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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첫 주, 풍성한 곡식같이, 만발한 포도나무같이!(호 14:4-9 엡 1:15-23 막 1:4-8)

기사승인 2022.11.25  00:4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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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림절 첫째 주일(11월27일)

1. 최병학 목사의 그리스도론적 성서정과(CCL) ‘나’해 마가복음 중심, 평화의 예수님!

지난 2021년 9월 코로나 자가격리 기간 중 하나님께서 저에게 교회력과 성서일과(성서정과)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셔서 각 복음서를 중심으로 4년 동안 전체 신구약 성서를 다 살펴볼 수 있는 주일 성서일과를 만들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삼위일체 교회력을 중심으로 한, ‘최병학 목사의 그리스도론적 성서정과(CCL, Choi’s Christologic Lectionary)’입니다.

CCL도 절기는 삼위일체 교회력 절기를 따릅니다. 왜냐하면 삼위일체 교회력은 기독론 중심인 통상축제력의 단점을 개혁하며 나온 것이고, 주일성서일과에서도 통상축제력에 기반한 성서일과인 공동성서정과(Common Lectionary, 1983년)와 개정판 공동성서정과(The Revised Common Lectionary, 1992)보다 먼저 만들어진 것으로 3년 주기의 성서일과의 틀을 잡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스코틀랜드 장로교회가 1960년대에 삼위일체 교회력의 틀을 잡았으나 사용하지 않았고, 캐나다 연합교회가 1969년 이어받았으나, 이후 나온 RCL에 합류하였습니다(현재 영어권 나라들은 RCL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삼위일체 교회력의 방향이 좋다고 믿었고, 1979년 기장총회 새역사 25주년 기념총회에서 삼위일체 교회력을 채택하였습니다. 기장 교단은 기독론보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교회력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동시에 창조절기의 중요성을 일찍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삼위일체 교회력에 있는 창조절기(9~11월)는 오늘날과 같은 기후 위기의 시대에 매우 중요한 절기입니다.

CCL은 삼위일체 교회력과 RCL의 장점을 취합한 교회력 성서일과입니다. 절기에 창조절을 넣고 삼위일체 신론 중심 교회력이며, 성서일과로는 네 복음서를 중심으로 4년을 한 주기로 합니다. 이것은 RCL의 기독론적 관점을 취하되, 매년 돌아가는 절기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각 해의 주제를 ‘가’해는 마태복음 중심 ‘생명의 하나님’, ‘나’해는 마가복음 중심 ‘평화의 예수님’, ‘다’해는 누가복음 중심 ‘정의의 성령님’, 마지막 ‘라’해는 ‘사랑의 교회 공동체’로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회 공동체라는 주제로 주일 세 본문 말씀이 구성됩니다. 시편은 교독문으로 읽기에 넣지 않았습니다.

CCL에 따르면, 창조절기부터, 복음서가 ‘나’해인 마가복음으로 바뀌지만, 우리는 대림절부터 절기 설교를 시작하였기 때문에, 오늘 본문 말씀부터 마가복음으로 변경이 됩니다. 이렇게 한 해 동안 마가복음을 중심으로 평화의 예수님에 초점을 맞추어 구약과 서신서세 본문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물론 여기서 서신서에는 사도행전과 요한계시록 말씀이 들어갑니다. 서신서가 교회에 주는 말씀이라면, 사도행전은 교회의 시작이며 요한계시록은 교회의 위기에 관한 말씀으로 모두 교회에 관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2. 설교의 ‘트리플 악셀(피겨 스케이팅)’이자, ‘트리플 크라운(야구)’인 세 본문 설교

