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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페를 추구하나 에로스의 굴레에 갇혀

기사승인 2022.12.03  15:2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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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 바르트의 신학에서 아가페와 에로스 (1)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신 사랑의 규범을 따라 살기 위하시는 하나님의 의지를 성취하기가 쉽지 않다. ⓒGetty Image

하나님은 우리가 특별한 방식으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도록 우리를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남자와 여자들은 세상에 새로운 생명을 가져오기 위하여 그들의 몸과 삶 전체를 함께 나누도록 창조주 하나님의 초대를 받았다. 이런 관계에서 여자들과 남자들은 연인들로서, 남편과 아내로서, 어머니와 아버지로서 그들에게 허락된 가능성을 성취한다.

에로스의 굴레

이러한 성생활의 전망은 ‘에로스-사랑’을 포함하지만 단지 그것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전적으로 서로를 알고 친밀해지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서로를 위해 온전한 책임을 지고 전적으로 서로에게 헌신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참된 사랑은 이타심과 헌신을 필요로 한다. 기독교적 의미에서 이러한 사랑은 ‘아가페-사랑’,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폐쇄적이고 저항적이며 적대적인 인간을 사랑한다.

누구든지 저 아가페 사랑을 참으로 경험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힘입어 이 세상의 어떠한 유혹과 시련과 역경이 닥쳐오더라도 서로 사랑한다. 오래 참고 친절하다. 시기하지 않고, 자랑하거나 교만하지 않으며, 무례히 행치 않고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견딜 것이다.(1)

그러나 저 아가페 사랑을 정확히 아는 기독교인일지라도, 그 사랑을 따라 살아가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사랑하는 한, 그들이 기독교인들일지라도, 그들은 항상 에로스의 규범에 따라 사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사랑의 가장 기본적인 현상들에서뿐만 아니라 그것의 가장 세련된 형식에서 기독교의 사랑, 곧 아가페보다는 이 에로스 사랑에 거의 대부분 기초된 세상에서 존재하고 있다(CD Ⅳ/2, 735).

그러면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는 새 계명을 우리에게 주셨다. 바로 여기서 매우 난해한 문제가 생긴다. 우리가 이 에로스를 따라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어떻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며 아가페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겠는가? 어떻게 우리가 에로스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간 사회의 기본 질서인 모든 업적 사상과 모든 공로 사상에 사로잡히지 않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현대 신학자들 중에서 칼 바르트는 그의 『교회교의학』 제4권 화해론(Ⅳ/2, §68)에서 이 문제를 신학적으로 깊이 추구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내어주시는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을 체험한 에로스적인 인간은 자기 본위의 이기적인 삶에서 해방되어 하나님과 동료 인간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아가페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곧 아가페 사랑을 행할 수 있도록 아가페 자체이신 하나님으로부터 허락과 능력을 받았기 때문에, 에로스적인 인간이 아가페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CD Ⅳ/2, 749이하).

우리는 바르트의 화해론을 중심으로 이 사랑의 문제를 살펴보려고 한다. 그러나 바르트가 그것을 방대하고 심오한 화해론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우선, 화해론의 어떤 맥락에서 그 문제가 다루어지는지를 살펴보자. 여기서 그가 ‘사랑’을 어떻게 인식했는가를 살펴보고, 우리가 제기한 물음과 관련하여 ‘에로스적인 인간’이 어떻게 하여 아가페적인 사랑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했는지를 살펴보자.

그러나 이 아가페는 우리 자신 안에 기원을 갖는 능력과 가능성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다(요일 4:7). 성령의 능력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아가페 사랑에서 고려되어야 하는 몇 가지 중요한 특징들, 곧 사랑의 근거, 사랑의 행위, 사랑의 대상에 대하여 살펴보자. 오늘날 왜곡되고 타락한 성과 사랑에 대하여 교회가 제기하는 비판과 방향제시는 이러한 신학적인 바른 해명과 이해의 토대 위에서 정당성을 확보할 것이다. 그리고 가난한 자들, 억눌리고 소외된 자들을 향한 교회의 헌신과 참여 활동은 뿌리를 내리고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미주

(1) 고전 13장 4-7절; K. Barth, Evangelical Theology: An Introduction, London: Collins Clear-Type Press, 1963, 191(이하 ET로 표기).

최영 소장(기독교장로회 목회와신학연구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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