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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입장에서, “당신 자식이 동성애자라도”? ⑵

기사승인 2022.09.16  16: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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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소수자와 그리스도교 9

▲ 성소수자 부모 모임

1.

성소수자가 자신의 부모에게 자신의 성소수자라는 커밍아웃을 했을 때, 그 부모는 다음과 같은 6단계를 겪게 된다고 합니다.

충격-부정(거부)-죄책감-감정 표출-결단-참된 용인

이 6단계가 암환자들이 암 진단을 받은 후 겪는 5단계와 비슷하다는 말도 있습니다. 참고로 그 5단계는 이렇습니다.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만 비슷하다 아니다 이런 말이 나오는 이유는 충격의 강도가 비슷하고 그 충격이 전환되는 데에 5,6단계를 언급할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도 비슷하다는 데에 있겠지요.

앞의 세 단계에 대해서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어느 정도 짐작하실 거다 싶습니다. 성소수자 자녀의 커밍아웃을 받은 부모님 대부분이 하시는 말씀이 도대체 성소수자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있었는데 내 자녀가 성소수자라니까 충격 먹었다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첫 단계가 부정이 아니라 충격인 이유겠구요.

충격 다음에 오는 부정 단계는 자녀가 자신이 성소수자라고 판단한 것이 어떤 이유로든 잘못된 판단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단계입니다. 이 연재칼럼에서도 몇 번 말씀드렸듯이 자신이 성소수자임을 자각하게 되는 시기는 아주 빠르면 6-7세. 늦어도 10대 초중반인데, 그러니 아직 어려서 잘못 생각한 거 아니냐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게 되는 거죠. 어떤 분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 때에는 인정해 줄께 이렇게도 말씀하신다고 합니다.

그 다음 단계에서의 죄책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자신이 자녀를 잘못 키워서 이런 일이 생긴 것 같다는 죄책감. 그리고 자녀가 지금까지 많이 힘들어 했을 텐데 그것을 몰랐구나 하는 죄책감.

2.

네 번째 단계인 ‘감정 표출’이 무엇이냐 하면, 앞의 충격-부정-죄책감 단계를 거치면서 부모님들이 느낀 것이 무엇인지를 자녀에게 알려 주는 단계라고 합니다. 저 세 단계를 거치고 난 후 어느 정도 정돈된 감정을 이야기할 수도 있고 혹은 저 세 단계를 거치는 중에 이야기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 단계에서 표출되는 감정이 부정적인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부정적이라고 해도 솔직한 감정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고 합니다. 커밍아웃한 자녀의 입장에서는 상처를 받을 수도 있지만 부모님이 현재 어떤 상황에 있으며 어느 단계를 지나고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 단계까지 겪고 난 부모님들은 이제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그 결단이 반드시 성소수자인 내 자녀를 사랑해야겠다는 방향만은 아니며 내 자녀가 성소수자임을 받아들일 수 없다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결단은 번복 가능합니다. 이 단계까지 오게 되면  자녀가 성소수자로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조처를 밟고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서 결단을 내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마지막 단계가 ‘참된 용인’입니다. 용인이면 용인이지 왜 앞에 '참된'이 붙었나 이런 생각 드신 분은 없으신가요?

예를 들면 이런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자녀가 레즈비언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그 자녀를 큰 문제 없이 용인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자녀가 트랜스젠더여서 성별 재지정 수술을 원한다고 하니 거부감이 생겼다는 겁니다. 이 사실을 돌아보면서 성소수자인 자녀를 용인했다는 것이 자신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는 영역에서만의 용인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그 '불편함을 주지 않는 영역' 바깥에서까지 용인이 이루어져야 '참된' 용인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부모인 자신이 아무런 변화가 없이 자식을 수용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인 자신의 변화도 필요하다는 말일 겁니다.

3.

성소수자 자녀의 커밍아웃을 받고 위와 같은 단계를 거치고 난, 혹은 거치는 중에 있는 성소수자 부모는 이제 자신이 또 다른 커밍아웃을 해야 할 상황을 맞게 됩니다. 나는 성소수자 자녀를 가진 사람이다라는 커밍아웃 말이지요. 자녀가 결혼하지 않는 것을 궁금해 하는 다른 친척들에게, 성소수자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하는 가까운 지인에게 등등 말이지요.

성소수자들의 커밍아웃처럼 성소수자 부모들의 커밍아웃도 그것을 받은 사람들에게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때로는 파장을 일으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어느 성소수자 부모가 이야기하는 의도적 커밍아웃의 예는 이렇습니다. 그 집 딸 남친 있냐 결혼 언제 하냐 이런 질문에 애인 있다고 넘겨 왔는데, 어느 순간 이런 질문을 그냥 넘기기만 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딸의 파트너를 존중하지 않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지요. 이 분은 시민사회운동 영역에서 이루어진 커밍아웃의 이야기도 하시는데요. 그 영역에서도 성소수자가 뒷전 취급받는 경우가 많아서 본인의 커밍아웃이 그들이 표방하는 '진보'의 본질이 무엇인지 성찰하도록 하는 파장을 낳았다고 말씀도 하십니다.

이렇게 자신도 커밍아웃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성소수자 부모들이 성소수자인 자녀를 (가장 가까운 사이인) 부모로서 돕는 조력자의 위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소수자 부모’로서의 자신도 그 자체로 자신의 변화한 삶을 드러내는 주체의 자리에 서게 된다는 것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이렇게 성소수자를 수용하고 그 수용 과정에서 변화한 삶을 드러내는 주체는 꼭 성소수자의 ‘부모’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성소수자와 동료 시민으로 살아가는 모두가 그러한 주체가 될 수 있어야 하고 될 수 있을 겁니다.

황용연(사회적 소수자 선교센터 무지개센터 대표)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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