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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도 계속되는 ‘체액’에 대한 신앙

기사승인 2022.08.11  15: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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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스러운 체액’과 아브젝트(Abject) ⑽

▲ 나주 ‘마리아 구원방주’의 ‘윤 율리아’ ⓒhttps://www.najumary.or.kr/main

앞서 계속된 연재에서 우선 대표적인 ‘성스러운 체액’으로 성혈과 성유라는 가톨릭교회의 핵심적인 성유물과 관련 신심을 다루었다. 물론 필자는 신학자도 기독교 역사학자도 아니라는 점에서 성유물과 관련된 신학적/교리적 논의나 자세한 역사적 발전과정을 다룰 수는 없었으나, 이 또한 본 연재의 주제가 아니었음을 언급하고자 한다. 본 연재의 과제는 우선 물질종교의 관점에서 성스러운 체액에 대한 공경과 신심이 관련 성유물을 중심으로 중세 유럽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전개되었으며 그 배경에는 어떠한 종교적 욕구가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었다.

이에 이어서 크리스테바의 아브젝트와 아브젝시옹 이론을 중심으로 일반적으로 혐오의 대상 즉 아브젝트인 유출된 체액이 어떠한 제 조건에서 구원을 약속하는 성스러운 물질로 작동할 수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아브젝트 논의에서 특별히 관심을 끌었던 것은 바로 예수의 수난을 주제로 한 중세 후기 기독교 미술로 이들 작품은 예수의 피를 다양한 형태로 묘사하고 강조함으로써 아브젝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유럽의 중세시대가 ‘말씀’보다 이미지와 시각적 신심이 지배한 시대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종교화가 전달하고 있는 구원자 예수의 이미지가 지닌 힘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현대미술에서 아브젝트인 체액과 분비물을 의도적으로 핵심적 모티브로 사용하여 기성 질서에 충격과 균열을 꾀하려는 시도와도 닮아있다.

한편 구원자나 성인의 성스러운 체액을 보고, 만지고, 냄새 맡으면서 이들의 현존과 은총을 확인하려는 (대중의) 열망은 중세의 가톨릭 전통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에도 지속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대표적 사례는 윤 율리아(본명: 윤홍선, 1947~)가 이끄는 나주에 소재한 ‘마리아의 구원방주’(이하 구원방주)이다. 가톨릭 평신도였던 윤 율리아에게 세간의 이목이 쏠린 것은 그녀가 모시던 성모상이 1985년부터 눈물, 피눈물, 진땀을 흘리고 코피까지 쏟으며 성모의 고통을 보인다고 알려지고 이와 함께 윤 율리아가 성모의 메시지를 전하면서이다.

그 결과 순례객이 전국에서 모여들었고 그녀는 추종자를 중심으로 성모 신심/공경을 앞세운 신앙공동체를 구축하여 이를 현재의 대규모 조직으로 성장시켰다. 성모의 젖과 관련된 기적은 상대적으로 뒤에 (2009년) 보고된 것으로, 성모의 ‘참젖’이 특별한 행사나 교회 기념일에 윤 율리아와 신도들 그리고 특정 장소(성혈 조배실, 경당 등)에 떨어진다고 하며, 최근에는 (2018~) 성모 동산의 ‘기적의 샘물’에서 나오는 물이 참젖으로 변화하여 흰색으로 바뀌고 우유 맛이 나며, 치병의 기적을 경험했다는 보고와 영상도 접할 수 있다.(1)

무엇보다 윤 율리아는 구원방주 내의 ‘성모 동산’에 조성된 ‘십자가 길’에서 정기적으로 예수의 십자가 길을 재현하며 편태(채찍질)와 자관(가시면류관) 고통을 겪으며 피를 흘리고,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 얻은 오상(五傷)의 상처 즉 성흔(聖痕)을 나타낼 뿐 아니라, 이 길에는 종종 예수의 성혈, 피땀, 진액도 떨어진다고 한다.(2) 또한 구원방주 신자들은 율신액 즉 그녀의 소변을 묻힌 스카프를 아픈 부위에 매거나 문지르면 치유된다고 믿고 있다. 이렇듯 윤율리아는 다양한 체액–피, 젖, 피눈물, 눈물, 땀, 젖, 눈물, 땀, 진액, 소변 등–을 매개로 추종자들이 예수와 성모의 현존과 은총을 주기적으로 확인/확신하게끔 한다.

본 연재에서 다룬 성스러운 체액과 아브젝트에 대한 논의는 필자의 오랜 연구과제인 한국의 가톨릭계 신종교라 할 수 있는 구원방주에서 일어나는 성스러운 체액과 관련된 제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일종의 사전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구원방주가 교도권과의 갈등과 부정적인 여론으로 주변화되고 타자화되어 스스로 아브젝트로 전락할 위험에 처한 현 상황에서, 이들 공동체가 다양한 체액을 매개로 예수와 성모의 현존과 은총을 확인하고자 함은 아이러니하게 보인다.

미주

(1) https://www.youtube.com/watch?v=6nrcLxNQYp0; https://www.youtube.com/watch?v=gvMLatu6uuY (최종 접속일 2021.12.23.)

(2) 성흔(stigmata)는 두 가지 의미로 예수가 십자가형을 받을 때 그가 받은 상처 그리고 그가 받았던 육체적인 고통과 상처가 갑작스럽게 신자에게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후자는 기독교 전통에서 새로운 현상이 아니며, 최초의 기록은 13세기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St. Francis of Assisi)와 14세기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St.Catherine of Sienna) 이다. 그러나 가장 유명한 것은 1910년 브라질의 피오(Padre Pio) 신부에게 나타난 성흔 기적으로 그는 23세 때 신도들과 함께 추수감사절 예배를 올리던 중, 손과 발에 상처가 생기면서 피가 흘렀다고 한다. 그 후 그는 평생 상처를 지니고 살았으며 매일 한 컵 정도의 피를 흘렸으며, 질병에 허덕이는 가난한 사람들을 치유하는 이적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사후 2002년 로마 가톨릭 사상 758번째로 성인 반열에 공식적으로 올랐다. (〈파드레 피오 신부, 758번째 聖人으로〉, 《조선일보》 2002.06.17.)

우혜란 박사(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woohairan@hotmail.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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