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장애인들의 천국, 헤른후트

기사승인 2022.11.18  15:55:56

공유
default_news_ad1

- 헤른후트에서 온 편지 (15)

▲ 일년에 한 번 교회 공동체의 일원인 장애인들과 함께 예배하고 축제를 여는 날이다. ⓒ홍명희

아침에 예배실로 들어가면서 많은 사람이 모였으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렇게 꽉 차는 예배당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일 년에 한 번 교회 공동체의 일원인 장애인들이 함께 예배하고 축제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남편의 휠체어와 내 자리가 있을까 망설이는 나에게 안내하는 형제가 자리가 있을 거라고 확신 있게 말해서, 다행히 바로 문 앞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 오르간 연주로 예배가 시작되었고 하나도 흐트러짐 없이 진행되었다.

나는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아!’ 하는 탄성이 저절로 나오고 말았다. 맨 앞줄에 휠체어에 앉은 할머니 때문이었다. 딸인 마리아와 나는 같이 휠체어를 밀다가 친구가 되었는데, 포도밭 일이 많아 잠시 오지 못한 것 같았다. 언젠가 할머니가 계시는 방 앞에서 인사를 하는 내게 마리아는 엄마가 읽던 성경이라며 보여 주었다. 할머니가 읽었던 성경에는 수많은 밑줄이 그어 있고, 성경은 빈칸 없이 빼곡히 쓰여 있었다. 오직 믿음으로 오랜 험한 세월을 굳건하게 견뎌오심을 알 수 있었다.

할머니는 이제 거의 눈을 뜰 힘조차 없게 연약하시지만, 거의 오랜만에 참석하신 이 예배가 얼마나 좋으실지 짐작이 갔다. 자녀들은 36세에 혼자 되어 평생 자녀 셋을 훌륭히 키워낸 어머니를 양로원에 맡길 수밖에 없었지만, 매일 찾아오는 효녀, 효자들이다. 아무튼, 예배에 집중하는 그녀의 모습은 한 마리 어린 양 같기도 하고, 아름다운 백조같이 환했다.

어제 저녁부터 전화를 여러 번 해 온 친구 가비는 오늘 자기가 찬양한다면서 자랑이 대단했다. 역시 그들의 찬양은 정말 은혜로웠다. 축복기도에 관한 것이었다. 어눌한 발음이지만 힘찬 찬양이 온 교회를 꽉 채우는 듯 아름다웠다. 그때였다. 마리나 할머니는 맨 앞에 앉아 손을 번쩍 들더니, 지휘하듯 휘청이며 박자에 손을 맡기고 있었다. 마리아가 이 모습을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 사진을 찍을 사이도 없이 찬양은 끝이 났다.

가비가 오른쪽 벽에 기대어 천천히 예배 단을 내려오며, 앞에 앉은 나를 보며 환하게 손을 흔든다. 너무나 감사해서 눈물이 날 뻔했다. 나는 가비를 진심으로 사랑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니 어쩌면 아직도 그 시간 중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뜬금없이 흐… 흐… 하면서 웃는다거나, 말을 잘못 알아듣게 말한다거나… 걷는 것도 조심해야 하고 등등. 아무튼, 처음엔 그냥 내게 그녀는 장애인 중의 한 명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그녀를 데리고 수련회를 다녀오면서부터 그녀는 나를 특별히 좋아하기 시작했다. 자기를 데려와 주어서 고맙다면서 한참 동안 내게 이마를 대고 있었고, 내가 등을 쓰다듬어 주면 좋아하는 게 역력했다. 그녀가 유일하게 스마트 폰에 사진을 찍어 올리는 취미가 생겨서, 나는 뜬금없이 그녀의 점심 메뉴 등을 받곤 했다. 바쁠 때 이런 사진을 받고 짜증이 나려고 할 때가 있었지만, 글을 쓸 수 없는 그녀는 ‘나 이런 점심 먹고 잘 지내고 있다’는 최대한의 인사라는 것을 점차 알게 되었다.

예배가 끝나고 축제가 시작되었다. 가비와 같이 축제에 함께 하자고 이야기했었다. 그런데 가비도 나도 다른 사람들로 인해 만나기가 어려웠다. 마당에서는 장애아특수학교에서 일하는 선생님과 직원들이 소시지를 굽거나, 수프를 판매하고 있었다. 나는 매서운 바람을 피해, 따스한 카레를 먹을 수 있는 장애 아동들이 다니는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맛있는 종류의 빵들과 차 한잔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놓았다. 나는 한쪽 테이블에서 아빠와 함께 자리한 죠세피나를 만나게 되었다. 9살 정도의 아주 귀여운 친구는 연신 눈웃음을 보내고 있었다.

아빠에게 몇 마디 시켜 보는데, 거의 무뚝뚝하고 아이에게도 한마디도 건네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아빠는 차 한잔, 아이는 케이크만 먹고 있다. 아이 너무 목이 멜 것 같아서 죠세피나에게 주스 한잔을 건네고 싶었지만, 아빠의 어두운 표정이 사람을 주춤하게 했다. 아이가 버릇없다며 손을 탁 내려치는 장면도 보아서 그렇다. 내가 죠셰피나에게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뭐 마시고 싶니?”라고 묻자 고개를 크게 몇 번 끄덕인다. 그제야 아빠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학교에서 나누어 준 쿠폰을 주머니에서 꺼낸다. 아이의 아버지가 가져다준 것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주스가 아닌, 차 한잔이었다. 아이는 나에게 더 환하게 웃어 보이면서, 이거 과일 차라고 자랑한다.

