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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둘째 주, 아기 예수께서 오셔서 만들 세상은?(암 9:11-15 살후 1:3-12 막 2:13-17)

기사승인 2022.12.02  14:4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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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림절 둘째 주일(12월4일)

1. 메리토크라시와 플루토크라시의 세상

오늘은 대림절 둘째주일입니다. 둘째주일에는 ‘베들레헴의 초’를 밝힙니다. 이것은 예언자 미가가 베들레헴에서 메시아가 탄생할 것이라고 예언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베들레헴은 다윗 왕이 태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 나타날 것이라 예언하였기 때문에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은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따라서 대림절 둘째주일에는 하나님께서 이 땅 베들레헴에 비천한 모습으로 오신 것을 기억하며 베들레헴의 초를 밝히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세례 요한이 선포한 “회개하라!”라는 음성에 따라, 아기 예수께서 오심을 기다리며 속죄하는 마음과 정결한 마음으로 대림절 둘째주일 초를 밝힙니다.

▲ 출발점이 다른 능력주의 메리토크라시와 금권주의인 플루토크라시 세상

그러나 지금 우리는 정결한 마음과 회개하는 심령이 아니라, 약육강식의 사회 속에서 각자도생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기저에는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 能力主義)와 플루토크라시(Plutocracy, 金權主義)라는 이데올로기가 깃들어 있습니다. 메리토크라시는 ‘능력주의’ 혹은 ‘능력위계주의’로 번역됩니다. 이것은 자신의 능력만큼 보상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현재 MZ세대, 특히 이대남들의 가치관입니다.

이들은 “열심히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는 것이 무엇이 나쁘냐?”라며 반문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노력한 잣대가 바로 수능이나 학업 성적, 그리고 고시나 취직 등의 결과물입니다. 따라서 메리토크라시는 각자도생에 길들여진, 그리고 그 경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자기 승리의 도취 음성입니다.

사실 우리 사회에 겉으로는 ‘공정성 담론’이 넘쳐나지만, 그 담론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각자도생의 권리를 보장하라는 음성만 들어 있습니다. 아마도 이대남의 목소리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연대성과 포용이라는 공동체 정신은 무너져 내리고 이제 메리토크라시가 우리 사회 전체 가치관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메리토크라시는 결국 플루토크라시로 진화합니다. 플루토크라시는 금권주의입니다. 물질우선주의로 성경에서 말하는 맘몬주의, 곧 물질과 금권을 우상시하는 돈의 바벨탑입니다. 따라서 『정의란 무엇인가?』(와이즈베리, 2014)로 유명한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샌델 교수는 『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와이즈베리, 2020)라는 책에서 “능력주의의 오만이 공동선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라고 꼬집고 있습니다. “출발선이 다른데 능력과 공정만을 내세운다면 못난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결국 우리 사회의 공동체 정신, 곧 공동선은 무너지고 경쟁과 각자도생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합니다.

잘 아시겠지만, 수능이 끝나고 이제 본격적인 입시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놀라지 마세요. 이태원에서 10・29 참사로 희생당한 젊은이들의 숫자가 158 여명인데, 대학 때문에 매년 자살하는 학생 수도 대략 150명 내외라는 것입니다. 해마다 수능의 상대평가 때문에 우리 젊은이들에게 이태원 참사와 같은 일이 매년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힙니다.

따라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라는 단체는 20~22년 11월 10일 헌법재판소 앞에서 대입 상대평가에 대한 헌법소원 청구 및 93인 변호사의 위헌 선언 기자회견을 개최하였습니다. 이들이 작성한 ‘상대평가 위헌 선언문’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상대평가 위헌 헌법소원 청구서 제출과 발언하는 김누리 교수

“상대평가 체제는 학생들을 끊임없이 경쟁시키고 옆 친구보다 한 시간이라도 더 자지 않고 공부하고 한 문제라도 더 맞혀야 한다고 주입한다. 학생들에게 경쟁에서 살아남으라고 강요하고 친구를 경쟁자로 만드는 사이, 우리 사회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대와 공감을 잃고 인간성을 상실해가고 있다. 누군가를 짓밟고 거둔 승리에 대한 강요, 단 1%의 변별을 위한 평가는 그 목적이 정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 파괴적이고 비교육적이며 반인간적이다.”

기자회견 당시 중앙대 독문학과 김누리 교수는 수능의 해악을 이렇게 주장합니다.

