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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을 기다렸습니다. 또 기다리겠습니다”

기사승인 2023.03.24  15:3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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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장연, 서울420 출범식 열고 오 시장에게 진정성 있는 대화 촉구

▲ 장애인들은 오이도 지하철역에서 장애인 사망 사건이 발생한지 22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멀기만한 장애인 이동권의 현실을 고발했다. ⓒ정리연

조용하다. 시청역에 도착했는데, 휠체어를 이용하는 혹은 이용하지 않는 장애인과 활동가들 그리고 그들과 대치하고 있어야 할 경찰들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어느 쪽인지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안내 방송이 들렸다.

“시민 여러분께 안내 말씀드립니다. 현재 전장연의 시위로 환승 통로가 매우 혼잡하오니…”

2호선 환승 통로를 따라가 보니 피켓을 들고 몇 명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장애인들은 없었다. 지하철 타고 오는 중인가? 경찰도 몇 명 없었다. 의아해하면서 우선 자리를 잡고 사진을 찍었다. 어떤 분이 오셔서 “취재 오셨어요?” 묻길래 “네” 대답했더니, 보도자료를 건네주었다.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이하 한장협)라고 쓰여있었다. 어, 뭐지? 다시 앞에 있는 사람들을 봤다.

‘당사자의 선택권 보장’, ‘시설 폐쇄 법안 반대’, ‘장애인 거주시설은 감옥이 아니다. 전장연은 이용 장애인, 부모, 시설 종사자에게 즉각 사죄하라!’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 알고 보니, 전장연을 규탄하는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의 기자회견이었다.

한장협은 “전장연은 지하철 시위와 각종 활동에서 장애인 거주시설을 감옥으로 지칭하여 그간의 장애인 거주시설의 노력을 비하하고 시설 종사자뿐 아니라 이용 장애인과 그 부모에게도 불명예와 자괴감을 갖게 하였다”면서 “일부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발생한 문제를 부풀려 모든 시설의 문제인양 드러내고 이를 빌미로 시설 폐쇄 요구 및 시설이 각종 조사를 받게 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전장연이 주장하는 탈시설과 관련해 “탈시설은 장애인의 선택에 기반한 다양한 거주 공간에서 살 권리를 담보하지 못하는 개념으로 어떠한 미래지향적인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며 개념에 대한 사회적 합의 과정도 거치치 않았기에 강력히 비판하고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장애인 거주시설은 거주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장애인의 선택과 욕구에 준하여 다양화 및 특성화로 변화·발전하여 이용 장애인의 삶을 보다 온전히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오늘의 목적지는 여기가 아니어서 일찍 자리를 떴다.

누구를 위한 ‘선’이여야 하나

몇 걸음 걸어가니 승강장에는 피켓을 손에 들고, 목과 휠체어에 건 장애인들과 활동가들, 취재하러 온 기자들, 그들을 둘러싼 경찰들까지 빼곡했다. 게다가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을 위한 길을 확보해둬야 했기에 좁은 승강장에서 서로의 발을 밟지 않으려고 발꿈치를 들고 있어야 할 정도였다. 시민들이 지나가야 하니 ‘라인(선)’을 넘지 말라는 경찰의 짜증 섞인 말을 들으며 장애인들을 위한 길은 왜 없는 건가, 그 ‘선’을 없애고 함께 이동하는 ‘길’을 만들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오늘 오전 시청역에서는 장애인들의 지하철 승차와 그들이 이동하기 위한 엘리베이터, 심지어 시민청 장애인 화장실 사용까지 막았다고 한다. 장애인의 이동권과 인권이 사라진 시간이었다.

전장연은 지난 1월 2일(출근길 지하철 선전전 253일차)부터 오세훈 서울시장의 휴전제안과 대화 추진 등 과정에서 23.3.23.(출근길 지하철선전전 308일차)까지 ‘출근길 지하철 탑승 선전전’을 멈추고 ‘출근길 지하철 무탑승 선전전’을 승강장에서만 진행해 왔다. 기획재정부는 ‘24년 정부예산 재정전략회의 1차를 3.27로 잡고 있다. 전장연은 기획재정부의 답변을 3월23일까지 기다렸으나 지금까지 전장연의 요구에 대하여 답변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전장연은 국회 ‘약자의 눈’ 의원모임과 종교계와의 만남 그리고 ‘손가락질이 아니라 달을 보며 소통하고자 하는, 전장연과 달보기 운동’에 동참해주시는 시민들의 소통을 믿으며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81년부터 ‘장애인의 날’로 규정된 법정기념일)까지 또다시 기다리기로 했다. 현재 ‘약자의 눈’에서 국무총리 면담을 추진 중에 있다. 전장연은 기획재정부를 상대로 하는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감옥 같은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권리’를 예산으로 보장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또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전장연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전장연은 오 시장과의 진정한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을 원했다. 하지만 오 시장과 대화에 대한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부득이하게 서울시청역 1호선을 중심으로 오 시장과의 대화 촉구를 위한 지하철 탑승 선전전을 진행하게 되었다.

