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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공동체, “늘 정말 고마운 곳이에요”

기사승인 2023.01.01  04:5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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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김혜진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이 말하는 교회와 한국 사회 노동 환경 (1)

▲ 우리 사회 노동자들의 환경은 너무 열악하다. 노조할 권리마저 눈치를 보아야 한다. 비정규직이라면 더더욱. 이런 기이한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해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단식하고 있다, 국회 농성장에서. ⓒ정리연

임시국회가 개원했지만, 아직 국회는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일정도 잡지 않고 있다. 20년을 싸워온 비정규직의 노조할 권리를 위한 노조법 2.3조 개정을 이번에도 그냥 넘기려는 걸까. 말은 많지만 의지가 없어 보인다.

전국에 한파가 불어닥친 날, 국회 앞. 바람에 흔들리는 천막 안에는 노조법 2, 3조 개정 운동을 외치면서 20일 넘게 단식하는 노동자들이 있었다. 천막 안에서 전기난로 하나에 의지해 단식 농성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과 그 현장을 분주히 오가는 사람을 보면서 온몸을 꽁꽁 싸매고 간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오늘의 방문이 그들에게 작은 힘이라도 되기를 바라는 마음만은 간절했다. 그들에게 마음의 온기와 힘을 나누고 있던 김혜진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을 만났다.

▲ 안녕하세요, 위원장님! 우선, 간단하게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저는 전국불안정노동철폐 연대라는 곳에서 상임 활동을 하고 있는 김혜진이라고 합니다. 더불어 생명안전시민넷이라는 단체의 공동대표도 하고 있습니다. 

▲ 늦었지만, NCCK 인권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어떠셨는지요? 혹시, 위원장님은 종교가 있나요?

아니요. 종교는 없고요. 처음에 연락받고 엄청 당황했어요. 믿기지 않았거든요. 아무 말도 못 하고 수화기에 대고 한참을 “어… 어…”만 했어요. 전화하셨던 분도 많이 당황하셨을 거예요. 진짜 되게 많이 당황했어요. 조금 민망하기도 했고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어쩌다 보니 제가 앞에서 마이크를 잡을 때가 많이 있어서 눈에 띄었던 거지, 진짜 훌륭한 분들 많거든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렇게 상을 주신 분들의 마음이 있을 테니 그게 또 감사했지만, 좀 부끄러워서 일주일 넘도록 얘기를 못 하고 있었어요. 같이 일하는 활동가들에게도 좀 미안하고 그렇더라고요.

그런데 사무실 분들이 기사를 보고 알게 된 거예요. 왜 얘기 안 했냐고 하면서 혼났어요. 하하.

▲ 그럼 종교인, 더군다나 개신교인이 아닌 위원장님에게 NCCK라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 주는 인권상은 의미가 좀 달랐을 것 같은데요?

네. 우선 어머니가 정말 좋아하셨어요. 교회를 열심히 다니시거든요. 하하.

NCCK는 전부터 워낙 잘 알고 있었어요. 제가 많이 괴롭히는 곳 중 하나이기도 해요. 왜냐하면 제가 하고 있는 일이 비정규직 관련한 일이다 보니 되게 어렵고 힘들 때가 많아요. 의지할 데가 별로 없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NCCK에 시도 때도 없이 요청을 드렸어요. “OO에서 집회해야 하는데, 와서 예배해 주시면 안 될까요?”, “OO가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는데 종교단체들이 함께 와서 도움 좀 주시면 안 될까요?” 같은 걸 엄청 많이 부탁을 드렸지요.

그래서 저희에게는 늘 정말 고마운 단체, 고마운 곳이거든요. 이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상을 주신다고 연락이 온 거예요. NCCK 인권상이 한국에서 제일 오래된 인권상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는데 제가 받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어요.

▲ 그러셨군요. 가족들, 특히 어머님이 많이 좋아하셨을 것 같아요. 현장에 있는 딸이 걱정돼서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하셨겠어요. 하하. 위원장님을 칭할 때, 노동운동 활동가라고 하잖아요. 그 명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특별한 의미가 있다면?