“수능시험이 미치는 가장 큰 해악은 그것이 우리 아이들의 내면을 황폐화한다는 데 있다. 한국식 수능은 우리 아이들에게서 ‘심연’을 앗아간다. 시간의 압박 속에서, 정해진 선택지 안에서 정답을 고르는 데 익숙해진 아이일수록 자신만의 고유한 내면의 ‘우물’을 갖기 어렵다. 사유의 물이 고일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아, 정체성, 개성이 자랄 내적 공간은 지극히 협소해진다. 심연이 없는 아이일수록 자아는 약하고, 정체성은 불안하며, 개성은 희미하다.”

이러한 불의한 세상에, 각자도생의 시대에, 메리토크라시와 플루토크라시의 시대에 예수께서 오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세 본문 말씀은 이러한 시대에 일꾼을 부르시고 환란 속에서도 인내하며 악한 자의 심판과 믿는 자의 회복을 기다리라는 말씀입니다. 먼저 복음서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관에 앉아 있는 레위를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레위는 유대인들이 모두 싫어하는 세금징수원, 곧 세리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세관에서 일어나 예수님을 따릅니다. 이것은 우리가 아기 예수님께서 오실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또한 데살로니가후서는 바울 사도가 환란 속에서도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신앙이 성장한 것에 감사하며 칭찬하고 격려하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곧 재림하실 때, 성도들이 행한 대로 심판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구약 아모스 말씀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일으키시고, 사로잡힌 이스라엘 백성을 돌이키시어, 다시 황폐한 성읍을 건축하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아기 예수께서 오시면 이렇게 메리토크라시와 플루토크라시의 각자도생으로 황폐하고 무너진 세상이 다시 사랑으로 회복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베들레헴의 초를 밝히며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며 우리의 각오를 다지는 것입니다. 먼저 복음서 말씀부터 볼까요?

2. 아기 예수님께서 오실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 나가시매, 큰 무리가 나왔거늘 예수께서 그들을 가르치시느라.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기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느라.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막 2:13-15)

▲ 카라바조 <성 마태오의 소명>

 

알패오의 아들 레위 마태는 세리였습니다. 레위는 히브리어로 ‘연합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마태는 아람어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세리는 매우 고학력자라야 가능한 직업이었습니다. 사실 로마는 세금을 거둘 사람으로 히브리어, 헬라어, 로마어가 능통한 사람으로 뽑았습니다. 레위는 교육을 잘 받아 3개 국어에 능통한 지식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배운 지식으로 세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름에 ‘레위’가 들어있다는 말은 부모가 레위를 레위 족속처럼 거룩한 제사장이 되기를 바라고 교육을 시켰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레위는 세리가 되었습니다. 이름 그대로 하나님과 연합한 것이 아니라, 세상과 연합하였습니다.

카라바조가 그림 <성 마태오의 소명> 왼쪽 부분 그림을 자세히 보면 자신을 가리키는 예수를 의아한 듯 바라보는 마태와 가장 왼쪽에서 돈을 세고 있는 젊은이, 그리고 그 위에서 안경을 쓰고 돈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모두 물욕에 빠져 있습니다. 플루토크라시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레위 마태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플루토크라시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 단지 예수님께서 레위에게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셨는데, 레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아마도 그의 내면에는 끊임없는 갈등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이름과 부합하지 않는 삶에 갈등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르심에 레위 마태의 그 모든 갈등은 해결되었고 그는 새로운 인생을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이후에 레위는 자신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 잔치는 아마도 모든 사람 앞에 자신의 결단을 선포하려는 의미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결혼하면 잔치를 베풀죠? 돌잔치나 회갑 잔치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레위는 이 잔치를 통해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음을 선포하고 축하를 받는 기회로 삼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을 때, 아니 지금 아기 예수님으로 다시 오시죠? 이때 우리는 레위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볼까요? 레위 집 잔치 자리에 바리새인의 서기관이 와서 시비를 겁니다.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막 2:16-17)

율법을 잘 아는 바리새인 가운데 서기관이 된 자들은 예수님께서 당시 죄인이라고 취급받았던 사람들과 민족의 배반자로 로마에 부역하는 세리들과 함께 밥을 먹는 것을 보고 꾸짖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라고 말하며 그들에게 응대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지만, 동시에 죄인들을 다시 살리는 길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3. 왜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고서는 그가 병을 얻었던 환경으로 다시 돌려보내는가?

