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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상이 아름다운 순례의 길

기사승인 2022.08.05  00:4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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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른후트에서 온 편지 (9)

이 마을에 이사 온 지 한 달이 다 지나가는데, 아직도 조각상이 있는 숲길은 못 가 보았다. 빨래를 너는 데, 길레 할머니가 친절하게 그 길에 대해 이야기 해 주셨다. 그 숲길에는 진젠도르프의 탄생 300주년을 맞이하여, 진젠도르프가 어린 시절을 보내었던 ‘그로스 헨너스’라는 마을에서부터 헤른후트에 이르는 7km의 숲에 난 길에 의미 있는 조각상을 군데군데 설치하게 되었다고 하신다.

그 길을 처음 갔었을 때를 기억한다. 초여름이 막 시작할 무렵이었는데, 아주 조금 가다가 돌아서고 말았다. 뭔가 깊숙하고 어둑어둑한 숲의 내리막길이었는데, 대낮인데도 어둑한 것이 마음에 썩 내키지가 않았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그것은 내 인생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발길을 망설이게 만들었다. 두 번째, 세 번째도 돌아서고 말았다.

어느 날이었다. 그냥 마음이 먹어졌다. 모든 일에는 마음이 참 중요한 것처럼, 마음을 먹고 가방을 챙겼다. 돌아오지 말고, 끝까지 가기로 마음을 먹기에 이르른다. 가을의 초입이었고, 날씨도 퀘청했다. 물과 간식 도시락도 患. 남편은 평소처럼 산보하는 줄 알고 따라오고, 강아지도 함께 드디어 출발을 했다. 숲으로 들어서자, 초입에 말씀의 한 구절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나는 길이요 … 가라 … Ich bin der Weg, geh

그 길을 걸으며, 진리요 생명이신 그분과 동행해야 할 텐데 … 얼마가지 않아서 큰 나무 앞에 있는 말씀판을 읽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작은 씨가 심겨지고 큰 나무가 되어,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든다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그 현판 가운데에 몇 그램 안되는 씨를 유리 안에 넣어두었다. 그 뒤로 보이는 13톤의 나무가 대조적으로 우람하게 서 있다. 보는 이마다 감탄하는 어마 어마한 참나무의 크기에 압도당하는 하나님의 원리, 즉 작은 씨앗으로 시작이 된다는 말씀이 아닌가. 그 나무로 처음 피난자들은 집을 짓는 중요한 재료가 되었다.

조금 더 내려가니, 갈림길이 나온다. 거기서 표지판을 잘 보고 따라가야 한다. 조금 따라가다 보니, 나무로 깎아 만든 축복의 손이 나온다. 축복의 손아래는 새 둥지에 여러 개의 일하는 도구들을 걸쳐 놓았다. 모라비안들의 생업은 가내 수공업이었다. 그들이 일하는 곳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함을 상징하는 조각이다. 이주자들은 주님의 축복아래 세워진 헤른 후트, 즉 주님의 보호하심으로 새둥지와 같은  이곳에서 삶을 영위하게 된다.

자 … 여기까지 왔었을 때, 친절히 길을 안내해 주시던 분이 계셨다. 그 조각상을 다시금 칠하고 돌보시던 분이었다. 물론 표지판을 보고 내려왔지만, 다시금 안내자를 만났을 때 참 좋았다.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왔건만, 그래도 또 누군가가 다시금 잘 왔다고 하시며, 다음 길을 안내해 주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그렇게 걷다보면, 싸움이라는 큰 아치형의 조형물을 만난다. 양쪽 길의 무서운 얼굴의 아치형은 서로 덤빌듯이 화를 내고 있다. 그리고 몇 걸음 더 가면, 등 뒤를 돌리고 서 있다. 그리고 다음 단계에서는 아주 낮은 형태의 모습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을 하는 모습이다. 처음 마을에서 사람이 살다보니, 이주자인 모라비안 형제들과 여기 독일에서 합류하게 되면서 왜 잡음이 없었을까 … 진젠도르프의 끊임없는 설득과 성령 충만의 예배로 그들은 결국 평화를 이루어 내었다.

평화, 평화로다. …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적시소서.

이 숲 속에 정말 작고 아담한 호수가 나오리라고 상상해 보지 않았다. 깊은 숲에서 물을 만나는 것은 행운 같은 일이다. 너무도 아름다운 … 호수라기에는 좀 작고, 연못보다는 큰물에, 하얀 백조 한 쌍이 사는 그런 물웅덩이가 나왔다. 그리고 그 호수를 마주하고 하얀 성찬상이 자리한다. 누가 보아도 가운데에 있는 양의 조각과 포도나무의 원가지는 주님을 상징하게 하고, 나머지 상징들은 제자들을 가리킨다고 상상할 수 있다. 앞에는 빵과 포도주를 상징하는 상도 조각으로 만들어 놓았다. 헤른후트는 마을이 세워지고서 수없이 많은 성만찬을 중시해 온 공동체이다. 우리도 여기에 앉아 보았다.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성만찬을 할 수 있다니 … 후에 나는 여러 번 손님들을 이끌고 이곳에서 성찬식을 하는 호사도 누려 보았다. 새들의 소리와 자연 속에서 드리는 성찬식은...우리 모두를 더욱더 자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한다.

호수를 돌아 나가는 길에, 여러개의 하얀 기둥을 만난다. 그 기둥 끝에는 기도하는 깊고 고요한 얼굴들과 손이 조각되어있다. 기도할 때 얼굴의 표정들은 전부 다르고 손의 모양도 다르지만, 다 한결같이 하나님을 향한 깊은 간구의 모습이다. 헤른후트가 세워지고서 기도는 멈추어지지 않았다. 성도들이 돌아가면서, 일터에서고 집에서고 기도를 24시간 깨어 있는 기도 공동체로 세웠던 것이다. 지금도 기도는 여러 대륙에서 나누어가며 기도하고 있다.