사실 특별한 의미를 두지는 않아요. 어디에 가서 직업을 쓰라고 하면 시민단체 활동가, 노동운동가라고 쓰거든요. 실은 많은 분이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고 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도 이게 제 일이기도 하고, 저를 드러내는 것 중 하나인 거죠. 많은 분이 본인의 직업을 쓰는 것처럼 저도 활동가라는 단어를 쓰는 거라서 ‘특별하다’라기 보다는 그냥 이게 ‘내 정체성이다’라는 의미가 큰 것 같아요.

▲ 네, 그러시군요. 그런데 사회운동이라는 걸 자신의 일로 만드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다른 일을 하면서 가끔 참여하거나 연대할 수도 있잖아요. 특히 비정규직, 불평등한 고용 노동자들을 위한 투쟁을 많이 하셨고, 지금도 그 현장에 계시는데 어떻게 노동운동이라는 길을 걷게 되셨나요? 국문학도였다고 하시던데, 연결점이 있었는지, 아니면 다른 계기가 있으셨는지 궁금해요.

제가 종교가 없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사실 모태 신앙이었어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기독교 집안, 기독교 분위기에서 자랐지요. 그러다가 대학에 들어가서 교회를 점점 멀리하게 되었죠.

대학교 때 친한 친구네 집에 놀러 갔는데 그 친구 집이 철거촌에 있었어요. 그런데, 인력들이 와서 행패 부리는 걸 처음으로 보게 됐어요. 진짜, 충격을 너무 많이 받았어요. 합리성이 작용하지 않는 세계에 대해서 충격을 많이 받았고 이게 뭘까, 세상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데 별로 아름답지 않은 이 모습은 뭐지? 뭘 좀 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회분의 소개로 난지도, 지금이야 상암동이 잘 나가는 곳이지만 그때만 해도 난지도에서 재활용 수집하는 분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거기에 가서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야학을 했어요. 그러다가 운동권이 된 거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앞으로 이 일을 계속해야겠다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오게 됐어요.

▲ 김혜진 집행위원장은 모태신자이다. 하지만 대학에 진학할 즈음 교회를 떠났다. 그럼에도 어려울 때마다 손을 내밀면 잡아주는 교회 공동체가 고맙다고 한다. ⓒ정리연

▲ 그러면 거의 30년 정도 노동운동가로 살아오셨는데, 다른 길로 가보신 적은 없나요?

그러게요. 다른 데로 가본 적이 없네요.

▲ 후회하신 적도 없으세요?

아니요. 후회야 매일 하죠. 하하. 다른 사람들도 직장 다니면서도 매일매일 고민하잖아요. 그만둬야 할까, 계속해야 할까. 이런 거랑 좀 비슷한 것 같아요. 매일매일 조금씩 흔들리고 그러다가 또 매일매일 ‘그래도 해야지’ 그런 거죠.

▲ 네, 예상하지 못했던 답변이에요. 위원장님은 흔들림 없이 올곧은 자세로만 살아오셨을 것 같거든요. 그러면 위원장님이 그렇게 흔들릴 때마다 중심을 잡아준 가치, 길을 계속 찾을 수 있게 해준 나침반 같은 건 뭔가요?

제가 겪었던 몇 가지 계기인 것 같아요. 세상이 바뀌는 경험이라고 해야 할까요? 뭔가 달라지는 경험이 있었거든요. 87년도에 민주화운동할 때의 경험 그리고 97년도에 노동자들이 총파업할 때의 경험. 사실 그런 경험을 하는 게 개인적으로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되게 의미 있는 경험이었어요.

그리고 2011년 희망버스할 때와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많은 분이 함께하시던 경험이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겠지 라고 하는, 어떤 기대감과 희망을 계속 주더라고요. 이런 경험들이 저를 이끌고 잡아주는 거 같아요. 일련의 사건과 경험의 한복판에 늘 있었는데, 제가 운이 정말 좋았던 거죠.

▲ 그럼, 노동운동 전에는 어떤 사람, 어떤 모습으로 사셨는지 궁금해요. 어렸을 때는 어떤 아이였는지, 학창시절에도 사회의 불합리나 모순적인 것들에 관심을 가지셨는지, 그런 거요.

