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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란 무엇인가?

기사승인 2022.07.19  00:5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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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 선교의 본질과 과제 (1)

▲ Juan Bautista Maino, 「Pentecostes」 (1612 혹은 1614) ⓒWikimediaCommons

‘선교’ 개념의 시작

‘선교’라는 개념이 최초로 사용된 것은 이그나티우스 폰 로욜라(Ignatius von Loyola)가 예수회 수사들에게 요청한 네 번째 서원에서였는데, 그 서원은 선교(votum missionis)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또 1544-1545년 사이에 ‘constitutiones circa missionis’를 기술했다. 예수회 소속 수사인 아코스타(Acosta)는 그의 책 ‘De procuranda Indorum salute’(1588)에서 선교를 ‘하느님의 말씀을 위해 도시에서 도시에로 돌아다니는 여행’으로 이해하였다.

오늘날 이해되는 전문용어로서의 ‘선교’ 개념은 17세기 초, 카르메니터(Karmeliter) 파의 글 가운데서 나타난다. 토마스 아 예수(Thomas a Jesu)는 1622년 로마 교황청에 ‘선교성성’(Missionskongregation)을 설립하였는데, 후에는 ‘신앙선전단’(Propaganda Fide)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 후에야 그 이름이 바뀌어 ‘민족복음화를 위한 성성’(Kongregation fuer die Evangelisierung der Voelker)으로 개명되었다.

개신교의 선교 개념의 발전

개신교에서는 17세기 이후부터 선교개념과 이론에 대한 논의가 훨씬 활발해졌다. 필립 니콜라이(Philipp Nicolai), 요한 하인리히 우르시누스(Johann Heinrich Ursimus)와 곳트후리드 아놀드(Gottfried Arnold) 등은 ‘그리스도의 나라’의 확장으로서 선교를 이해하였다. 경건주의자인 필립 야콥 슈페너(Philipp Jakob Spener, 1635-1705)는 하느님의 나라의 확대와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에 선교목적이 있다고 확신하면서 ‘하느님은 이방인들이 그에게 와서 은혜를 찾기까지 기다리시는 분이 아니다. 하느님은 이방인들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 이방인을 찾아 나선다’고 말하였다.

기스베르투스 보에티우스(Gisbertus Voetius, 1589-1676)는 선교목적을 이방인의 회개에서 교회의 이식, 마침내 하느님의 영광이라는 단계적 발전으로 이해하였다. 니콜라우스 루드비히 폰 친첸도르프(Nicolaus Ludwig von Zinzendorf, 1700-1760)는 ‘이방인 선교사들에게 보내는 지침서’를 썼다. 영국의 침례교 신학자이자 현대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윌리암 케리(William Carey, 1761-1834)는 ‘이방인의 회개’와 ‘이방인을 가르치는 직업’을 선교로 이해하였다. 

현대선교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독일의 구스타프 바르넥(Gustav Warneck, 1834-1919)은 선교개념을 체계적으로 정립하고, 신학적으로 정리하여, 선교신학을 다른 신학적 원리들과 함께 위상을 정립하였다. 로트쉬름바하(Rothschirmbach)의 목회자이자 은퇴 후 할레 대학에서 선교신학 교수로 재직한 그는 그리스도교화와 유럽화를 동일시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선교를 ‘비그리스도교인들 가운데 교회를 세우고 조직하는 그리스도교의 모든 활동’으로 이해했다.

선교의 목적

그러나 선교의 주체는 여전히 사명을 받은 개별적인 그리스도인이다. 선교의 목적은 비그리스도인의 회개와 세례에 있었다. 그러나 선교는 민족 전체의 회심을 지향하고 일종의 민족교회 수립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 바르넥의 입장이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선교가 한 민족의 중산층을 겨냥하고 전개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까닭은 중산층이 한 민족단위 사회 안에서 건강한 핵심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상의 선교에 대한 개념을 유형론적으로 정리한다면, 신앙의 확대로서의 선교, 하느님 나라의 확대로서의 선교, 회심으로서의 선교, 교회설립으로서의 선교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선교 이해는 지금까지도 보수와 진보,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을 막론하고 기독교 선교의 본질을 부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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