내가 주님을 간절히 바랄 때, 나는 어떤 표정일까 … 하나하나 동상의 얼굴 속에서 내 얼굴을 찾아본다. 왠지 이제부터 길이 험난할 것 같은 예감이 적중했다. 난데없는 소 떼를 만났다. 겁을 먹으며, 소 떼를 피하느라 표지판이 어디에 있었는지 신경을 못 썼다. 다시 표지판이 나오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앞으로 걸었다. 길이 질척하며 발이 푹푹 빠지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길이었다.  내 인생길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이런 길을 만났을 때, 불평했던가 … 바르고 잘 정돈된 길만을 고집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무튼 언덕으로 오르는 곳에 조그만 표지판이 우리 모두를 질척한 길에서 벗어나게 했지만, 오르막 또한 쉽지는 않았다. 언덕을 오르고 또 오르며 숨이 찰 즈음에 작은 움막집을 만났다.  헨젤과 그레텔이 그 집에서 튀어 나올 것만 같다. 오늘은 그 마당에 있는 투박한 나무 의자에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집을 떠난 지 거의 두 시간이 가까이 되었다. 사과와 맛있는 과자를 먹으면서 무거운 다리도 쉬는데, 갑자기 남편에게 투정을 부리지 못하는 것이 서러웠다.

여기서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가는 길이 더 멀다. 그러니 다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늘 남편에게 의지하여 그가 이끄는 데로 갔던 지난날이 갑자기 내 콧등을 시큰 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잘 와 준 남편이 고마워서 다시 힘을 내어 일어섰다. 깊은 숲속에서 한 줄기  빛이 보이며 점점 환해 졌다. 그러더니 넓은 대 평원이 나왔다. 가슴이 시원해 졌다. 그러다가 나는 소리를 질러 버릴 정도의 아름다운 조각상을 만난다. 그 조각상은 숲이 끝나는 지점, 그리고 앞의 넓은 초원을 바라보는 지점에 벤취에 앉아 고개를 숙이며 간절히 기도하는 여인의 엄숙한 자태의 형상이었다. 아마도 들녘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기 전에 여기서 기도를 올리던 여인의 숨은 이야기가 있을 법하다.

여기까지 인도하심에 나도 감사하며, 그녀처럼 기도하는 마음이 되었다. 한참을 그녀 옆에 앉아 있고 싶었지만 길을 떠나야 함이 아쉬웠다. 그녀와 헤어지고 얼마 안 되어서, 다시금 어두운 숲으로 난 길을 걸어야 했다. 그 숲은 얼마나 어둡고 음산했다. 죽은 나무들이 흉칙스러웠다. 나는 남편의 손을 더 꼭 잡았다. 내가 그를 인도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교만이었다. 나는 남편을 더 의지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의 아름답고 감사로 충일된 가슴이 곤두박질 쳤다.  그러더니 갑자기 숲은 짧게 끝나버렸다.

삶 한가운데에서 끝날 것 같지 않은 어둠이 걷히는 순간과도 같았다. 대 평원에는 향긋한 풀내음과 햇살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 평원을 건너가고 있을 때, 정말 그림 같은 조각상이 우리를 맞이한다. 한 사람이 가방을 들고 다리를 건너려고 한다. 그 건너편에 한 여인이 맞이하고 있다. 이 조각상의 제목은 <선교>이다. 그랬다. 선교는 한 사람과 한 사람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주님도 한 사람, 한사람을 만나주셨다. 수많은 기적과 많은 군중들 … 그것만이 선교의 목적은 아닌 것이다.

대평원이 끝나고 마을로 들어섰다. 진젠도르프가 어릴때 외조모의 보호를 받던 마을이다. 이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낡은 돌무더기 잔해가 보인다. 외조모의 성이다. 그 성은 복원되지 못했고, 바로 옆에 성인이 된 진젠도르프가 아이들과 아주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대화를 하는 아름다운 조각상이 있다. 그는 어린이들을 참으로 사랑했다고 전해진다. 아이들 눈높이에서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의 친절한 성품을 떠 올려본다.

그가 어린 시절을 엄마와도 살지 못하고, 할머니와 살아야 했으니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도 떠 올려 본다. 그러나 철저한 신앙인이었던 할머니의 교육은 진젠도르프가 어릴 때부터 주님께 아주 가까이 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지칠대로 지친 우리들은 쉴 곳이 필요했다. 마을 사람을 만나 물어보니, 카타리나 센터에 조그만 카페가 있단다. 진젠도르프 할머니는 그 마을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던 백작이셨다. 그래서, 지금 그곳에는 그녀의 이름을 딴 중증 장애인을 돌보는 사회복지 센터가 서 있다. 오늘은 일단 지친 몸을 쉬러 그곳 카페에서 스프와 빵으로 허기진 배도 채웠다. 아침나절에 출발해서 오후가 되었으니, 발이 얼얼하도록 걸었지만, 마음만으로는 해 내었다는 성취감으로 충일해졌다. 중증 장애인들이 휠체어로 지나가면서 인사를 걸어온다.

이 달콤한 휴식이 그리워 질 때면, 나는 이 길을 다시 또 걸었다. 그렇게 해서 가을 내내 열번 정도의 순례를 마칠 수 있었다. 어떤 때에 어떤 동상이 나타나는 지 다 알고 걷는 것은 처음 길을 나설 때와는 다르다. 때론 몇몇이 같이 걷기도 했다. 함께 걷다보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다. 함께 감동하는 기쁨이 있다. 앞으로도 또 누구와 이 길을 걷게 될지 기대하게 된다.

홍명희 선교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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