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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수피즘의 체계화와 교단화

기사승인 2022.06.28  00:5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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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 신비주의 (3)

▲ ‘아부 하미드 알-가잘리’ ⓒWikimediaCommons

수피주의의 체계화

할라즈의 죽음 이후, 수세기 동안 수피주의를 체계화하는 작업이 발전했는데, 이는 수피들이 자신들의 전통이 정통적 견해에서 벗어나지 않았음을 밝히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당시 (신플라톤주의, 그리고 이어 그리스도교, 중앙아시아와 인도의 금욕술 등) 외래 사조의 영향이 증가했기 때문에 시의적절한 진전이었다.

수피주의의 체계화는 당시 한 명문 신학대학에서 이름을 날리다가 갑자기 신비주의로 돌아선 페르시아 출신 학자 ‘아부 하미드 알-가잘리’(1111년 사망)가 저술한 “이흐야 울룸 앗-딘”(종교학문의 부흥)에 이르러 절정에 이르렀다. 이 책은 하나님이 보기에 바람직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신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그를 위해서는 이슬람(절대복종)과 이만(신앙) 외에도 이흐산(하나님을 대면하듯이 그 분께 봉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매순간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항상 자신 앞에 계시다는 느낌은 극히 비종교적인 행위에 몰두하고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가져야 하며, 그래서 ‘이흐야’의 처음 3개 장은 부부관계, 기도, 상거래, 여행 등을 행함에 있어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행위인지에 대한 지침을 적고 있다.

4번째 장에 이르러서야 가난, 인내, 하나님께 대한 신뢰, 갈망, 사랑, 하나님에 대한 지식 등 좀 더 명백히 종교적이고 신비적인 주제가 다루어지고 있다. 이렇게 구성된 이 책은 마지막 장인 제40장에 이르러 죽음을 맞이해서 구도자가 취해야 하는 자세에 대해서 적고 있다. 이것이 이 책을 꿰뚫고 있는 목적이며, 이 책은 그 논리적 설득력과 서술의 평이함으로 말미암아 신비주의를 적정 수준에서 인정하는 온건한 이슬람 주류의 교과서로 인정받게 되었다.(1)

수피주의의 교단화 혹은 형제단화

‘아부 하미드 알-가잘리’가 세상을 떠난 후 얼마 있지 않아 수피주의의 세계에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는데, ‘타리카’, 곧 수피교단 혹은 형제단의 결집이 그것이다. 초창기의 신비가들은 대개 소규모로 스승의 주위에 모였고, 스승-아랍어로는 ‘쉐이크’, 페르시아어로는 ‘피르’-혹은 ‘무르쉬드’(안내자)는 흔히 평범한 수공업자나 학자로서 자신의 생업을 갖고 있었다.

수피주의의 교단화 혹은 형제단화에 괄목할만한 변화를 가져온 인물은 ‘압둘 카디르 알-질라니’(1166년 사망)로 알려져 있다. 한발리 법학파에 속한 설교가로서 바그다드에서 활동한 압둘 카디르는 수피 교단을 세우겠다는 생각을 결코 한 적이 없는 듯하나, 그의 제자들은 스스로 형제단을 조직했고, 그와 때를 같이해서 다른 수피 스승들도 잘 조직된 대규모의 추종자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런 형제단들이 발흥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공식적인 이슬람 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던 교리주의와 율법주의로부터 거의 얻을 것이 없었던 독실한 무슬림들이 수피주의에서 그들이 갈구하던 감성적인 종교성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자는 스승의 손을 잡음으로써 예언자에게까지 연결되는 입문과 계승의 연결고리(실실라)에 편입되었고, 이렇게 입문의 과정을 거친 제자(무리드)에게 스승(피르)은 거의 절대적인 존재로 군림하게 되었다. 스승 앞에서 제자는, 한 옛말에 따르면, 마치 장의사 손에 맡겨진 시신과 같아야 했다. 쉐이크는 무리드의 정신적 성장을 주의 깊게 관찰했고, 그가 홀로 수행해야 하는 40일 간의 은둔생활을 주선해 주었으며, 또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제자들에게 적합한 ‘디크르’를 정해주었다.

‘디크르’는 일정한 양식의 말을 정기적으로 수천 번씩 반복하는 일종의 화두라고 할 수 있다. 디크르는 알라라는 단어로 구성될 수도 있고, 신앙고백이나 주에 대한 찬미 혹은 주에게 용서를 구하는 형식을 취할 수도 있으며, 99개의 가장 아름다운 하나님의 명칭 중 하나일 수도 있다. 디크르는 큰 소리로 낭송될 수도 있고 침묵 속에서 음미될 수도 있는데 형제단 사이에서 차츰 핵심적인 영적 기술로 자리 잡게 되었다.

황홀경에 이를 수 있는 중요한 수단으로 디크르를 집회에서 소리 높여 영창하는 교단도 많이 있다. 수세기에 걸쳐 정교하게 다듬어진 호흡법과 함께 디크르는 무리드가 행해야 할 핵심적 의무이고, 스승의 의무는 제자에게 그의 영적 수준에 적합한 디크르를 정해주는 것인데, 이는 신성한 명칭을 수천 번씩 반복하는 경우 심리적으로, 또는 심한 경우 생리적으로도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2)

수많은 교단이 압둘 카디르 질라니를 기원으로 하는 카디리야 교단을 모형으로 하여 설립되었으나, 오늘날까지도 가장 많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것은 역시 카디리야 단원들이다.

‘아흐마드 알-리파이’(1183년 사망)를 창시자로 삼고 있는 리파이야 교단은 큰 소리로 외쳐대는 디크르가 거칠고 무시무시하기까지 한 소리를 내기 때문에 보통 ‘괴성을 지르는 더비쉬들’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들은 또한 자해행위를 한다거나, 자신의 눈알을 빼낸다거나, 유리조각이나 살아있는 뱀을 먹는 등의 묘기를 보여주어 기괴한 기적의 주인공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3)

이후 수피주의는 창시자를 추종하는 집단들에 의해 여러 지역에서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인도와 벵갈 지방에 이르기까지 융성했던 수흐라와르디야 교단은 정치에도 능동적으로 참여함으로써 15세기 중앙아시아에서는 엄청난 정치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나일강 인접 지역에서는 아흐마드 알-바다위(1278년 사망) 교단, 샤딜리야 교단 등이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아나톨리아 지방에서는 ‘잘라루딘 루미’(1273년 사망)로부터 영감을 받았으며, 그의 아들이 조직한 메블레비야 교단이 성장했다. 메블레비야는 회전무 더비쉬라고 서방세계에 알려졌는데, 이 교단의 의례화한 회전무는 무슬림 세계에서 유일한 음악적 디크르이다. 오스만 제국 내에서 메블레비야 교단이 주로 궁정을 중심으로 사교계나 예술가의 호응을 얻었다면, 아나톨리아 지방의 또다른 형제단인 벡타쉬야는 쉬아적 요소를 상당히 수용하면서 오스만의 정예군의 종교적 대들보 역할을 했다.(4)

미주

(1) 안네마리 쉼멜, 『이슬람의 이해』, 김영경 역 (경북 왜관: 분도출판사 1999), 160.

(2) 안네마리 쉼멜, 『이슬람의 이해』, 163.

(3) 안네마리 쉼멜, 『이슬람의 이해』, 164.

(4) 안네마리 쉼멜, 『이슬람의 이해』, 167.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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