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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나는 우리 아이들, 그럼 만들자!”

기사승인 2023.05.15  03: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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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윤종술 회장님을 만나다 (1)

▲ 윤종술 회장이 부모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발달장애인 자녀가 교육기관에서 쫓겨나는 사건을 만나면서였다. ⓒ정리연

“발달장애아 가족도 행복할 수 있나요?”

5살 발달장애아를 키우고 있는 엄마가 한 맘카페에 올린 글의 제목이다. 아이는 아직 기저귀를 떼지 못했고, 혼자 밥을 먹지 못한다. 옷을 입거나 신발을 신는 것도 혼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부모가 해주려고 하면 이리저리 몸을 바둥거리거나 버티고, 도망가고, 소리를 지르는 통에 진이 다 빠진다고 한다.

평일엔 오롯이 그녀의 몫인데, 큰아이를 돌보면서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둘째 아이를 여러 치료(언어, 작업, 체육, 물리 등)를 위해 매일 각 센터를 돌아다녀야 한다. 활동보조 서비스도 한계가 있어서 그녀는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이 치료 활동에 들어가는 금액이 만만치 않아서 다시 일해야 하는데 그럴 수도 없는 현실이다. 몸도 마음도 지치니, 남편과 싸움도 잦아지고 괜히 첫째 아이에게도 짜증을 내게 된다고 한다. 엄마는 간절한 마음으로 묻고 있다. 발달장애아가 좀 더 크면, 청소년이나 성인이 되면, 지금보다 행복하게 살 수 있냐고 말이다. 누가 답할 수 있을까?

자폐아들의 권리를 위해 시작한 운동이 모든 자녀를 위한 부모운동으로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용산에 있는 장애인커뮤니티센터에서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이하, 부모연대) 윤종술 회장을 만났다. 전날 경남에서 서울에 올라왔다고 한다. 집회 때마다 계시길래 당연히 수도권에 살고 계실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일주일의 3일은 서울에서, 나머지는 생업을 하며 경남에서 지낸다는 윤 회장, 어쩌다가(?) 이런 삶을 살게 된 걸까?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매주 지방에서 오가는 게 쉽지 않으실텐데요, 한두 달도 아니고 몇 년째잖아요. 이렇게까지 부모연대 활동을 하시는 이유는 뭔가요?

제 아들이 29살인데 자폐장애가 있습니다. 아이가 서널 살 무렵에 어린이집에 보냈는데, 며칠 만에 쫓겨나는 거예요. 보내는 곳마다. 지금은 통합 어린이집도 있고, 장애 전담 어린이집도 있지만, 그때만 해도 일반 어린이집만 있었거든요.

같은 치료실에 다니는 부모님들이랑 어린이집 정보를 주고받았는데 다들 상황이 똑같더라고요. 장애 아동만 받는 어린이집도 없고요. “없다고? 그러면 우리가 만들자!”는 얘기가 나왔어요. 제가 그때 경남 김해에서 참여연대 시민단체 집행위원장을 하고 있었는데 김해시하고 싸워서 장애전담 어린이집을 만들게 된 거죠.

▲ 아! 장애전담 어린이집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건가요? 얼마나 걸리셨어요?

네. 최초였죠. 오래 걸리지는 않았어요. 때마침, 김해시 종합사회복지관에 일반 어린이집을 지으려고 설계를 하고 있었어요. 그걸 장애 전담으로 바꿔 달라고 요구했죠. 그래서 일 년도 안 되어서 장애전담 어린이집이 만들어졌어요.

▲ 시에서 쉽게 승인해줬나요?

그건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해줄 수 없다고 했죠. 계속 요구했는데도 협의가 안 되길래 저희가 시장실을 점거했어요. 점거한 지 11일 지나니까 시에서 장애전담 어린이집을 만들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시장실 점거를 풀고 나왔는데, 저를 구속했어요. 그게 이 일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제가 참여연대를 포함해서 시민사회 활동을 하고 있었잖아요. 어느 날 아내가 그러더라고요. 어차피 활동할 거면, 아이들을 위해서 하면 좋겠다고. 그래서 김해에서 장애인 부모회를 결성하고, 장애인 부모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그럼, 장애인 부모운동도 김해에서 처음으로 시작한 건가요?

▲ 2003년 장애인교육권연대가 충북 청주를 시작으로 전국 12개 시도 교육청과 주요도시를 순회하는 투쟁활동에 돌입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었다. ⓒ에이블뉴스
그 당시에 전국적으로 장애인 부모단체가 있긴 했어요. 운동 단체라기 보다는 모임 정도였지요. 하지만 저희는 부모회를 만들고 시민단체에 가입했어요. 우리 문제뿐 아니라 지역사회 내에서 벌어지는 여러 운동에 연대했어요. 그러면서 장애인 부모운동이라는 걸 시작했지요. 그때가 2000년도쯤 될 거예요.

▲ 김해 지역에서 장애인 부모운동을 시작하셔 서울까지, 전국적으로 넓혀지게 되었군요?

네. 지역에서 하다가 한국장애인부모회라는 단체에 가입을 하게 됐습니다. 경남 김해 지부장으로 활동을 하다가 한국장애인부모회 경남 회장이 됐어요. 어느 날, 전국교직원노동조합하고 단체들이 장애인 교육 문제를 가지고 집회한다는 정보를 우연히, 인터넷 카페에서 봤어요. 그래서 서울에 올라왔죠. 그런데 거기에 장애인 부모들은 없고 예비 특수교사들, 전교조 선생님들 뿐이더라고요. 집회에 참석하면서 부모 단위가 있어야겠다는 걸 느꼈어요.

그렇게 집회에 참여하고 그날 저녁에 전교조 특수교육위원회 회의 때 맨 뒤에 앉아 있었어요. 전교조 특교위원장 도경만 선생님, 지금은 세종교육청의 장학관님인데, 그분이 장애아동 교육권을 위해서 단식하신다고 하더라고요. 혼자 하시게 하는 게 마음이 쓰여서 제가 같이하겠다고 했고, 2003년 7월에 단식을 시작했어요.

▲ 그 당시에 요구한 내용들은 어떤 건가요?

장애아동 교육권을 위해서 치료교육 교사를 파견하라, 특수학교 보조 인력을 포함해서 모든 학교, 일반 학급에도 보조 인력을 파견하라 등 7가지 요구 사항을 걸고 단식을 했어요. 마침내 합의가 되었고, 서울로 올라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어요.

그러다가 전국장애인교육권연대 대표가 됐고 교육운동을 하다 보니, 복지운동도 필요하겠더라고요. 교육부 하고 이야기하다가 이젠 복지부하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런 운동 단체가 없었어요. 그래서 2008년 12월에 복지부 허가를 받고 장애인부모연대가 출범하게 됐죠. 부모 연대를 만들자고 2004년부터 준비 위원을 만들어서 매년 활동을 해오고 있었거든요. 그 결실인 거죠.

정리연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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