전장연 시위가 불법?

전장연 ‘서울420 출범식’을 시작하며 전장연 박경석 공동대표가 발언을 시작하자, 안내 방송이 나왔다.

“전장연은 불법시위를 멈추라. 역내에서 고성과 집회를 하는 건 불법이다. 또한 불법시위자들이 지하철을 탑승하려고 할 때 우리는 승차 거부를 할 수 있다.”

박 대표는 “우리가 출근길에 지하철을 타기 시작한 것은 2021년 12월부터이지만, 오이도 추락 사망 사건 이후로 우리는 계속 싸우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22년을 기다렸습니다. 또 기다리겠습니다”라면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장애인들이 시설에, 집구석에 처박혀서 벽만 보고 있었던 배제와 소외와 차별에서 이제 벽을 보고 욕이라도 해야겠다고, 그런 힘을 좀 가져보려고 밖으로 나왔다”고 강조했다.

“4월 20일, 시혜와 동정의 장애인의 날이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이 결단해서, 이동권 예산 보장하십시오. 장애인들은 나가려고 하면 비장애인에 비해서 서너배의 시간이 걸립니다. 이 기다림의 시간을 여러분들 느낄 수 있겠습니까? 오늘 오세훈 시장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이 올라왔습니다. ‘전장연의 불법 점거 시위를 막아주시기를 탄원합니다(중략). 마지막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서울시는 노력하겠습니다’라고요. 여전히 말로만 하는 정치 때문에 저희가 나섰습니다. 오세훈 시장의 말에 의하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장애인의 인식을 가장 나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오세훈이 직접 말한 게 아니라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의 글을 인용하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너무 비겁합니다. 이게 시장의 갈라치기 혐오정치입니다. 전장연을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탈시설의 권리를, 권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준했음에도 불구하고, 권고이기 때문에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뻔뻔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오세훈 서울시장입니다. 4호선은 타지 않겠지만, 오세훈 서울시장, 무책임하고 혐오적인 정치인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 시청역 1호선은 타겠습니다.”

또한 서울시의 탈시설 장애인 실태 전수조사와 맞춤형 공공일자리 수행기관 현장·실사 조사는 전장연을 죽이려는 표적 수사라고 주장하며 “오세훈 서울시장은 전수조사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하지 않은 방식으로 1명씩 뒤지는 조사를 하고 있다. 서울시의 갑질, 폭력적인 일제 점검 조사를 멈춰달라”며 “서울시는 중증장애인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우리와 대화하고, 예산 반영과 함께 조치를 취해달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그 답이 돌아올 때까지, 죄송하지만 무거운 마음으로 서울 시청역 1호선을 중심으로 출근길에 지하철을 탑승해 선전하겠다”고 예고했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조아라 활동가의 발언이 이어졌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서는 시설이 절대 확대될 수는 없다고 이야기하는데, 오 시장은 반대하고 있다며 “서울시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과 탈시설가이드라인은 권고일 뿐이기 때문에 지키지 않겠다고, 그 흐름에 따라가지 않겠다고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장차연 김진석 개인대의원은 자신의 탈시설 경험과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공유했다.

“중증장애인으로 살아오면서 지역사회가 아닌 수용시설이라는 곳에서 시혜와 동정, 폭력적인 상황에 있었습니다. 30년 동안 시설에 살다가 탈시설을 한지 올해로 8년, 노동자로는 3년 차입니다.”라며 중증장애인도 공공일자리를 통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지역 시민의 한 사람으로 노동하고 교육받고 이동할 수 있기를 소망했다.

노들장애인야학 천성호 교장은 “서울시는 오직 시설에 가두고 시설 밖에서의 자유로운 삶을 방해하고 있다”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위반하는 오 시장을 비판했다.