▲ 마이크 마멋의 『건강 격차』 표지와 전국 17개 광역시&#65381;도 기대수명

지난 2,000년 기사 작위를 받은 마이크 마멋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의 역학(epidemiologist)(미주 1) 및 공중보건학 교수는 자신의 책 『건강 격차』(동녘, 2017) 첫 부분에서 이렇게 질문합니다. “왜 기껏 환자를 치료하고서는 그가 병을 얻었던 환경으로 돌려보내는가?” 마멋은 질병을 일으키는 사회 여건을 탐구하고 어떻게 하면 그 여건을 개선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세계적인 건강 불평등 학자입니다. 세계의사협회장을 지낸 바 있습니다.

마멋은 사람들을 병들게 하는 요인, 건강하게 살 수 없게 방해하는 요인이 한 사람이 나고 자라고 살아가고 일하고 나이 들어가는 환경과 여건에 영향을 받으며, 그 환경과 여건은 다시 그 사회에 존재하는 권력, 돈, 자원의 불평등한 분포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회적 여건이 건강과 질병에 미치는 영향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마멋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의사는 병을 고치는 사람이다. 물론 병은 고쳐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활 습관과 건강이 사회적 여건과 관련된다면, 그 여건을 향상시키는 것은 누구의 일이어야 하는가? 나는 사람들이 건강해지게 돕고 싶어서 의사가 됐다. 그런데 병에 걸리고 난 다음에 그 병을 고치는 것이 일시적인 해법밖에 될 수 없다면, 병을 일으킨 여건을 고치는 일에도 의사가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사실 이제껏 건강 불평등 문제는 의료 접근성이나 금연, 금주, 식단 조절 등 질병 예방을 위한 개인의 행동 교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됐습니다. 그러나 그 효과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습니다. 마멋은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더 큰 차원에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이 책에서 다양한 사례와 실증 자료를 들어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결국 사람들이 아픈 이유는 가난해서, 그래서 의료 시스템에 접근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멋은 미국의 예를 듭니다.

“나는 미국이 세계 최고의 의료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말하는 미국인을 셀 수 없이 많이 보았다. 그 말이 맞다고 치자. 그런데 왜 미국 젊은이가 60세까지 생존할 확률이 스웨덴이나 영국은 고사하고 코스타리카, 쿠바, 슬로베니아보다도 낮은가? (…) 의료 서비스만이 문제라면 미국은 세계에서 모성사망률이 가장 낮아야 한다. 미국은 의료비 지출이 세계에서 가장 많고, (논란이 있을 수는 있으나)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산부인과 진료가 가능한 나라다. 그런데도 미국의 모성사망률은 그리 낮지 않다. 미국의 15세 소녀들은 1,800명당 1명꼴로 일생 중에 임신·출산 관련 요인으로 숨진다. 21명당 1명꼴인 시에라리온보다는 훨씬 양호하지만 1만7,100명당 1명꼴인 이탈리아보다는 훨씬 열악하다.”

이것은 불평등의 문제입니다. 또한 정치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마멋은 평등한 사회에서는 가난이 병을 만들지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계속해서 마멋의 말을 들어 볼까요?

“빈곤은 신의 뜻도 아니고 전적으로 사람에게 달린 것도 아니다. 한 사회에서 아동빈곤의 수준은 정치 시스템에 크게 좌우된다. 정치 시스템은 아동빈곤을 얼마만큼 허용할지 ‘선택’할 수 있다. (…) 스페인과 프랑스는 세전 아동빈곤율이 모두 19%다. 하지만 세후 빈곤율은 스페인이 17%고 프랑스는 9%다. 슬로베니아는 부유한 나라가 아닌데도 아동빈곤율은 스페인과 프랑스보다 낮은 6%다. 재무부 장관은 아동빈곤 수준을 결정함으로써 보건부 장관보다 아동기 성장 발달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불평등은 모든 사회에 존재합니다. 마멋도 말하듯이,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불평등의 정도와 규모, 또 불평등이 발생하는 이유와 차별받는 사람들의 건강을 고민하는 사회정의가 바로 세워진다면 조금은 더 건강 불평등이 완화될 수 있지 않을까요? 마멋은 이렇게 조언합니다. “건강에 중요한 것은 얼마를 가지고 있느냐보다는 가진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다!”, “우리는 더 잘 할 수 있다. 수많은 증거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레위의 잔치가 우리 사회 시스템 교체로 나가야 하는 까닭입니다.