그때는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어요. 집-학교-교회만 다녔어요. 교회 합창단도 열심히 했었고요. 특별하게 생각이 더 많은 편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제가 다니던 교회가 엄청 진보적인 교회는 아니었지만, 그런 고민들과 신앙이라는 게 뭔가에 대해서 많은 질문을 하게 했어요. 다른 종교에 대해서도 배타적이지 않고 많이 열려 있었어요. 그러면서 생각을 자유롭게 많이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위원장님은 강의도 하시고 글도 쓰시지만, 오늘처럼 현장에서 많이 지내시잖아요. 위원장님에게 현장은 어떤 의미인지요?

현장이 어떤 의미라기보다는 그냥 제가 일하는 곳인 거죠.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끼시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저는 현장이 배움을 많이 주는 곳인 것 같아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과 사람의 다양한 모습을요.

그리고 현장에 있으면 사람에 대해서 되게 신뢰하게 돼요. 이것도 좀 신기한 일이죠. 이를테면 유최안 씨가 지금 20일 넘게 단식을 하고 있어요. 그분이 얼마 전에 ‘예전에는 내가 나밖에 몰랐는데 나는 이제 다른 노동자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라고 발언을 하셨어요. 그걸 보면서 저도 이런 사람들을 더 사랑하게 되더라고요. 왜 우리는 이렇게밖에 안 되지 라는 생각도 하지만요. 그러고 보면 현장이라는 게 약간 독특한 공간인 것 같아요.

▲ 현장에서 사람을 더 신뢰하게 된다고 하셨는데, 인권상 수상 소감에서 “26년 동안 내가 뭘 했나, 그러나 나는 계속 여기에 서 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현장에서 죽어라 투쟁해도 정작 바뀌어야 할 사람들은 쉽게 바뀌지 않고, 현장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겠죠? 이런 좌절의 상황에서는 오히려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을 것 같은데요.

저는 스스로 제가 되게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이 다 좋을 수는 없잖아요. 말씀드렸듯이 현장에서는 신뢰감도 있지만 서로 안 좋게 깨지거나 헤어지는 경우도 되게 많아요. 그러면 같이 활동하던 사람들은 상처를 많이 받죠.

저는 그런 점에서는 되게 운이 좋았어요. 제가 만나는 사람들이나 관계들이 운이 좋아서 지금까지 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요. 또한 상처를 입고 떠나신 분들이나 좌절하신 분들이 다 이해가 되기도 해요. 그런 경험들이 상대적으로 저는 운이 좋았던 편이지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게 꼭 어떤 운동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다 좌절과 어려움의 순간들을 계속 살고 있겠죠. 운동에는 조금 더 강하게 드러날 뿐이지, 우리가 사는 것 자체가 그러하잖아요. 그러면서도 모두가 꾸준하게 또다시 살아가는 것처럼 이런 활동을 하는 것도 비슷한 것 같아요.

그래서 활동하시다가 좌절하고 다른 데로 가신 분들도 나름대로 그 삶의 공간에서 또 치열하게 또 부딪히면서 사시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 길과 저 길이 따로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김혜진 위원장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얼마 전 36회 NCCK 인권상 수상식에서 이야기 했던 수상 소감이 떠올랐다. “20년 이상 뭔가 열심히 했는데 아무것도 바뀐 게 없는 것 같다”는. 그럼에도 26년이나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건 “변화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이러한 변화는 갑자기가 아니라 열심히 뿌리면 언젠가, 그런 일이 일어나는 날들이 있음을 믿는다고 했다.

자신이 지금껏 운이 좋았기 때문에, 조금씩 변하는 것들을 봤기 때문에 지금까지 현장에 있을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지만, 그또한 김 위원장이 묵묵히 그러한 길을 닦아 왔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칠고 울퉁불퉁한 길을 다지고 돌멩이들을 골라내는 일을 앞장섰다. 지금은 침묵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언젠가 용기를 냈을 때 넘어지고 흔들려서 지치지 않도록, 조금이라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이 길을 함께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김 위원장이 “오늘도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이다.

정리연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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