우리는 주일낮예배 때 세 본문 말씀으로 성경 말씀을 읽습니다. 세 본문 설교는 피겨 스케이팅 기술의 ‘트리플 악셀’이자 야구에서의 ‘트리플크라운(홈런, 타점, 타율 세 부분 1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본문 설교가 평면적이라면, 세 본문 설교는 입체적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주일 오후 찬양예배나, 수요 성경공부 때는 한 본문 설교를 합니다. 사실 한 본문 설교는 강해 설교, 주석설교, 본문 설교, 제목 설교, 주제설교 등으로 진행이 됩니다. 장점은 요점을 잡아 집중적으로 설교할 수 있으며 선택된 본문을 깊이 탐험하고 그 특징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특히 목회자의 특성과 철학, 신학적 입장과 강조할 부분을 효과적이고 집중적으로 체계를 세워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점도 있는데, 먼저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성서 이해에 치우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성경 전체와 연계된 본문의 통합적인 메시지를 도출하기가 어렵습니다. 설교자는 자기 뜻과 하나님의 뜻이 혼란스러워 어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성경의 다양한 영역에 손을 못 댄 곳들도 나오게 됩니다.

두 본문 설교는 구약과 복음서와 서신서에서 두 곳만을 선택하여 설교하는 것입니다. 주로 구약 한 곳, 복음서와 서신서에서 한 곳을 선택하게 됩니다. 장점은 한 본문 설교보다는 더 균형 잡힌 설교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구약에 대한 필수적 접근으로 구약의 메시지 개발이 증진됩니다. 단점도 있는데, 복음서와 서신서 신약 본문 가운데, 한 곳이 빠지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면 온전한 메시지 도출에서 한계가 드러납니다.

말씀목회연구원(http://www.wpci.kr/) 원장 최부옥 목사님은 세 본문 설교의 핵심적인 틀을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먼저 복음서는 세 본문의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말씀을 담은 내용물로 그날 세 본문 설교의 몸통이라고 합니다. 구약의 경우,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든 사역에 대한 전거요, 그 근거이며 그 배경을 제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서신서의 경우 신약의 내용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행하신 모든 사역의 일체를 사도들이 현장 교회에 전하고 가르치면서 나타난 제반 반응에 관련된 말씀들이라고 소개합니다. 최부옥 목사님의 말입니다.

“구약이 복음서의 좌측 날개라면, 신약의 서신서는 우측 날개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세 본문 설교는 언제나 예수의 존재와 말씀과 사역을 중심으로, 그 근거와 배경을 구약 본문이 담아내고 있으며, 동시에 주님이 제공하신 교훈과 삶을 현장 교회가 어떻게 전하고 실행하고 있었는지를 서신서 본문들이 구체적이며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한 본문 설교가 평면적이라면, 세 본문 설교는 입체적입니다. 힘들어도 목회자는 이러한 세 본문 설교로 주일낮예배 설교를 진행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입체적인 말씀에 기초하게 되면 성도들의 삶이 변화될 것입니다. 최부옥 목사님은 이렇게 확신합니다.

“설교자가 이 단계까지 이르면, 마지막으로 그동안 확인되고 제시된 말씀에 비추어서 오늘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어떤 응답과 결단을 취하며 살 것인지를 자연스럽게 말하게 된다. 이런 설교 형태는 마치 새가 양 날개를 제대로 펴야만 마음껏 날아 올라갈 수 있는 것처럼, 세 본문 설교 역시 매우 성서적이며 균형 잡히고 근거를 가진 무게 있는 증언을 하게 되기에, 교우들의 삶의 변화와 결단도 자연히 강하게 견인할 수 있다.”

한신대 예배학 교수로 은퇴하신 박근원 교수님의 조언에 따라, 최부옥 목사님은 세 본문 설교를 성부의 절기(창조절-대림절)에는 구약을 주축 삼아 복음서와 서신서로 나아가며, 성자의 절기(성탄절-주현절-사순절-부활주일)에는 복음서를 주축으로 삼아 구약과 서신서로, 마지막 성령의 절기(부활절-성령강림절)에는 서신서를 주축으로 복음서와 구약으로 나아간다고 합니다.

이렇게 세 본문 설교에 헌신하는 교회는 매 절기 성찬 예식을 거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듣는 말씀(설교)’과 ‘먹는 말씀(성만찬)’이 있기에, 절기 맞이 성찬 예식을 거행하는 일은 절기를 맞이하는 성도들의 영적 준비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예전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대림절 첫째주일인 오늘, 우리는 성찬예식을 거행합니다.

