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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기사승인 2022.10.30  05: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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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Freepik.com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누구든지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보라, 옛것은 지나가고 새것이 되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로를 통해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신 하나님께로부터 났다.(고린도후서 5:17-18)

‘모든 것’은 가깝게는 17절에 진술된 내용을 가리킵니다. 옛것이 지나가고 새것이 되는 사건입니다. 이 변화의 조건은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누구나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믿음을 강조하는 바울을 생각하면, 조금은 뜻밖입니다.

바울은 무엇 때문에 믿음이란 말 대신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일까요? 믿음은 마음으로 믿고 그것을 다른 사람 앞에서 고백하는 온전히 나의 사건일 수 있을까요(롬 10:8-10 비교)? 일반적인 의미의 객관성이란 말을 믿음에 대해 사용할 수는 없겠지만, 믿음은 ‘객관적’ 사건이기도 합니다.

믿음이 주관적인 차원에만 머문다면 그것은 성서가 말하는 믿음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고보서는 ‘믿음을 보여 달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약 2:18). 야고보는 이때 믿음의 실천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바로 그 실천의 동기와 원리를 보여주고 믿음의 객관성을 나타내주는 말이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입니다. 믿음은 내 안의 나가 그리스도 예수 안의 나로 이주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감정적이거나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한 세계를 구성하는 것은 원칙 내지 법이기 때문에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의 공간적 이동은 나를 그 원칙이나 법에 종속시키는 것입니다. 이 변화가 객관성의 근거이고 그 때문에 새로운 피조물을 말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이라는 공간적 표상으로 믿음이라는 말이 지닌 모호성이 제거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 세계를 구성하는 그의 말과 명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삶입니다(요한 15,9-10). 그와 같은 사랑이 믿음의 실천의 동기이고 원리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리스도가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에 곧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이를 본문은 하나님과 화해의 사건으로 기록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 그와 같은 화해의 사건이 일어나게 하는 직분(디아코니아)이 주어졌다고 말합니다. 위에서 말한 것에 비춰본다면 그것은 사랑의 실천으로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게 하는 사건이 일어나게 하는 직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사랑의 사건에 힘입어 사랑의 사건을 일으킴으로써 하나님과의 화해 사건을 사람들 사이에 일으키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일어나는 사랑의 물결이 혐오와 차별이 지배하고 배제와 폭력이 일상화된 세계를 바꾸는 것이 그에게 맡겨진 직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위임받은 화해의 직분을 수행하는 사랑의 오늘이기를. 하나님 없이 사는 세상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과 힘과 용기로 하나님 안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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