▲ 서울420 출범식에 참석한 장애인들은 오 시장의 탈시설 반대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정리연

서로 웃으면서 인사할 수 있는 사회

얼마 전이었다. 지하철 환승을 위해 계단을 오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왁!” 고함 소리와 함께 내 얼굴 앞으로 상어 인형이 튀어나왔다. “어멋!” 깜짝 놀라서 옆을 돌아보니 한 청년이 웃으면서 인형을 흔들고 있었다. 이내 엄마인 듯한 여성이 “어머, 죄송해요”라고 사과했다. “괜찮아요” 대답하면서 순간 알아차렸다. 그 청년은 발달장애인이었다. 덩치는 나보다 훨씬 컸지만, 말이나 행동은 어린아이 같았다. 그냥 장난스러운 행동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 온 아이에게 웃으며 인형이 매우 예쁘다고 해주었다. 이렇게 반응할 수 있었던 건 내가 천사여서가 아니라, 이전에도 발달장애인을 만나본 적이 있었고 평소에 그들의 행동이나 관련 사항들을 듣고 조금이라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면서 장애인들과 자주 마주치고 접할 수 있다면 혐오나 어색함이 점점 줄어들지 않을까.

다음은 피플성북센터 김기백 활동가는 발달장애인 자립생활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발달장애인의 언어는 목소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발달장애인은 아무것도 못 하는 존재로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못 하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동등한 사람이고 시민입니다. 지역사회에서 필요한 활동지원과 24시간 지원체계가 생기면 우리도 이동할 수 있습니다. 활동지원 시간이 부족한 경우에는 아파도 병원에 가기 어렵고 주거가 불안정하면 시설이나 정신병원에 가게 됩니다. 권리예산이 보장되어서 동료들이 안정적인 주거에서 생활하면 좋겠습니다. 일자리도 필요합니다. 돈도 제대로 받지 못합니다.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 내에서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서울시와 오세훈 시장은 우리 이야기를 듣지 않고 무관용 무정차를 이야기합니다. 말이 됩니까?”

빈곤사회연대 정성철 사무국장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로 대표되는,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자고 외치는 지하철 투쟁을 탄압하며, 전장연은 약자가 아니라고 하는 오세훈 시장의 폭거 역시 이러한 흐름에 함께 있다.”며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조건과 환경이 마련되지 않아서 시설에 갇히고 존엄한 삶을 상상할 수 없게 만드는 시설정책을 옹호하며 함께 살자는 외침에 혐오와 차별을 조장한다”고 지적했다.

부활의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곳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내내 문화공연 중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노랫말이 마음에 울렸다.

우리가 거리로 나온 이유/ 나오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 몰라
우리가 거리로 나온 이유/ 차별에 맞서 싸우기 위해
우리가 거리로 나온 이유/ 거리로 나와서 투쟁하는 이유

그래. 당신들이 거리로 나와주어서, 용기 있는 걸음을 내주어서 우리가 알게 되었지. ‘문’이 열리지 않아서 그동안 얼마나 갇혀 살았는지, ‘길’이 끊겨 있어서 이동하기 얼마나 어려웠는지, ‘눈’을 마주쳐주지 않아서 얼마나 외로웠는지를.

그러고 보니 이 모든 걸 몸소 행하면 살았던 예수님이 떠오른다. 차별 없이 한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빵을 떼어 먹던 손, 약한 자들의 발걸음에 맞춰 먼지 나는 길을 걷던 발, 소외 받는 자들을 친히 찾아가 같이 눈물 흘리던 눈. 예수님의 부활을 기다리며 묵상하고 있는 요즘, 고난을 이기고 예수님이 어둠에서 나오신다면 어디로 가실까?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자라면, 예수님이 가실 그곳에 미리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한편,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이하 ‘420공투단’)은 정부가 정한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이 장애인의 수많은 차별과 억압을 은폐시키는 날로 기능하기에 이를 단호히 거부하고, 모든 차별에 맞서 함께 싸워나가는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만들어나가기 위해 2002년부터 장애·인권·노동·사회단체들이 참여하고 연대하는 공동투쟁기구이다. 420공투단은 매년 3월 26일(최옥란 열사 기일) 출범식부터 5월 1일(노동절) 해단식까지 장애인차별철폐를 요구하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올해 420공투단은 최저생계비 현실화와 장애인 생존권을 요구하며 투쟁했던 장애여성 최옥란 열사의 기일인 3월 26일을 맞이하여 “열차는 어둠을 헤치고”라는 슬로건 아래 ‘19회 전국장애인대회 및 2023년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 출범식’을 3월 23일(목)~3월 24일(금) 양일 간 개최하고 있다.

정리연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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