이렇게 교회력과 성서일과 세 본문 말씀 설교로 한국 교회가 새롭게 거듭나기를 소망합니다. 특별히 이러한 교회력에 따르는 성서일과 설교의 유익한 점을 제주 종달 교회 김기승 목사님은 다섯 가지 정도로 이야기합니다. “첫째, 성서일과를 따라 설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둘째, 성경을 편식하지 않는다. 셋째, 설교 준비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넷째, 일관성이 있는 설교를 하게 된다. 다섯째, 설교를 듣는 성도들의 신뢰를 얻게 된다.” 저는 김기승 목사님이 성서일과 세 본문 설교의 장점을 잘 요약했다고 생각합니다.

3.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오셔서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서론이 너무 길었는데, 오늘 세 본문 말씀으로 들어가 볼까요? 오늘 본문 말씀은 대림절을 맞이하며 아기 예수님의 오심을 기리는 말씀입니다. 먼저 복음서 말씀에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자신보다 능력이 많으신 분으로 묘사하며 예수께서 오셔서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비자, 준비하는 자의 본분을 충실히 따르는 세례 요한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신서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예비되어 오실 예수님께, 하나님께서 만물을 그의 발아래 복종하도록 하셨다고 합니다. 특히 예수님을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대림절 첫째주일, 우리는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 교회의 머리 되신 분, 곧 성령을 통한 교회의 사역으로 이 땅에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여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구약 호세아서 말씀은 여호와의 도를 따르는 이들은, 곧 예수님을 믿고 맞이하는 이들은, 생명의 길로 다닐 것이지만, 죄인들을 그 길에 걸려 넘어질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먼저 복음서 말씀부터 볼까요?

▲ 예수께 세례를 베푸는 요한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막 1:4-6)

잘 아시다시피,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한 사람이며 예수님께 세례를 베푼 자입니다. 태어날 때 예수님처럼 천사로부터 태어날 것을 미리 예고 받았으며 잉태될 때, 이미 하나님 보시기에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예정된 인물이었습니다. 특히 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것이며, 사람들로 하여금 메시아를 맞이할 준비를 시킬 것이라는 사명을 받은 이였습니다.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띤 요한이 요단강에서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회개를 선포하고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막 1:7-8)

요한은 이렇게 준비하는 자, 예비하는 자의 사명을 잘 감당합니다. 자신은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오실 메시아(예수님)는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이렇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분이 오시는 날이 바로 대림절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대림 4주간에는 순서대로 4개의 초를 켭니다. 숫자 4의 의미는 그리스도의 빛은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곧 세상의 모든 곳을 비추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성탄절이 가까워질수록 초의 색깔이 점점 밝은 빛으로 바뀌는데, 이것은 아기 예수께서 가까이 오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촛불로 상징되는 우리의 기도가 하늘까지 올라가, 대림절을 보내는 동안 우리의 죄가 점차 씻겨져 깨끗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오늘 밝히는 대림절 첫째주일 초는 ‘예언자의 초’라고 불립니다. 구약성경의 예언자들, 특히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께서 오시기를 희망하면서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따라서 첫째주 초를 예언자의 초라고 부르며 진한 보라색의 초를 밝힙니다. 오늘 세례 요한의 음성을 듣고,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진정한 회개를 통하여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요한이 예비한,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예수님은 어떤 분일까요? 바울 사도에 의하면 만물이 그의 발아래 복종 되며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가 되신 분입니다. 서신서 말씀을 볼까요? 말씀이 어렵기 때문에 공동번역으로 보겠습니다. 뒷 부분 본문 말씀을 먼저 봅니다.

