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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음 중에 어리석음

기사승인 2023.02.05  00:2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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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 Caravaggio, 「Entombment of Christ」 (1603) ⓒWikiArt
하나님의 지혜‘로’ (그리 하셨기) 때문에 이 세상이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복음) 선포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고린도전서 1,21)

성서 본문은 여러가지 이유로 늘 우리에게 도전입니다. 이 본문에도 어려움이 내장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로’(전치사 ἐν[엔])라는 말이 문장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분명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도를 해봅니다.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가 두 개 나란히 나오는데 하나는 상반절 전체와,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지혜‘로’와 관련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은 하나님이 이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하셨다는 앞 구절과 연관되는 것으로 읽게 됩니다.

사람은 일찌기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탓에 적어도 좋고 나쁜 것을 구별하고 문제 해결 능력을 갖게  되었고, 하나님은 사람이 그런 점에서 신적인 존재들과 같이 되었다고 인정하셨습니다(창 3장). 이를 지혜라고 바꿔부르면, 그 지혜는 인간의 삶을 가능케 하는 인간의 기본능력이었고, 인간은 그것으로 땅위에서 삶을 지금처럼 영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땅위에서 인간의 지혜로운 삶은 처음부터 하나님과의 충돌을 피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사람과 생명을 보존하셨고 사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계속 가까이 오셨고 사람을 그에게로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이며 관계를 맺으려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은 인간의 그 지혜를 어리석게 하셨다는 놀라운 말을 듣습니다. 이것은 히브리적 사유를 빌려 말하면 어리석다고 여기셨다에 더 가까울 것입니다.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랑하는  인간의 지혜를 어리석다 생각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인간을 그 지혜가 향한 멸망의 막다른 길에서 구해내기 위해 하나님은 사람 보기에 어리석은 선택을 하십니다. 인간의 지혜와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대립하고 있는 양상입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인 예수와 그의 사건이 구원의 길일 수 있는지요?

사람의 지혜로는 알 수 없는 길일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과 희생으로 지혜와 능력을 숨긴 사건이며, 그렇기에 인간에게는 혐오할만한 어리석은 사건으로 비쳐집니다.

‘사탄의 유혹’처럼 세상의 권력을 잡고 온세상의 영광으로 나타났으면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찬양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은 사탄의 유혹입니다. 사람을 처음 유혹했던 것의 하나도 하나님 처럼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킴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여기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그 어리석음이 지혜 중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위해 어리석다는 것을 택하셨습니다. 사랑하고 존중하고 인정하고 함께 하는 길입니다. 거기에는 위력도 멸시도 배제도 혐오도 차별도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어리석음입니다.

이 어리석음에서 구원의 빛을 보는 오늘이기를. 지혜의 욕망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아는 지혜에 이르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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