4.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앞서 말씀드린 대로, 오늘 서신서 말씀인 데살로니가후서는 바울 사도가 환란 속에서도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신앙이 성장한 것에 감사하며 칭찬하고 격려하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곧 재림하실 때, 성도들이 행한 대로 심판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말씀드렸죠? 먼저 말씀을 볼까요?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살후 1:3-4)

이렇게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의 믿음을 칭찬을 한 후, 바울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성도가 받을 고난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말씀이 어려워 공동번역으로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장차 그 나라를 차지할 자격을 얻게 되겠으니, 결국 하느님의 심판이 공정하다는 것이 확실합니다. 하느님은 공정하셔서 여러분을 괴롭히는 자들에게 괴로움을 당하게 하시고 괴로움을 당하는 여러분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을 누리게 해주실 것입니다. 이 일은 주 예수께서 당신의 능력 있는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주께서는 불꽃 가운데 나타나셔서 하느님을 거부한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자들을 처벌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 앞에서 쫓겨나 영원히 멸망하는 벌을 받고 주님의 영광스러운 능력을 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살후 1:5-9)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오실 때 하나님을 거부하고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자들을 처벌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위해, 또한 예수님의 복음을 위해 고통을 받은 이들은 하나님 나라를 차지할 자격을 얻게 될 것입니다. 계속해서 공동번역으로 다음 말씀을 볼까요?

“그날에는 주님께서 오셔서 당신의 성도들에게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경탄의 대상이 되실 것입니다. 여러분도 우리의 증언을 믿었으니 그 성도들의 대열에 끼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우리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당신의 부르심에 적합하게 해주시기를 빌며 선을 행하려는 여러분의 모든 의향과 여러분의 믿음의 행실을 당신의 능력으로 완성해 주시기를 빕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여러분에게서 영광을 받고 여러분도 주님에게서 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살후 1:10-12)

이렇게 우리는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면서 이 메리토크라시와 플루토크라시의 시대에 선을 행하여 주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구약 아모스 말씀이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먼저 말씀을 볼까요? 아모스는 예수께서 오시는 새날을 ‘그날’로 이야기합니다.

5. 아기 예수께서 오시면 세상은?

“그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고 그들이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암 9:11-12)

오늘 아모스 말씀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일으키시고, 사로잡힌 이스라엘 백성을 돌이키시어 다시 황폐한 성읍을 건축하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기 예수께서 오시어 만들어 갈 세상의 모습입니다. 계속해서 아모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그 때에 파종하는 자가 곡식 추수하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며 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 작은 산들은 녹으리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이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리니, 그들이 황폐한 성읍을 건축하여 거주하며 포도원들을 가꾸고 그 포도주를 마시며 과원들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내가 그들을 그들의 땅에 심으리니, 그들이 내가 준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암 9:13-15)

지난주 말씀처럼,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을 부르시고, 그들의 반역을 고치시고, 사랑하시어 다시는 진노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풍성한 곡식과 같이, 또한 꽃이 만발한 포도나무와 같이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죠? 오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황폐한 성읍을 건축하여 포도원을 가꾸고 그 포도주를 마시며 과원들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는 평화의 세상입니다. 그리고 이 평화의 땅에서 다시는 뽑히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맹자는 “일반 백성은 항산(恒産)이 없으면 항심(恒心)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항산’이란 ‘늘 생산물이 있다’라는 말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재물과 재산을 말합니다. 그리고 ‘항심’이란 ‘인간이 늘 가지고 있는 마음, 곧 본래 가지고 있는 도덕심’을 뜻합니다. 맹자에 의하며 일반 백성들은 일이 있고, 재산이 있고, 생산물이 있으면 도덕적인 사람이 되지만, 생산물이 없으면 비도덕적이 되기 쉽다고 합니다. 그러나 맹자는 “항산이 없더라도 항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오직 선비””라고 말합니다. 하박국의 고백이 생각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들레헴의 초를 밝히며 “아기 예수님께서 오실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한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기 예수님께서 오셔서 만들 세상”을 상상하며 오늘 하루도 감사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미주

(1) 역학은 질병을 일으키는 사회 여건을 탐구하고 어떻게 하면 그 여건을 개선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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