아이 아빠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엄마 얘기를 물었다. 아이는 오래전부터 없다고 한다. 잠시 아이의 얼굴에 어둠이 스쳐 지나간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픈 데를 찌른 것 같다. 엄마 없는 집에서 무뚝뚝한 아빠하고 살면서도 아이의 웃음은 끊이지 않는다. 축제 내내 조셰피나의 웃음이 내 마음을 먹먹하게 했다. 바람도 세고, 가비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같이 있던 친구도 일찍 돌아갔지만, 남편은 활기가 가득한 이곳을 좋아하는 듯했다. 햇볕 쨍한 곳을 찾아 감자 샐러드를 남편의 입에 연신 넣어주었다. 이 떠들썩한 분위기를 남편은 매우 좋아하는 듯했다.

▲ 가운데 노란색 티를 입고 있는 가비 ⓒ홍명희

오늘 같은 날은 린디가 장애인 일터 동료들을 만나느라 내 곁에 올 틈도 없어 보인다. 디아코니아에서 장애인들과 평생을 헌신해 온 드레셔 부부가 수프와 빵을 들고 잠시 합석을 했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한 장애우의 후견인을 맡아주시고, 내가 급하게 도움이 필요하면 늘 도와주시는 고마운 분들이다.

그분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사실, 이 디아코니아, 즉 사회복지 재단의 시작은 진젠도르프 시대부터 싹을 틔워 왔다고 한다. 늘 그렇듯이 누군가 시작한 그곳에서 싹이 트고 열매가 맺히는 것은 자연의 이치 같다. 1722년 헤른후트에서 형제 교회가 시작하면서부터 가난한 사람과 병자들을 돌보는 사역이 같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때는 지금과 같은 형태의 양로원, 장애인학교, 기숙사 등은 아니었지만, 이러한 사회 봉사적 차원은 믿음에 근거하는 일상에서 실천되는 것들이었다.

말씀과 섬김. 그것은 깊이 연관되어서, 헤른후트 형제 교회와 사회봉사, 디아코니아는 뗄 수 없게 되었다. 어떤 분은 디아코니아 건물이 시작된 1977년이라고도 했는데, 실상은 1722년이 기원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맞다. 1722년은 진젠도르프 백작이 도로테아와 결혼하여 모라비안들을 받아들이면서 헤른후트라는 마을이 생기던 해이다. 즉 약한 사람들을 돕는 것은 처음부터 헤른후트 형제 교회의 중심 과제였다.

사실 진젠도르프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그의 외조모가 고아와 과부들, 장애인들 돕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경험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디아코니아 복지 시설의 역사를 300년이 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교회 뒤로 아름다운 정원이 펼쳐지는데, 곳곳에 장애인 학교와 공동 기숙사가 있다.

또 아이들이 동물을 좋아하니 양우리가 있고, 그 아래로는 양로원과 어르신들의 데이케어센터가 세워져 있다. 정원은 모두에게 열려 있어서, 누구나 거리낌 없이 장애 아이들과 인사를 많이 나누게 된다. 나는 특별히 이 아이들과 점점 친해지게 되었다. 내가 남편과 산책할 때면 아이들은 휠체어 가까이 와서, 아저씨는 왜 여기 앉아 있냐고도 묻고 천천히 걷는 나와 같이 걸으면서 웃음을 주곤 한다.

주님은 우리를 섬기기 위해 오셨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모습처럼 사람들을 섬기기를 원하신다.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내게 닥친 일들과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우리의 사명인 것이다. 그리고 그 사명은 반드시 대가를 치르지만, 더 큰 보상을 받는다. 우리가 있는 곳 어디에서나 섬길 일들은 많다. 내 가족부터 이웃에 이르기까지, 더 넓게는 지구의 멀리에 있는 사람들까지 섬기고자 하면 섬길 수 있다.

당연하고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남편을 섬기면서 내가 자라나는 것을 경험했다. 섬기는 것은 주는 것만이 아니다. 내 그루터기가 튼실해지고 확고해진다. 비록 나치 시대에는 장애인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아 몰살시킨 일이 있었던 독일이지만, 이제는 이 헤른후트 디아코니아는 고유대명사가 되어서 다른 도시에도 생겨나고 있다. 마치 거라사 지방의 귀신들린 자가 다 나아서 주님의 명령대로 여러 마을로 다니면서, 주님이 자신에게 치유하신 일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헤른후트에서 하는 이 사역을 여러 지역으로 퍼지고 있다.

장애인은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들의 약함은 때로 오히려 많은 사람을 보호하고 있다. 악으로부터, 지나침으로부터, 죄로부터 울타리가 되어 준다. 모두가 경쟁하는 세상에서 그들의 평화로운 얼굴은 우리에게 세상을 천천히 바라보라고 일러준다. 남편이 장애인이 되고서, 나는 그것을 알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것은 그저 보이는 현상일 뿐이다.

하나님 안에서 그는 내 디딤돌이 되고 있다.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만나게 해준다. 연약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게 해준다. 그래서 남편이 고맙다. 남편의 존재는 내가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게 했고, 훨씬 더 큰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다. 헤른후트에서 만큼은 장애인들이 마음껏 거리를 활보할 수 있다. 그런 축복의 땅, 바로 여기에 있다.

홍명희 선교사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