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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빌의 혁명 분석에서 쟈코뱅의 자리

기사승인 2022.09.02  22: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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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정치와 짱개주의 ⑵

▲ Jean-Baptiste Verite, 「Demonstration of 20 June 1792 at the Tuileries」 (c.18th) ⓒWikimediaCommons
정승훈은 신학과 사회학을 전공했다. 미네소타 루터신학대학 부교수를 역임 후 시카코 루터 신학대학원 석학교수로 임명되었다. Historians’ Debate-Public Theology 사이트 저널 편집장으로 서구 사회에서 미디아의 담론과 정치전략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글을 쓰고있다.

독재에서 개혁과 혁명이 시작되는가?

자코뱅(Jacobin) 독재는 테오도미르 반동(1794년 7월 27-28)으로 인해 기요틴에서 로베스피에르와 그의 동료들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다. 소비에트 공식 엔사이클로피디아(1979)의 평가는 상당히 우호적이다. 자코뱅 그룹은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의 구현이며, 로베스피에르가 가장 먼저 착안하고 했다고 한다. 로베스피에르의 혁명의 극단주의나 테러정치가 러시아 혁명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어필한다.

1921년 독일 영화 “당통”이 1924년 소비에트 연방에서 수입되어 방영되었다. 원본과는 다르게 혁명의 대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당통을 처단해야하는 로베스피에르의 인간적인 고뇌의 모습이 덧붙여 각색되었다. 레닌에게서 자코뱅은 혁명적인 인민들과 더불어 있고, 그의 볼세비키의 이념형으로, 그런가하면 붉은 군대의 창시자로 파악될 수 있다. 그러나 몰락의 운명도 함께 나눈다.

구체제 정치조직에서 발생한 대립과 갈등

프랑스 정치철학자 알렉시스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은 프랑스 혁명을 분석하면서, 극심한 대립과 갈등을 구체제의 정치조직에서 보았다. 특히 프랑스 사회에서 출생에 의해 결정되는 귀족신분제는 세금공제의 특권으로 인해 대부분 다른 계층들과 구별되었다.

금수저와 은수저를 입에 물고 나온 사람들이다. 프랑스의 도시들은 지배가문을 통해 통치되었고, 각각 다른 법과 사법제도들이 있었다. 프랑스를 사회적으로 묶어주는 시민 통합제도들은 찾아보기란 어려웠고, 절대 군주에 의해 ‘탑 다운’(top-down)방식으로 다스려졌다.

토크빌에 의하면, 계몽주의 이념은 사회의 조화로움이 자연적으로 동등한 인간의 권리에 기초된다. 일반 이익이 사익이나 특수 그룹(귀족 혹은 상인)의 이익에 우선한다. 프랑스 사회 조직은 이기적인 사익에 붙잡혀 있었고, 그로 인해 공공선을 위한 일반의지를 방기해 버렸다. 계몽사상이 사회 전반에 걸쳐 유포되고, 출생의 특권을 비판하는 인권을 귀족들은 받아드릴 수 없었다.

그러나 계몽이념을 받아들인 대중은 프랑스 사회가 이러한 이념에 의해 작동되지 않은 것을 보았다. 군주제 개혁을 향한 강한 요구들이 계몽의 철학자들 사이에서 분출되기 시작했다. 마르크스가 표현했듯이, 이념은 유령처럼 배회한다. 이념의 담지자들을 사로잡아 새로운 사회를 향해 영혼의 불을 지른다.

1789년 대혁명이 일어나기 전 유럽의 군주들은 자신들의 영토에서 특권과 부패를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계급과 카스트의 신분의 장벽을 허물고 국민을 정치사회적으로 통합하는 제도를 만들기에 역부족이었다. 이러한 무능이 개혁과 평등한 사회를 열망하는 공공 지식인과 대중에게 분노와 좌절을 일으켰다. 프랑스 혁명에서 첫 희생자가 귀족계급이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결국 혁명의 진행 과정에서 군주제 자체도 무너졌다.

▲ Theodore Chasseriau, 「Alexis de Tocqueville」 (1850) ⓒWikimediaCommons

혁명은 나쁜 상태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개혁과 혁명의 관계를 볼 때, 토크빌의 입장은 명쾌하다. 중산층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일어난 것이 아니다. 거꾸로 부유해지면 일어난다. 증산층이 사회의 특권에서 배제되어서가 아니라 참여가 확대되면서 생겨난다. 귀족들이 계몽 이념에 저항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이들이 점점 더 이러한 이념에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생겨났다. 구체제가 무너지는 것은 귀족들이 자신들의 특권에 집착해서가 아니라, 이들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는 데서 온다.

결국, 사회가 혁명으로 가는 길은 나쁜 상태에서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봉건 정치제도가 몰락의 전야에 분노로 가득찬 프랑스 대중을 선도하지 못한 지점에서 비롯한다. 무능한 루이 16세의 사소한 행동을 참기보다는 태양왕 루이 14세의 전제 정치를 참는 것이 더 쉽다. 토크빌의 혁명이론은 정치제도와 사회구성에 주목한다. 그래서 사회학에선 혁명의 구조이론으로 부른다. 사회구성이 혁명의 조건을 만들어낸다.

자코뱅은 토크빌의 혁명 분석에서 자리를 가질 수 있는가? 그의 부모는 공포정치 기간에 투옥 되었지만 간신히 희생을 피할 수 있었다. 루소의 제자로서 토크빌에게 민주주의 혁명은 피해갈 수 없지만, 테러와 살육으로 물들여진 독재와는 거리가 멀다. 그가 “미국에서의 민주주의”라는 걸작에서 본 것은 루소의 시민사회와 코뮌 역할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밑에서 위를 향하는 자유로운 결사체와 코뮌 제도를 만들고 위로부터의 국가의 관료행정으로부터 시민사회를 방어한다. 그러나 ‘자기 이익’이라는 미국의 도덕문화가 산업자본주의에서 영국의 자유 방임주의와 개인 이기주의로 인해 손상을 입을 수도 있다. 토크빌의 민주주의는 극단적인 폭력주의나 영미의 자유방임주의와는 다른 길을 지적한다.

정승훈 교수(시카고 루터신학대학원)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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