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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노동자도 노동자다

기사승인 2023.01.08  03: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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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김혜진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이 말하는 교회와 한국 사회 노동 환경 (2)

▲ 노동자들은 늘 투쟁한다. 생존과의 투쟁, 차별과의 투쟁. ⓒ김혜진 위원장 페이스북

얼마 전 김혜진 위원장님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이다.

유최안 동지가 단식 28일 차인 오늘 건강에 이상이 생겨 결국 녹색병원에 입원했습니다. 0.3평의 철구조물에 몸을 가두고 투쟁하던 유최안 동지를 민주당 의원들이 찾아왔다지요. “사내하청 노동자가 이렇게 투쟁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구조적인 문제를 꼭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지요.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비정규직 노동자 스스로가 권리를 찾기 위해 노조법 2.3조를 고쳐서 비정규직이 노조하고 투쟁할 권리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 요구를 하면서 28일이나 단식했습니다. 예상대로 국민의힘은 자본의 편에 서서 격렬히 반대하고, 민주당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미적거리기만 합니다. 이에 항의하여 민주당으로 들어간 유최안 동지가 건강 악화로 실려 나왔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찾는 일은 이렇게 힘듭니다. 그래도 가야 할 길이니 누군가는 이 추운 겨울 오체투지를 하며, 누군가는 밥을 굶으며, 누군가는 거리에서 선전전을 하며, 누군가는 응원을 하고 동조 단식을 하고 주변에 알리고 국회에 항의 문자를 보냅니다. 누군가는 현장의 노동자들에게 알리고 투쟁을 조직합니다. 추운 겨울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유최안 동지, 빨리 건강을 회복하길 바랍니다(2022.12.27. 김혜진 페이스북).

국회 앞 단식 농성장을 찾아갔을 때 대우조선해양 하청지회 유최안 부지회장을 직접 뵙지는 못했다. 유 부지회장은 이미 몸이 쇠약해진 상태였는데도 발언을 위해 다른 곳에 계셨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 철장 안에서 몸은 웅크리고 있었지만 반짝반짝 빛나던 그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건 아마도 삶을 지키기 위해 절대 물러설 수 없었던 존재의 마지막 열정을 태우는 빛이었을 것이다.

▲ 요즘엔 아무래도 노조법 2조, 3조 개정을 위해 힘을 쏟고 계실 텐데, 관련해서 설명 부탁드릴게요.

쉽게 얘기하면 헌법에는 노동권이라는 게 보장되어 있어요. 노동권은 단결해서 노조를 만들고 교섭을 하고, 교섭이 잘 안되면 파업해도 된다는 권리예요. 노동자들이 개인으로 있으면 기업이 임금을 깎거나 마음대로 해고해도 이걸 견제할 수단이 없어요. 노동자에게 특별히 집단적인 힘을 부여해줘서 서로 대등하게 교섭하라는 의미로 헌법에 노동권이 보장되어 있는 거죠. 세계 인권 선언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권리고요.

헌법에 보장되어 있으면 보통 법률로 이 권리를 구체화해요. 그래서 노조법에서 이 노동권을 잘 실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거죠. 그런데 한국의 노조법은 거꾸로, 헌법에 있는 권리를 어떻게 하면 행사하지 못하게 할까 하면서 많이 가로막아 놨어요.

특히 이 노조법 자체가 옛날에 한 회사에 고용되어있는 관계로만 생각하고 만든 거예요. 하지만 최근에 비정규직이 굉장히 많아지면서 고용 구조가 달라졌잖아요. 원청이 있고 하청이 있고 그다음에 또 있고 … 그러다 보니 노동자들이 도대체 누가 고용인인지, 누구랑 연결되어있는 건지 알기 어려운 상황이 많아요. 이런 분들은 노조법 안에서 도저히 보호받을 수 없는 조건이 돼버린 거죠. 굉장히 많은 사람이요.

그래서 노조법으로 보호하는 범위를 최대한 넓혀서, 이런 비정규 노동자들이 노조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해야 해요. 그런데 이 노조법 자체가 대상을 국한시켜 놓고 절차를 아주 꼼꼼하게 만들어놨어요. 이 절차에서 한 가지라도 딱 벗어나면 ‘너네는 불법이니까 처벌이야’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제 제발, 조금만 뭘 하면 무조건 불법이라고 하지 말고 노조 활동 범위를 넓히고, 불법이라고 하면서 손해배상 청구하지 말라고 하는 게 노조법 개정의 핵심 내용이에요. 다시 말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고 노조의 활동 범위를 넓히고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게 하는 것, 이거예요. 그걸 위해서 국회 앞에서 단식하는 분들도 있고 많은 분이 연대하고 있어요.

