 전쟁하기 위해 나가지만, 승리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유다의 왕이었던 히스기야는 자신들보다 더 강대한 나라인 앗수르가 침략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를 따르는 온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그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말미암아 안심하니라.”(역대하 32:7-8)

남유다는 아주 작은 나라에 불과했습니다. 누구라도 침범하면 없어질 만한 나라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대신 싸우신다는 왕의 말을 듣고 백성이 안심했다고 기록합니다.

더 과거의 가나안 땅 앞에 선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들의 지략과 무기, 힘, 군대 수는 전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삶에 힘을 준다면 반드시 실패할 것입니다. 하지만 겸손하게 삶에 힘을 빼고 하나님께 맡기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승리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선택한 야곱아, 나의 친구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데리고 왔으며, 세상의 가장 먼 곳으로부터 너를 불러냈다. 그리고 내가 너에게 말하였다. 너는 나의 종이니, 내가 너를 선택하였고, 버리지 않았다고 하였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의 하나님이니, 떨지 말아라. 내가 너를 강하게 하겠다. 내가 너를 도와주고, 내 승리의 오른팔로 너를 붙들어 주겠다.”(이사야 41:8-10)

이사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다.’ 할렐루야! ‘떨지 말아라, 내가 너를 도와주겠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나와 우리 삶의 주인이시기에 이끌어 가십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고, 두려움과 불안에 기반한 선택과 삶이 아니라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소유를 아무렇게나 하시겠습니까?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마태복음 6:28-30)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어부는 없습니다.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어부도 없습니다. 태풍을 피할 수 있는 어부도 없습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안과 두려움, 원치 않는 상황을 피할 수 없습니다. 계속 대면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비, 바람, 태풍도 배를 떠내려가게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배와 우리 삶의 닻이 되어주시기 때문입니다. 배를 고정하고, 삶을 고정하는 튼튼하고도 거대한 닻이 되어주십니다.

내가, 성도님이 하나님을 붙들고 있는 것 같으십니까? 그건 착각입니다. 하나님께서 나, 우리, 성도님을 붙들고 계십니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내 헌물, 내 음식인 화제물 내 향기로운 것은 너희가 그 정한 시기에 삼가 내게 바칠지니라”

내 것이 아닌데, 스스로 주인 노릇 하려 하니 힘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끌어가고 계시는데, 나의 목적과 욕망이 생기니 두렵고 불안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정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나와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심을 인정하십시오. 삶에 주었던 힘을 빼고, 더 자유롭게, 더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실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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