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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기사승인 2022.11.21  15: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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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로마서 5:12-19)

▲ 그리스도 안에서 책임을 다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Getty Image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한 주간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짜증이 나고, 인간관계 때문에 화가 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솟고, 남과 나를 비교하며 의기소침해지기도 하고, 반복되는 삶이 지겹게 느껴지기도 하고, 내가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싶은 순간들이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감정과 생각들에 사로잡히면 어두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런 감정과 생각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한 마디면 이 어두움의 장막이 걷히게 됩니다. “하나님, 이 순간 평안 누리기를 원합니다.”

평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한복음 14:27)

내가 원하는 대로 환경이 바뀌기 때문에 평안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에 평안을 주셨기 때문에 환경과 상관없이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평안을 선택하고, 요청하면 즉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 이 순간 평안 누리기를 원합니다.”라고 요청하셔서 평안을 순간순간 누릴 뿐 아니라, 삶을 평안한 마음으로 지속적으로도 누리실 수 있기를 다시 한번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보내 주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에게 한 주간 어떤 사랑을 베푸셨습니까, 어떤 마음을 주셨습니까? “잃어버린 한 마리 양”에게 선한 의도를 가지셨습니까? 아니면 아직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지 못하셨습니까?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야 합니다. 그 한 사람이 성도님들에게 축복의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축복이란 세상 사람들이 원하고 누리는 축복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는 축복을 의미합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체험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선한 마음, 사랑의 마음을 품으십시오. 이런 의도를 내어보십시오.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는 의도가 성령님을 통하여 결국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이끌려가게 될 줄 믿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요, 이 죽은 믿음을 가지고서는 어떤 은혜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저와 성도님들에게 허락하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꼭 찾아 섬길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한 사람을 찾아 그 한 사람에게 사랑, 선함, 섬김을 실천하는 것은 성도에게 중요한 사명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런 의도는 다만 한 사람에게만 향하지 않습니다. 이 의도는 더 많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아니, 나는 한 사람에게 사랑과 선한 마음을 품고 실천했을 뿐인데. 이 마음과 행함이 내가 알지 못하는 더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네, 그렇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신비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하나님께로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다.”(요한복음 14:12a)

생각해보면 예수님의 이 말씀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사실 당혹스럽기까지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이 어떤 사역을 하셨는지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습니까? 죽은 자를 살리시고, 고칠 수 없는 병을 낫게 하시고, 귀신을 쫓고,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않으셨습니까?

이런 예수님이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을 놀리는 것도 아니고, 어떤 의도로 하신 말씀일까요? 양적으로 더 많은 이들에게 이런 기적을 베풀게 될 것이라는 의도로 하신 말씀일까요?

이 말씀을 하신 본문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4:10-14 “10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네가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자기의 일을 하신다.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다.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내가 무엇이든지 다 이루어 주겠다. 이것은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는 것이다. 14 너희가 무엇이든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가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하고 또 예수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이 아버지인 하나님께로 가셔서 제자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구하는 모든 것을 다 이루어 주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 구하는 모든 것을 다 이루어 주시나?’라는 생각을 하실 수 있겠는데요. 요한1서 2:15-16을 보시면, “여러분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속에는 하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체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세상 살림에 대한 자랑은 모두 하늘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명확하게 성도가 구하지 말아야 할 것, 사랑하지 않아야 할 것을 기록했습니다. 즉, 성도가 구해야 할 것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할 만한 모든 것들만을 구해야 합니다. 바로 사랑, 선, 평화, 생명, 용서를 위해 구할 때 이루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애매한 기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다니는 회사에서 승진하게 해주세요. 승진해서 돈 더 벌어 남을 돕고 싶습니다!”, “이웃을 돕기 위해, 제가 소유한 땅값이 오르게 해주세요!” 죄송하지만 이런 경우도 육체의 욕망과 눈의 욕망으로 하는 기도일 뿐입니다. 정말로 사랑, 생명, 평화, 선, 생명을 위한 기도라면 “제가 누구를 돕기를 원합니다. 도와주십시오.”라고 열린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올바른 기도를 드리면, 예수님이 응답하셔서 이루어 주시기에 나는 연약하고 세상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일지 모르지만,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할 뿐만 아니라 더 큰 일도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을 통해 사람이 특히 한 개인이 얼마나 큰일을 할 수 있는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또 그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온 것과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 13 율법이 있기 전에도 죄가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가 죄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14 그러나 아담 시대로부터 모세 시대에 이르기까지는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죽음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모형이었습니다.”

바울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라고 기록했습니다. 여러 사람으로 인해 죄와 죽음이 들어왔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형체가 없는 어떤 악이라고도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으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이 죄 때문에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죽음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고작 한 사람이 죄를 지었을 뿐이지만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너무나도 잘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이어 바울은 또 다른 영향력을 행사한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15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실 때에 생긴 일은, 아담 한 사람이 범죄 했을 때에 생긴 일과 같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으나,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더욱더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은혜로 인해 많은 사람에게 선물이 넘쳐나게 주어졌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이라는 표현입니다. 한 사람으로 인해 죄가 들어왔고 한 신으로 인해 은혜가 들어왔다고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으로 인해 죄가 들어왔고 마찬가지로 한 사람으로 인해 은혜가 들어왔다고 표현했습니다. 죄도 은혜도 그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기록했습니다.

“17 아담 한 사람의 범죄 때문에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왕노릇 하게 되었다면, 넘치는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더 확실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으로 인해 넘치는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는 사람들은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게 되리라고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한 사람은 범죄로 인해 죽음이 왕노릇하게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한 사람’의 영향력을 생각하며 어떤 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깊이 묵상하며 기도하고 선택할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8 그러니 한 사람의 범죄 행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이제는 한 사람의 의로운 행위 때문에 모든 사람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아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으로 판정을 받았는데, 이제는 한 사람이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인으로 판정을 받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축소해서는 안 됩니다. ‘한 사람이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인으로 판정을 받을 것이다.’ 이 말씀은 여기에 앉아 계신 모든 성도님에게도 적용됩니다. 성도님 한 분의 선한 의도, 사랑, 평화, 섬김은 그것이 직접적인 행동이 되었건, 마음이 되었건, 의도가 되었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나보다 더 큰 일을 할 것이다.’라는 말씀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는 사람들입니다. 성도는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는 자로서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향력이 작지 않습니다. 아니 너무 큽니다. 이 영향력을 행사하십시오. 아낌없이 행사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꺼이 나눌 수 있게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상중 목사(초도제일교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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