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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는 이들이 있는 곳에 언제나

기사승인 2023.03.20  02:5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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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故) 임보라 목사를 기억하며

▲ 고(故) 임보라 목사
이 추모글는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에서 매달 발행하는 <종교와 평화> 2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에큐메니안에 게재를 허락해 주신 필자이신 최형묵 목사님과 <종교와 평화> 민성식 편집장님 그리고 <종교와 평화> 관계자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다시 한번 임보라 목사님의 명복을 빕니다. - 편집자 주

어떤 사람에게 특정한 낙인찍기는 편견을 고정시키는 효과를 발휘한다. 신앙에 따라 고유한 역할을 수행하는 성직자에게 ‘이단’이라는 낙인은 일반적 편견 이상으로 치명적이다. 그의 역할과 존재 자체가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교권의 독단이 지배하던 시기에는 그 낙인이 찍히는 순간 목숨을 잃어야 할 만큼 위중하였다. 오늘날에야 그 시절 ‘마녀사냥’처럼 곧바로 목숨을 잃는 일은 없다고 하지만,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효과는 결코 가볍지 않다.

임보라 목사는 어느 날 그 낙인을 안게 되었다. 성소수자들과 함께 하는 목회활동 때문이었다. 그렇게 낙인을 찍은 교권 세력은 그 활동이 성서와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심각하게 위배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 부당성을 주장하는 당사자의 호소와 소속교단(한국기독교장로회)의 입장, 그리고 사회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그렇게 정죄한 집단은 요지부동이며, 그렇게 낙인을 안은 채 그는 우리 곁을 떠났다. 임보라 목사는 세간에 그렇게 알려져 있다.

이 이야기부터 시작하지 않으려고 누차 고심했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그 이야기부터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이 그의 삶의 전부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억에만 의존하는 이들에게 해명 아닌 해명을 하고 싶어서이다. 세간에 알려진 바와 같이 성소수자들을 포용하는 교회 공동체를 일구고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활동은 그에게 소중한 삶의 한 부분이었던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의 역할은 그것으로 한정되지 않았다. 상처받기 쉬운 이들, 아니 이미 상처받은 이들의 현장에 그는 늘 함께 하였다. 노동자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현장, 장애인들이 정당한 권리를 외치는 현장에 함께 했으며, 군사기지가 들어선 제주 강정마을을 수없이 오가며 주민들과 함께 했다. 세월호와 이태원 희생자 가족들과 함께 울며 마음 아파했다. 성폭력으로 피해를 입은 여성들의 입장을 대변하여 온 몸과 마음을 쏟았다. 버려진 반려동물 보호 활동에도 적극 나섰으며, 눈빛이 순한 ‘찹쌀이’는 늘 그의 동행자였다. 이쯤되면 타협할 줄 모르는 확신형 투사의 이미지가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그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내향형으로서 외향형으로 살아가야 하는 버거움을 내비치기도 하였고, 힘들 때는 ‘지금 최악이에요’라고 속마음을 토로하기도 했다. 성소수자를 대변해서 나서야 할 자리에도 가능하면 다른 누군가가 나서 주기를 바랄 때도 있었다. 아슬아슬한 발언에 맞부딪힐 때는 부드러운 미소로 우회하며 난감할 수도 있는 상황을 헤쳐나갈줄도 알았다.

성소수자 당사자를 앞에 두고 거친 말이 나왔을 때는 혼자서 울었다. 나로서는 한번 목격한 일이었지만 아마도 그런 순간이 숱하게 있었을 것이다. 노동자들이 농성하면서 주일예배를 드리지 못하여 안타까워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누구보다 먼저 먼길을 달려가 예배를 인도하며 노동자들을 위로하였다.

늘 그랬다. 어쩔 수 없이 많은 말을 쏟아내야 했겠지만, 언제나 날선 말보다는 상대의 마음에 다가가고자 하는태도로 일관하였다. 내 기억에 새겨진 임보라 목사의 모습이다. 그의 강함은 약함에서 비롯되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시인 윤동주의 고백처럼 바로 그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 땅에서 상처 받고 고통스러워하는 이들 가운데 늘 함께 하였던 그의 삶은 상처의 고통을 스스로 실감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거친 세파에 휘둘려 흔들리는 이들과 함께 하며서로를 붙잡고 서 있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고통받는 이의 처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교리를 내세운 독단으로 ‘이단’의 굴레를 뒤집어씌운 교권세력이 그 마음을 알기나 할까?

▲ 필자인 최형묵 목사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셨으며,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셨습니다”(고린도전서 1:27) 그리스도교 복음의 그 진실을 온 마음과 몸으로 살았던 이가 우리 곁을 떠났다. 그의 빈소에는 비좁게 느껴질 만큼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누구보다 젊은이들이 망연해하며 슬퍼했다. 예수께서는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하셨다(마태복 음 5:4). ‘초록나무’로 불리기를 좋아했던 임보라 목사, 그렇게 슬퍼하는 이들 가운데 또 다시 여린 싹을 틔워 우뚝선 초록 나무로 우리와 함께 할 것이다.

그가 여러 동료들과 함께 심혈을 기울 여 세상에 내놓은 『퀴어성서주석』, 4년에 걸쳐 함께 울고 웃는 마음으로 펴낸 성소수자 교인 목회안내서 『차별 없는 그리스도의공동체』가 지금 내곁에 놓여 있다. 그의 삶이 배인 그 결실이 두터운 편견과 혐오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날을 소망한다.

최형묵 목사(천안살림교회/전NCCK정의평화위원장) chm1893@chol.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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