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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노동자들의 투쟁 이야기, 지방대학의 위기 이야기

기사승인 2022.09.09  06: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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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의 힘: 신라대 청소노동자와 함께한 114일》 (빨간소금, 2022)

저자, 배성민은 부산지역일반노동조합 사무국장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 정치인이 되기 위해 정당에서 일했다. 그러다가 그만두고 2020년 부산일반노조 상근 활동가로 취직했다. 2021년 114일간의 신라대 청소노동자 농성 투쟁에 노조 조직부장으로 참여하면서 일기처럼 노동운동 일지를 쓰기 시작한 게 한 권의 책이 되었다.

그는 말한다.

“‘농성 투쟁’ 하면 흔히 분노와 슬픔을 떠올린다. 하지만 인생에 희노애락이 있듯이 농성에도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 우리는 직접고용이라는 결과만 목 빠지게 기다리지 않았다.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 애썼다. 함께 자고, 밥해 먹고, 산책하고, 토론하고, 연대 투쟁에 나서고, 콧바람 쐬러 수련회를 다녔다. 복직한 지금, 조합원들은 농성할 때가 즐거웠다는 말을 많이 한다. 나는 이것이 바로 대학 본부 로비에서 114일을 버티게 한 ‘현장의 힘’이었다고 생각한다”(책을 펴내며 중에서)

이 책은 ‘풋내기 노동활동가가 기록한 신라대학교 청소노동자 114일의 투쟁 기록’으로 한 줄 요약할 수 있겠다. “민중의례도 깜빡하고 조합원 이름도 제대로 못 불러서 처음엔 걱정이 많았어요. 솔직히 실수가 반복되니까 우리 투쟁을 잘 이끌 수 있을까 하는 의심도 들었어요”(43쪽)라는 정현실 지회장의 말처럼 저자 배성민은 처음엔 실수가 잦았다. 그러나 점점 현장에서 다듬어졌고 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노동자의 인권 외에도 다양한 측면의 차별과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먼저 저자가 솔직한 문장으로 묘사한 51인의 청소노동자들은 흔한 편견으로 생각하면 ‘불쌍한 어머니들’의 모습을 하고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그와는 거리가 있다. 이들은 하루아침에 대학 측으로부터 전원 해고 통보를 받았지만, 그에 좌절하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이 즉시 사람을 조직하고 점거 농성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114일간 함께 자고, 밥해 먹고, 산책하고, 토론하고, 연대 투쟁에 나서고, 콧바람 쐬러 수련회도 다니면서 꿋꿋하게 농성장을 지킨다. 이들은 순진한 피해자가 아닌, 치밀하고 전략적인 노동운동가들인 것이다.

“해고예고 통보서 한 장으로 제가 이곳에서 일했던 10년의 역사가 정리되는 게 허무했습니다. 하루아침에 내 일터를 일게 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종이 한 장 달랑 주고 노동자를 잘라낼 수 있는 법이 야속했습니다. 해고인데 학교와 용역 업체는 이걸 계약 만료로 처리할 수 있으니 노동법은 누구를 위한 법입니까?”(38쪽)

올해 연세대 학생 3명이 ‘임금 440원 인상 및 정년 퇴직자 인원 충원’ 등을 요구하며 집회 중인 청소노동자들을 집회 소음으로 학습권이 침해당했다는 이유로 집회를 주도한 김현옥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연세대분회장 등을 업무방해 혐의로 형사 고소한 사건이 있었다. 이어 이들 3명은 수업료와 정신적 손해배상, 정신과 진료비 등 명목으로 약 640만 원을 청구하는 민사 소송도 제기했다.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조직적으로 총장실을 점거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그들이 평소 생각하던 ‘불쌍한 청소노동자 어머니’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었던 점이 고소장까지 작성하게 되는 데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신라대에서도 교수들과 학생들의 의견이 갈렸다. 아침 등교 투쟁은 주로 방송차를 이용해서 민중가요를 크게 틀고 박자에 맞춰 빈 페트병을 두드리며 요구사항을 알렸다. 농성투쟁이 학내 구성원에게 영향을 끼치므로 다양한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학교에 대자보가 붙었다. 총학생회는 ‘학습권 침해하는 집회 시위 중단하라!’. ‘교수님 목소리가 안 들려요’, ‘학습권을 보장하라!’는 현수막을 곳곳에 내걸었다. 교수평의회와 총학생회는 집회와 시위가 일으키는 소음 때문에 학내 구성원이 피해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 우리 캠퍼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란스러운 상황과 행동에 대해서 대학 구성원 모두가 심각한 우려감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 작금의 상황은 학생들의 학습권을 철저하게 무시하는 행태로 비추어지고 있으며 교육 현장에서는 절대 용인될 수 없는 행동입니다.”(2021년 3월 19일 ‘신라대 교수평의회 의장단 일동’ 대자보 중에서, 67쪽)

그러나 이에 반해 청소노동자를 지지하는 학생들의 반박 대자보가 붙으면서 학생 학습권 논쟁이 일었다.