4.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하느님께서는 그 능력을 떨치시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려내시고 하늘나라에 불러올리셔서 당신의 오른편에 앉히시고 권세와 세력과 능력과 주권의 여러 천신들을 지배하게 하시고 또 현세와 내세의 모든 권력자들 위에 올려놓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셨으며 그분을 교회의 머리로 삼으셔서 모든 것을 지배하게 하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만물을 완성하시는 분의 계획이 그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집니다.”(엡 1:20-23)

에베소서는 세상 끝날까지 모든 성도의 신앙생활의 중심이 되는 교회를 설립하신 하나님의 목적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성도들의 유기적 공동체로서 교회의 본질에 관한 신학적 원리를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교회 성도들 간의 온전한 일치와 연합 및 성도 개개인의 신앙생활과 관련된 실천적 교훈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쓴 당시 배경은 이렇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과 함께 초대 교회가 태동 된 지 30여 년 정도 지난 때입니다. 아직 교회조직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성도들은 교회관조차 제대로 가지고 있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뿐 아니라, 소아시아 여러 지역의 교회들에게 올바른 교회관을 심어주고자 했습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유대인 성도와 이방인 성도가 일치하여 화목한 가운데 신앙생활을 잘하도록 교회의 본질에 관한 신학적 원리와 그에 입각한 교회 생활에 관한 제반 실천사항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는 잘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앞부분 본문 말씀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주 예수를 충실히 믿으며 모든 성도들을 사랑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도할 때마다 언제나 여러분을 기억하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스러운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영적인 지혜와 통찰력을 내려주셔서 하느님을 참으로 알게 하시고 또 여러분의 마음의 눈을 밝혀주셔서 하느님의 백성이 된 여러분이 무엇을 바랄 것인지 또 성도들과 함께 여러분이 물려받을 축복이 얼마나 놀랍고 큰 것인지를 알게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믿는 사람들 속에서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여러분에게 알게 하여주시기를 빕니다.”(엡 1:15-19)

이렇게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은 참사랑과 위로와 긍휼로 교회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것을 완전히 이룰 것입니다. 만물을 충만하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 구약 말씀 호세아서는 이렇게 여호와의 만물 충만, 곧 완성하시는 이를 따르는 사람들을 여호와의 도를 따르는 이들로 소개합니다.

이들은 다시 말하면, 아기 예수님을 믿고 맞이하는 이들입니다. 결국 이러한 사람들은 생명의 길로 다닐 것이지만, 반대로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지 않는 이들은, 호세아에 의하면 우상숭배하는 죄인들은 생명의 길에서 걸려 넘어질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5.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에브라임의 말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할지라. 내가 그를 돌아보아 대답하기를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하리라.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은 그 길로 다니거니와 그러나 죄인은 그 길에 걸려 넘어지리라.”(호 14:8-9)

정직한 하나님의 생명의 길로 다니는 의인은 구원을 얻을 것이지만, 죄인은 그 길에서 걸려 넘어진다는 말입니다. 에브라임이 그렇습니다. 우상숭배의 죄악 된 길에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생명의 길로 나오겠다는 말씀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에브라임은 북 왕국 이스라엘을 뜻합니다. 호세아는 북이스라엘의 선지자입니다.

말씀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북이스라엘이 당시 외적으로 번영과 성장을 누리고 있었지만, 내적으로는 도덕적 부패와 영적인 간음이 만연했습니다. 따라서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의 죄를 싫어하시며 심판은 확실하다는 것,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의의 길과 죄의 길을 택하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호세아는 이것을 간음한 아내 고멜과의 관계를 통해 보여줍니다. 곧 ‘고멜의 간음 행위=이스라엘의 죄(4~7장)’, ‘고멜의 타락=이스라엘의 심판(8~10)’, ‘호세아의 고멜 구함=이스라엘의 회복(11~14)’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 말씀은 호세아서의 결론으로 은혜와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에게로 속히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회개의 촉구로 끝을 맺습니다. 이것은 참사랑과 위로와 긍휼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앞부분 말씀으로 돌아가 볼까요?

▲ 코디 밀러의 <호세아와 고멜>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그에게서 떠났음이니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그의 가지는 퍼지며 그의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의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그들은 곡식같이 풍성할 것이며 포도나무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같이 되리라.” (호 14:4-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이렇게 평화를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믿지 않는 이들의 반역을 고치고 그들을 사랑하시어 다시는 진노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풍성한 곡식과 같이, 또한 꽃이 만발한 포도나무와 같이 복을 주시겠다고 합니다. 이런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시는 대림절 첫째주일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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