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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듣기 좋은 말이 아니다

기사승인 2022.07.30  23: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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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 Horace Vernet, 「Jeremiah on the ruins of Jerusalem」 (1844) ⓒWikipedia
너는 이 백성에게 전하라. 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둘 것이다.(예레미야 21,8)

예레미야는 한 예언자이기 이전에 한 나라의 마지막 시대를 살아간 한 사람이었습니다. 역사에서 보듯 한 나라가 그 끝에 이르면 온갖 부정적인 사회적 현상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긍정적인 것들은 아무리 붙들려고 해도 잡을 수 없는 것이 되어 갑니다. 이러한 시대에 예언자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예레미야가 잘 보여줍니다.

하나님과 씨름하고 하나님을 속이는 자 같다고 몰아붙이고 하나님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회생을 간절히 원하며 예언자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역사의 바퀴는 방향을 바꾸지 않았고 멈추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전할수록 내면의 갈등은 깊어져갔고 사람들과의 거리는 커져만 갔습니다.

그의 선포는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와 하나님의 뜻에 맞는 정의롭고 공의로운 사회를 세움으로써 임박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려는 것이었지만, 그 내용은 언제나 파멸의 경고였고 그 언어는 늘 도발적이었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고는 이스라엘이  탈(脫)하나님 경향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와 심판 선언을 계속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일이고, 이는 예언자 예레미야에게도 매우 큰 심리적 부담입니다. 오죽하면 자기의 생일을 원망했겠습니까?

시간은 멈춤 없이 흘러 파국의 순간이 코앞에까지 다가왔습니다. 바빌로니아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했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그의 예언활동은 계속됩니다. 과연 어떤 예언일까요? 하나님의 보호와 이스라엘의 승리일까요? 사람들은 모두 그러한 예언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귀를 의심했을 것입니다. 그가 말한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이 전혀 뜻밖이었기 때문입니다. 항복을 하는 것이 사는 길이라니, 아무리 세계 최강의 군대 앞에서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의 항복 권유는 바빌로니아를 하나님의 심판도구로 간주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상황에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훗날 바빌로니아는 분수를 모르는 도구로 판명되고 심판선언을 듣게 됩니다.

여하튼 예레미야는 개인적으로 하기 쉽지 않은 예언을 하고, 그 때문에 또 시련을 겪게 됩니다.

요나는 예언자로서 맡겨진 예언을 감당하기 싫어 하나님 앞에서 도망쳤다가 다시 붙잡혀 왔습니다. 예언자란 참 어려운 직분입니다. 자기감정이나 생각과도 싸워야 하고 청중들의 반발과 위협에 직면하기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사람들이 예언자들입니다.

그들의 고뇌와 고통으로 우리는 생명의 길이 무엇인지 어떻게 갈 수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그 길을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갈 수 있고, 그 길 위에 진리와 정의와 사랑의 씨를 뿌리고 그 열매를 거두며 생명에 이르기를 빕니다.

생명의 길을 서로 연대하며 즐거움으로 가는 오늘이기를. 현재를 반성하며 하나님의 뜻에 비춰 현재와 미래를 구성하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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