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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에 걸친 로잔 대회

기사승인 2022.07.26  02:3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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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 선교의 본질과 과제 ⑵

▲ 1978년 9월 미주리 주 스프링필드에서 열린 로잔 세계복음화협의회(집행위원회)에서 영국 성공회 존 스토트(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는 복음주의 진영의 리더로 지위를 굳혔다. ⓒGetty Image

선교의 지평을 근본에서 흔들어 놓은 20세기 최고의 사건이 있다면 그것은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일 것이다. 뒤따라 일어난 냉전체제의 해체, 지역분쟁과 결부된 종교 갈등, 세계경제의 블록화, 이른바 제3세계의 파국적인 몰락, 경제적 신자유주의, 기술과학의 놀라운 발전 등 새로운 도전은 그리스도교 선교를 근본에서부터 다시 성찰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여전히 선교가 금지된 세계의 1/3 국가들에서의 선교, 옛 동유럽의 선교와 세속화된 서유럽의 재복음화가 시급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질서는 다시 가난과 가난한 사람들을 구조적으로 양산하고 빈곤의 세계화를 그리스도교 선교의 중심과제로 만들고 있다. 유전자조작과 복제기술의 진보, 통신기술의 혁명적 발전과 사이버 세계의 확대도 그리스도교 선교에 큰 변화를 강요할 것이다. 갈수록 심화되는 생태계 위기도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양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할 것이다.

이런 시대의 도전에 직면한 오늘의 개신교 세계선교의 흐름을 나는 ‘복음주의’, ‘오순절 운동’, ‘에큐메니칼 선교’ 등 세 진영으로 나누어 살펴보려고 한다.

가까워지는 듯 했으나

오늘의 복음주의의 선교 방향을 규정하는 것은 1974년 7월 스위스 로잔에서 채택된 ‘로잔 언약’이라고 하겠다. 150여 개국에서 135개 교단(공식적으로는 아니지만) 대표자들 약 4천여 명이 모인 이 대회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빠르게 성장한 모든 종류의 복음주의자들의 관심이 표명되었다. 로잔 언약은 서구 선교의 정복주의, 문화제국주의, 선교적 가부장주의의 잘못된 관행을 반성하면서 성서적 복음주의, 철저한 제자직, 사회참여, 희생적 삶, 진정한 파트너십 그리고 행동하는 믿음을 선언했다. 참가자들은 대회 후에 로잔 세계복음화 협의회(The Lausanne Committee for World Evangelization: LCWE)를 조직하였다. 그 후 1988년까지 로잔 세계복음화 협의회는 11개의 국가대회, 54개의 소규모 대회들을 지원했고 특히 종족 그룹의 복음화를 위한 25개의 네트워크를 구성했다.

로잔 언약 이후 복음주의 선교의 획을 긋는 또 다른 사건은 1989년 7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이른바 제2차 로잔대회였다. ‘주님 오실 때까지 그리스도를 전하자: 온전한 복음을 온 세계에 전할 온 교회를 부르심’(Proclaim Christ until He comes: A Call to the Whole Church to Take the Whole Gospel to the Whole World)이라는 표제 아래, 168개국에서 4,500여 명의 참가자들이 모였다. 이 대회에서 채택된 ‘마닐라 선언’에는 제3세계 대표자들(40%)의 강력한 요청이 반영되었는데, 그들은 구원의 유일한 근거인 그리스도의 사역이나 복음증거의 신뢰성 확보를 위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일치의 필요성만이 아니라, 복음주의자들의 사회적 책임, 복음과 가난한 사람들, 복음과 문화, 단순한 생활방식, 에이즈, 청소년, 여성 문제 등을 강조했다.

이로써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 선교가 서로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다. 마닐라 선언 직전(1989년 5월) 택사스의 샌안토니오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제12차 세계선교대회가 열렸는데, 주제는 ‘당신의 뜻이 이루어 지이다: 그리스도의 방법에 따른 선교’였다. 이 대회에는 100여 개 국가에서 500여명 이상이 참석했는데 그 가운데 152명의 복음주의자들도 있었다.

그 후 마닐라에서 열린 제2차 로잔대회에서 복음주의자들은 샌안토니오에서 논의된 몇몇 주제들, 예를 들면 가난한 사람들,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 복음과 문화 문제 등에 대하여 진지한 관심을 표명했다.

타종교와의 대화, 건널 수 없는 강이었나

그러나 복음주의가 에큐메니칼 선교에 대하여 지금도 비판의 시선을 보내는 것은 에큐메니칼 선교가 타종교와의 대화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성서에 따라 하느님과 구원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취급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복음화를 위한 로잔 위원회(LCWE)와 WCC를 중심으로 한 에큐메니칼 선교 사이의 골이 결정적으로 심화된 것은 1991년 캔바라에서 열린 제7차 세계교회협의회 총회에서였다. 복음주의자들은 캔바라 총회에서 ‘그리스도론이 거론되지 않았고 … 더 나아가 무모할 정도의 제안, 곧 회원교회들로 하여금 전통 종교들의 영적인 능력을 하느님 자신의 성령이 할 수 있는 표현들로 보도록 한 제안을 허락했다’고 비난했다.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 선교의 기구적 만남은 더욱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

오늘 복음주의 선교가 설정한 과제는 옛 동유럽 지역의 복음화이다. 옛 동유럽 지역은 오랫동안의 무신론의 지배로 전례 없는 영적인 공백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서유럽도 예외가 아니다. 세속화된 서유럽의 재복음화도 과대할 만큼 진지하게 고려되고 있다. 이슬람권 선교, 미전도 종족과의 이른바 ‘입양’정책 등도 더 강력하게 추진되고 있다. 복음주의자들을 고무시키는 것은 제3세계 출신 선교사들이 점차 중심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선교운동의 국제화’를 복음주의는 ‘우리 시대의 위대한 새로운 사실’로 본다.

복음주의자들은 세계 복음화를 위한 일종의 ‘마지막 대 추진’(a last big push)을 가능하게 하는 대규모의 프로젝트들(50여 개 이상의, 수백만 달러가 소용되는 대형 프로그램들)을 구상하고 있지만, 일부 복음주의자들조차 그것의 현실성에 대하여 의구심을 갖고 있다. 까닭은 아직도 세계 1/3의 나라에서는 복음전도 활동이 금지되고 있고, 이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더 막대한 양의 자금이 필요하고 이런 계획들이 상호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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