▲ 네, 그렇군요. 하지만 파업이나 투쟁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을 때가 많을 것 같아요. 거대한 자본과 권력으로 무장한 기업을 상대로, 달걀로 바위 치기 같은 행동일 수도 있고 오히려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고요. 그들도 알고 있을 거 같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는, 해야만 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렇죠. 지금 단식이 20일 넘은 분 중에서 한 분이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예요. 0.3평 케이지 만들어서 들어가셨던 그분이요. 진짜 순박하고 성실한 사람이에요. 집-회사, 집-회사를 20년 넘게 했어요. 이분이 굉장히 숙련된 용접 기술자인데 조선업에 문제가 생기고 구조 조정되면서 임금이 절반 이상 깎인 거예요. 조선업의 위기라고 하면서요.

그러면서 노조를 만들었어요. 노조를 만들었으니까 교섭해야 하고, 교섭을 하려고 보니 원청이 안 나오면 교섭이 안 되고, 원청은 나오지 않고요. 파업했더니 갑자기 용역이 몰려와서 파업을 깨니까 사람이 더 이상 다치게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가장 유일한 방법이 케이지를 만들고 들어가서 그 사람들이 함부로 못 들어오게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대요.

이분들하고 얘기해 보면 너무 당연한 흐름이었다는 거예요. 당장 살아야 하니까 노조를 만들었고, 당장 살아야 하니까 파업을 했고, 도저히 원청이 안 나오니까 요청하면 자꾸 구사대가 들어오고. 그러니까 몸을 가두면서 파업을 했는데 갑자기 불법이라고 하면서 경찰 특공대를 투입한다고 하는 거예요.

▲ 어느 사업장의 노동자인가에 따라 노조도 파업도 다르다는 김 위원장의 이야기는 차별이 일상화되어 있는 사회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정리연
살아야 할 길을 따르다 보니 여기까지 다다른 발걸음. 무더운 여름이었다. 유최안 노동자가 철제 구조물에 들어가서 임금 인상에 관한 협상을 요구했다. 평소에 작업하던 배 안의 공간은 이 구조물보다 더 좁다고 한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 모두를 대신해서 스스로 철장에 갇혔다. 조선업의 경기가 어느 정도 회복되었으니 수년 전 조선업의 불황기에 삭감된 임금의 원상 회복(30%)과 노조 인정을 요구했다. 살아야 하니까, 이대로 죽을 수는 없으니까 인간의 최소한의 권리를 요구한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어쨌든 협상을 하고 투쟁이 마무리됐는데 사측에서 470억 손해 배상을 청구했어요. 그러니까 이분들 입장에서는 이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구나 그리고 이게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이제 비슷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는 거죠.

자연스러운 과정인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 단식하시는 분 중에 또 한 분은 올해 세 번째 단식이에요. 씨제이 택배 노동자인데 동료들이 과로로 스무 명 넘게 죽었어요. 그러니까 이분들도 어쩔 수 없이 파업했죠. 하다 하다 도저히 안 되니까 시민사회단체들이 나서서 사회적 교섭을 했어요.

사회적 교섭해서 합의를 다 했는데 현장에서는 하나도 안 지켜지는 거죠. 현장에서 안 지켜지니까 그대로 손 놓고 있을 순 없어서 본사를 점거했더니 20억 손해배상이 나온 거죠. 이런 게 어떻게 보면 특별하게 뭔가를 해야겠다라기 보다는 작은 문제 하나를 개선하려고 했는데 구조적인 문제들이 점점 드러나니까 결국은 여기까지 오게 된 거예요.

▲ 노동자들이 현실적으로 가장 힘든 건 또 뭐가 있나요?

제일 속상한 게, 사실 산재의 문제예요. 노동자 본인이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데 산재를 당해서 회사에서 한번 쫓겨나면 다시 회사에 들어가서 증명할 자료를 구할 수가 없어요. 약자들은 입증할 능력이 없어요. 진짜 하늘의 별 따기예요. 왜냐하면, 회사가 자료를 안 주거든요. 받아낼 길이 없어요.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동료들한테 내가 몇 시간 일했다는 걸 증명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하는데 동료들도 다 회사에 매여 있으니까 얘기하기가 힘들죠.

