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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의 벽을 허무는 능력

기사승인 2023.05.14  00: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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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 차별의 벽을 허무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의 때문이다. ⓒGetty Images
이제 (율)법 없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는데,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이르는 것으로 아무 차이가 없다.(롬 3,21-22)

‘없이’로 옮긴 말은 ‘~외에’로 옮겨지기도 합니다. 이는 본문의 의도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없이로 했습니다. 지금 나타난 하나님의 의는 (율)법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서 (율)법의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관계가 있다면,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고 기다리던 것이라는 점에서 지시하는 것과 지시되는 것의 지시관계가 있을 뿐입니다. (율)법과 예언으로 담아낼 수 없고 지금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양자를 그 안에 품을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의가 (율)법과 상관 없음은 그 기원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사람과 관계될 때에도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에게 국한된 법과 달리 이 하나님의 의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습니다. 그럼에도 양자 사이에는 형식적 유비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집단으로 하나님과 계약을 맺고 법을 하나님에게서 받았다면 하나님의 의는 개별적이며 믿음으로 얻어지고 사랑의 법을 받습니다. 여기서 믿음이 계약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이 드러납니다. 여하튼 법은 예외가 없지 않으나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동질성 위에 있습니다.

이와 달리 하나님의 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 그것을 얻는 사람들은 이질적일 수 있습니다. 예컨대 바울이 여기서 염두에 두고 있는 유대인과 비유대인입니다. 비유대인은 법과 관련하여 법으로부터 소외된 자였지만, 하나님의 의와 관련해서는 유대인과 비유대인의 구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어느 누구든지 특권을 가진 자리에 있을 수 없습니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차이는 있겠지만,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없는 까닭은 하나님의 의에 대해 누구나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의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창조주로 모든 피조물의 하나님입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주셨는데, 그 이유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넘어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 더 나아가 사랑의 관계를 이루기 위함입니다. 예수의 일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도 그 능력 때문입니다. 자연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을 그의 아들을 닦아놓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람의 하나님 되시기를 원하시고 기뻐하십니다. 그 기쁨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평화를 낳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는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인정되지 않을 것입니다(요 14-15장).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의는 그것을 얻은 사람들 사이의 평화입니다. 사랑으로 평화를 이루라는 명령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의를 얻고 감사하며 평화의 길을 가는 오늘이기를. 하나님의 의로 차별의 벽을 허물고 사랑의 기쁨을 낳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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