“현재 학교 경영 위기는 수년 전부터 예견되어 온 것이고, 지역 사립대학이라면 모두가 피해갈 수 없는 문제입니다. … 그 책임을 구성원들에게 떠넘기는 작금의 방식, 즉 청소노동자들을 잘라내고 졸속으로 학과를 없애는 식으로 간다면 내일은 다른 이들이 타깃이 될 수밖에 없을 텐데 이에 대한 총학생회의 견해와 대책이 궁금합니다.”(2021년 3월 20일 ‘청소노동자를 지지하는 신라대 학생모임’ 대자보 중에서, 67쪽)

그러나 노동운동이란 것은 치사하고 더러운 고용주 측과 오랜 시간 요구와 협상을 이어가며 싸워야 하는 지난하고 살벌한 과정이다. 무엇보다 이들이 걸고 싸우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과 부양가족의 생존권이다. 생존을 위해 시작하여 책임감을 가지고 헌신하던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해고 통보를 받는 경험은 직접 당해보지 않고는 공감하기 어려운 매우 절망적인 경험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상황과 과정은 설사 그렇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한 명의 투사로 만들 수밖에 없다. 2012년과 2014년에 이미 농성 투쟁의 경험이 있었던 신라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은 당연히 전문적인 노동운동가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총장과의 면담을 위해 총장실을 점거하고 우여곡절 끝에 1차 면담을 하게 되었다. 노조에서 요구하는 직접 고용을 검토하고 전원 복직을 생각하고 있다는 총장의 말에 조만간 농성장을 정리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총장은 2차 면담에서 말을 바꿨다. 농성은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갯속 같았지만, 더욱 가열 차고 압박을 가하는 장기투쟁으로 흘러갔다.

5월 25일 학교와 정식교섭이 시작되었다. 1, 2차 교섭에서 학교가 제시한 내용에 단호하게 선을 긋고 새로운 양보안을 제시했다. 실무 교섭을 한두 차례 더 가지고 6월 16일 최종 합의했다. 신라대 청소노동자는 10년이라는 힘겨운 시간을 거쳐 직접고용을 쟁취했다. 핵심 내용은 이렇다.

“농성하는 조합원 28명 전원 직접고용, 만 65세 정년 보장, 학내 노조 사무실 개설, 기존 근로조건 동일, 9월(4명)·12월(23명)·부상자(1명) 치료 후 복귀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학교가 노조에 제기한 민형사상의 책임 또한 모두 취하하기로 했다”(189쪽).

한편으로 이 책은 수도권과 지방의 자본 양극화 문제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저자는 신라대 청소노동자 전원 해고는 지방대 위기의 예고편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대학교육연구소의 연구보고서 <대학 구조조정 현재와 미래>에 따르면 입학 가능(예정) 인원이 2021년 약 43만 명에서 2040년 28만 명으로 급감할 예정이라고 한다. 수도권 대학과 지방 국립대 입학정원을 모두 합치면 약 26만 명이란 점을 고려하면, 지방 사립대 전체가 몰락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실제 2000년대 이후 문을 닫은 대학 18곳 중 지방대가 무려 17곳에 달한다.

한 대학이 폐교되면 비정규직인 청소노동자 등의 인력과 시간강사들뿐만 아니라 정규직인 교직원들까지 전부 일자리를 잃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립학교 교직원은 사립학교 연금법 혜택을 받는 노동자로서 고용보험 등 사회보장 적용에서 제외된다. 지난 10년간 수천 명의 사립학교 교직원이 임금 체불로 거리에 나앉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정부의 정책 마련이나 지원 등의 대응은 전혀 없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지방대의 위기는 지역 경제와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규모가 작은 도시일수록 대학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군 단위 지역의 경우, 대학 한 곳이 지역 소득·고용의 9퍼센트를 차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예를 들어 강원도 강릉시 관내 대학생의 소비 지출 규모는 연간 1,600억 원이다. 시 전체 예산 10퍼센트를 넘는 규모다. 강릉시 전체 인구에서 대학생이 차지하는 비중도 전국 평균의 2.5배가 넘는다. 실제로 지난 2018년 한국은행 보고서 <지역대학의 위기와 지역경제의 활성화>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강릉지역 대학생 3,600명이 감소하면서 연간 소비 지출 규모가 278억 원 줄었다. 이렇게 대학이 사라진 도시의 장래는 어둡다. 전북 남원은 2018년 서남대 폐교 이후 20대를 중심으로 인구 유출이 가속화됐다. 2017년 8만 3,500명이었던 인구는 2020년 기준 2,500명 가까이 감소했고, 지역경제는 침체에 빠졌다. 지역경제가 나빠지면 지역 인재가 수도권으로 더 빠져나가면서 격차는 더 벌어진다. 이렇게 되면 남아 있는 지방대학의 경쟁력도 떨어지면서 끝내 폐교 절차를 밟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지방대의 위기는 그곳에서 일하는 대학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해당 지역의 생존권 문제이다. 대학 하나가 무너지면 노동자뿐만 아니라 학생과 지역주민의 생존권 또한 박탈된다. 지금과 같은 추세로 간다면 신라대와 같은 사례는 계속 생겨날 것이고, 가장 먼저 지목되는 희생자는 학내에서 가장 약한 처지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 것이다. 즉 글쓴이는 지방에도 사람이 있고, 그들이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으며, 지방대 위기의 책임을 지역민과 노동자들은 물론 단순히 대학 측에게만 떠넘겨서도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렇듯 이 책은 솔직하고 투박한 문장으로 쓰인 풋내기 노동운동가의 청소노동자 농성 투쟁 기록기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그 내용에 있어 한국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논하며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청소노동자들에게 ‘피해자다움’을 무의식중에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젠더 문제와 이를 부추긴 언론 보도의 문제로도 이어갈 수 있고, 지방대 위기의 문제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수도권과 지역의 양극화 문제로 정부 차원의 근본적인 대책을 논해야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또한 이는 하나의 사회문제에는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고 단독으로만 존재할 수 없음을 시사 하기도 한다. 이러한 측면들에서 사회운동에 종사하거나 관심이 깊은 이들 혹은 사회운동에 편견을 가진 이들에게 또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리연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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