그래서 입증하는 책임을 바꿔야 한다고 계속 말하는데, 고쳐지는 게 어렵네요. 하지만 노조가 있으면 상황이 달라지죠. 노조가 있으면 그 노조가 회사를 상대로 요구하고 같은 조합원들이 증언하는 게 가능해지니까요. 그래서 노조가 있는 곳과 없는 곳의 차이가 발생하는 게 그런 것 때문이기도 하죠.

▲ 얼마 전 화물연대 파업이 있었잖아요. 그때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기사들이 위협이나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기사를 봤어요. 이런 경우, 파업의 본질이 가려지거나 부정적인 인식을 하게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이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걸까요?

실제로 되게 많이 왜곡됐다고 생각해요. 저는 노조가 다 선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노조는 그냥 노조일 뿐이에요. 말 그대로 이해관계를 위해서 조직된 사람들이 뭉쳐서 열심히 싸워요. 어떤 경우에는 굉장히 이기적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굉장히 또 보편적이기도 하죠.

KBS, MBC가 2012년도에 170일 동안 공영방송 총파업을 했었는데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어요. 판결문 보면 이래요. 이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싸운 거다. 그 이익이 뭐냐 공정 방송이었다. 왜냐면 방송인이니까, 자기가 방송을 잘하려면 공정 방송을 해야 하는 거니까요. 그래서 이 파업은 공정 방송을 위한 파업이었지만 동시에 본인들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파업이었다고 얘기를 해요.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이 인력 충원을 위해서 싸우는데 인력 충원이 노동자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환자들의 관계와 직결되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어떤 경우는 자기들 이익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는 그게 또 보편적 이익으로 가기도 한다는 거예요.

저는 그게 노동조합의 재밌는 속성인 것 같아요. 노동조합이라는 것의 특징 자체가 가급적이면 노조들이 자기 이익만을 위하는 게 아니라, 좀 더 보편적 이익을 생각하기에 우리가 좀 더 노력하고 목소리를 내면서 함께 끌고 갈 수 있을 건지가 참 중요한 문제인 것 같거든요. 그게 저희 같은 사람들의 역할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비정규직 노조도 나 혼자 정규직 되면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가로막고 있는 요소들을 같이 나누고 그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할 거냐 같은 논의를 해요. 그러면서 노조의 폭을 점점 넓혀나가는 것도 있는데 이거는 사회적으로 잘 안 보이는 거죠. 앞부분만 주로 보이고 그런 걸 잘 드러내지 못하는 게 조금 한계가 돼서 사람들이 노조에 대해 약간 왜곡된 인식도 갖게 되는 거 같아요.

이들의 운동이 열악한 환경과 노동 강도에 비해 낮은 임금을 벗어나기 위한 욕망의 몸부림으로 보이는가? 단순히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가기 위한 투쟁이 아니다. 노동운동을 넘어 인간 해방을 위한 투쟁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보편적인 권리를 찾기 위해서이다. 맞서다가 깨지기도 하고 쓰러지기도 하는 게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건 ‘이 길’이 옳은 길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이런 확신을 행동할 수 있게 하는 건 변할 수 있다는 마음과 함께 하는 동지들, 응원하는 연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님 또한 인간의 인간다움을 위해 투쟁하셨었다. 더 나은 사람도 더 특별한 사람도 없다고, 너도 나도 하나님의 자녀라고. 권력과 물질을 가진 자리가 아니라 먼지 나는 길바닥 위였다. 민중과 같은 자리에서 함께 눈을 맞추고 빵을 떼어먹고 대화를 나누셨다.

예수님은 오늘도 노동자들과 함께 차가운 길바닥 위에 앉아 단식하시면서 노조법 2, 3조를 개정하라고,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외치고 계실 것이다. ‘말’뿐이 아니라, 몸소 ‘행동’하는 사람, 예수가 바로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의 길을 따르는 우리도 함께 한다면 겨울의 매서운 바람도 거뜬히 맞는 용기와 따뜻한 희망이, 노동자들의 심장을 힘차게 뛰게 할 것이다.

정리연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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