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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한 하나님의 약한 신학

기사승인 2022.11.20  05: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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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푸토의 ‘약한 신학’과 안병무의 민중신학 비교 연구 (3)

▲ 바위를 가르는 바람, 천둥과 번개 속에도 야웨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다. ⓒGetty Image

카푸토는 전통 신학에서 말하는 절대적인 하나님 존재를 부인한다. 약한 신학에서의 하나님은 약한 힘의 하나님, 적을 무찌를 군사를 가지지 않는 하나님, 권력 없는 권력의 하나님, 통치 없는 지배를 하는 하나님이다. 카푸토는 이를 ‘이름의 신학’과 대비시켜 ‘사건의 신학’이라고 부른다.

그는 전통 신학이 하나님의 ‘이름’ 내에서의 해석학이라면 약한 신학은 ‘사건’의 신학이라고 말한다. 이름의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개념이나 의미 체계를 중시하지만, 사건의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발생하는 사건들에 초점을 맞춘다. 사건은 이름에 속해 있지만 이름에 갇힐 수는 없다.

항상 사건은 이름을 떠나 새로운 이름들을 만들어낸다. 사건은 끊임없이 자신을 규정하고 확정하려는 이름을 미끄러져 나와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해체한다고 할 수 있다. 이름은 세상에 속해 있고, 세상의 위세를 취할 수 있으며, 강한 힘에 속하는 것이다.

반면 사건은 세상을 혼란 속에 빠뜨릴 가능성이 있는 명령이면서, 미약하면서도 무한한 힘을 가진 것이다.(1) 그렇기 때문에 사건의 신학은 필연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다. 카푸토가 하나님의 약함을 전제로 하는 약한 신학을 사건의 신학이라 부르는 이유이다.

약한 신학이 말하는 하나님은 인과관계에 얽매어서 잘한 일에 상을 주고 잘못한 일에 벌을 주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다. 비바람을 내려주고 기원하는 사람에게 복권 당첨의 행운을 허락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약한 신학의 하나님은 언제까지나 인간을 기다리고, 초대하고(inviting), 부르고(calling), 인간에게 호소하는(appealing) 행위를 하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끊임없이 부르고 있지만, 그 부름에 대한 응답은 인간의 몫이다. 강한 신학에서 하나님을 존재와 현현, 질서를 주재하는 실재이고 우주의 지배자로 보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강한 신학이 결정성을 가진다면 약한 신학은 열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이름은 존재라기보다는 사건의 이름이며, 인과관계가 아니라 부름의 이름이고,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약속의 이름이다.(2)

하나님의 부름은 불가능성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그것은 세상의 논리나 기대와 빗나가는 가치를 전한다. 카푸토가 말하는 종교성이란 불가능성의 도래를 열망하는 것인데, 여기에서 불가능성이라는 것은 세상의 논리에 대립되는 불가능성, 세상을 운영하는 논리와 질서를 전복하는 것으로서의 불가능성을 의미한다.

강한 신학이 주장하는 하나님의 존재론과 행위에 대한 비판은 권력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사건의 하나님이 특별히 관심을 두는 존재들은 강한 신학이 배제한 사람들, 즉 여성, 아이들, 가난한 자, 아픈 자, 추방당한 자이다. 하나님의 약함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강한 자들을 꺾기 위해 약한 자, 아무 것도 아닌 자를 선택한 것을 말한다.

왕국 없는 왕국, 주권 없는 왕국에서 가능한 통치는 지배하지 않는 통치, 약자와 어리석은 자들의 통치뿐이라고 카푸토는 주장한다. 사건은 전능한 신에 부여된 영원하고 무한한 권력과 동일시되지 않고, 시간의 황폐로 고통 받는 권력 없는 자들과 동일시된다. 하나님의 통치는 인간의 권위를 지지하지 않고, 법의 눈을 과부와 고아, 이방인에게 돌리는 것을 말한다.(3)

힘없는 하나님이 힘없는 행위를 통해 힘없는 자들을 부르고 있다는 것이 바로 약한 신학인 것이다. 카푸토는 구원자인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사건을 하나님의 약함과 연결시키고, 예수의 비참한 죽음을 통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주의할 점은 카푸토가 주권 없는 통치, 힘없는 힘이라는 것을 통해 지배나 권력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한 혼란은 전체주의만큼이나 폭력적이라고 카푸토는 지적한다.(4) 그가 말하는 ‘~ 없는’에서 ‘~’에 해당하는 것은 절대적이어서 대문자화해야 하는 것을 가리킨다. 절대적인 권력과 질서, 절대적인 존재가 없는 것이 카푸토의 약한 신학이다. 약한 신학도 여전히 실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고, 그런 점에서 그것은 급진적이고 해석학적인 현상학이다.

그러므로 약한 신학이 존재 자체를 다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5) 하나님의 약함은 무기력하거나 수수방관하는 힘이 아니다. 그것은 약함으로써 강함을 이기고 부드러움으로써 경직성을 뛰어넘는 것을 의미한다. 왕국은 오히려 약함으로써 힘을 얻는 것이다.(6)

미주

(1) J. D. Caputo, The Weakness of God: A Theology of the Event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2006). 7.

(2) Caputo, The Weakness of God, 8-9, 12.

(3) Caputo, The Weakness of God, 34.

(4) Caputo, The Weakness of God, 26-27.

(5) Caputo, The Weakness of God, 121.

(6) Caputo, The Weakness of God, 14.

김민아 박사(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집행위원장) minahkim@inu.ac.kr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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