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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간도에서의 공산주의 전파

기사승인 2022.06.25  04:3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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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간도, 동만특위의 반민생단 투쟁 (2)

▲ 이동휘 선생 ⓒ공훈전자사료관

캐나다 선교부의 활발한 복음전도 활동으로 북간도에 1920년도까지 120여개의 교회가 세워졌다. 그리고 캐나다 선교부와 교회와 크리스천 지도자들에 의하여 세워진 100여개의 사립학교에서(1) 민족교육이 실시되면서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여 용정 3·13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만세 시위 후에 40여 개의 독립운동단체를 결성되어 무장독립운동을 추동하였고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가 그 열매로 결실되었다. 1920년까지만 해도 북간도는 망국지사들과 캐나다교회를 중심으로 한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이 활동의 장이었다.

그러나 ❮경신참변❯과 ❮자유시참변❯을 기점으로 북간도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한편에서는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이 서서히 공산주의자로 전향하기 시작하였고 한편에서는 보수화되면서 무장투쟁 독립운동에의 전면에서 물러났다. 그리하여 북간도에서 민족주의 계열의 영향력이 약화되기 시작하였고 1926년 4월에 조선공산당만주총국이 세워지면서 북간도는 공산주의 세력의 온상으로 변하였으며 공산주의자들의 활동기지가 되었다. 이런 거대한 변화는 1918년에 5월에 시작되었다.
 
조선인 거주지역에서의 문서전파 및 조직 확장

1918년 5월에 이동휘가 하바롭스크에서 최초의 공산당 단체인 한인사회당을 조직하였다. 한인사회당은 “사회주의 국가를 건립한다”, “일체 계급을 소멸한다”, “토지와 일체 생산자료들을 공동소유로 한다”(2) 등의 정강을 제정하고 간행물을 발행하여 러시아의 10월 혁명을 널리 알렸다. 1919년 9월에 이르쿠츠크에서 원호(3) 중심의 한인들이 전로한인공산당을 조직하고 ❮홍기❯라는 잡지를 만들어서 10월 혁명을 선전하였다. 또한 ❮경신참변❯시기에 많은 청년들이 러시아의 시베리아지역으로 이동하였는데 그 청년들이 공산주의 사상을 접하고 러시아의 10월 혁명을 경험하고 조기공산주의자가 되어 중국으로 돌아와서 공산주의 사상을 전파하였다.(4)

1921년 이동휘, 여운형, 이한영 등은 상해에 유신인쇄소를 세우고 ❮공산당선언❯을 비롯한 수많은 공산주의 서적을 번역, 출판하였으며 그 책들과 잡지는 여러 경로를 통하여 북간도 여러 지역에 배포되었다. 당시 일본간도총영사관의 조사에 의하면 1923년에서 1926년 사이에 상해, 천진, 일본 등지에서 북간도로 전달된 공산주의 서적은(5) 755권, 간행물은 15,672건에 달하였다. 그중 중요한 간행물에는 ❮자유보❯, ❮노동신보❯, ❮동아공산신문❯, ❮공농세계❯, ❮적성❯, ❮적기❯ 등이 있다.

이와 동시에 상해와 북경 등지에서 발행되고 있는 ❮신청년❯, ❮매주평론❯, ❮광명❯등 진보적인 잡지들이 한족(漢族)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조선인 학생들에 의하여 조선인들에게 소개되었다. 관준언을 비롯한 연변의 진보인사들은 신보존서류사를 만들어 진보적인 서적과 간행물들을 구입하여 청년학생들에게 제공하였다. 이런 모든 서적과 간행물을 접하면서 북간도의 독립운동가들과 청년들은 공산주의 혁명을 통해서만 민족의 독립과 해방이 가능하다고 믿기 시작하였고 민족주의자들의 전향도 잇따랐으며 공산주의 조직과 단체들이 설립되기 시작하였다.

1921년 5월에 이동휘와 박진순은 상해에서 한인사회당을 고려공산당으로 개칭하면서 조선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만주지역의 공산화를 위하여 11월에 김하구를 돈화현에 파견하여 대한국민회의 구춘선, 마진 등과 공동으로 고려공산당 중앙총감부를 설립하였으며 각 지역에 도본부, 각 현에 군회 또는 구역회를 설치하였다. 1922년 통계에 의하면 북간도의 돈화도본부 산하의 회원 수는 1만여 명이고 그중 정식당원은 1,771명, 후보당원은 829명이었다. 용정의 고려공산청년회 회원이 46명이며 길림도본부의 정식당원은 153명, 후보당원은 65명이며 요하도본부의 정식당원은 275명, 후보당원이 87명이며 공산청년회원이 20명이었다.

이동휘는 1922년 최계립(최봉설)을 비롯한 30여명의 청년공산주의자들을 영안에 파견하여 영안현 황기툰에서 적기단을 조직하고 ❮벽력❯이라는 잡지를 발간케 하였으며 공산주의 사상 전파와 함께 항일무장투쟁을 겸하게 하였다. 동년 8월에 고려공산당은 장기영과 주건을 연길현 옹성라자에 파견하여 고려공산당 만주지방위원회를 설립하였으며 지방조직을 확대시켰다.

같은 시기에 전로한인공산당은 김철훈 등을 돈화와 연변일대에 파견하여 지방조직을 설립하게 했다. 윤복송과 정치운 등은 간도공산당을 설립하였다. 1921년에 러시아의 한족공산당도 영고탑에 총리부를 설치하고 남공선과 서상용을 책임자로 임명하였으며 돈화 등지에 지방조직과 연락소를 설치하였다.(6)

용정 사립중학교에서의 전파

1921년부터 1924년까지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용정의 여러 학원, 중학교들에서 공산주의를 선전하였다. 1922년 이주화, 이인구 등 조선공산주의자들이 대성중학교와 동흥중학교에서 공산주의를 공부하는 광복회 등 과외학습소그룹을 만들어 공산주의를 연구하였다. 1923년에 서울파 공산주의자 김사국, 방한민 등이 대성중학교에 동양학원을 만들고 산하에 공산주의 선전부와 특별부를 설치하고 공산주의를 선전하였다.

1923년 4월에 코민테른집행부에서 소집한 극동대회에 참가하였던 임호 등이 연변에 와서 영신중학교와 동흥중학교의 진보적인 교원과 학생들을 모아서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독서회는 공산주의를 선전하였으며 봉건주의를 반대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3년 초에 박윤서는 동흥중학교 진보적인 학생 김광세, 이순, 임민호 등과 함께 비밀단체인 고려공산청년회를 만들었으며 9월에는 광복회와 공동으로 사회과학연구회외 침목회 등 공산주의 연구단체를 설립하고 과외시간을 이용하여 공산주의를 선전하였다.

20년대 초 북간도 용정의 대성, 동흥을 비롯하여 기독교 학교인 은진, 영신, 명신, 명동 등의 중학교는 공산주의를 학습하고 선전하는 온상이 되었다.(7)

청년단체들의 출현과 선전활동과 노동운동

북간도에서 공산주의의 신속한 전파는 청년과 학생들을 크게 고무시켜 혁명의 열정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당시 용정을 중심으로 연변 각지에서 결성된 “청년회”, “친목회”, “학우회”, “수양회” 등 공산주의 청년단체들이 1926년에는 무려 100여개에 이르렀다.

1926년 1월에 위의 청년단체 대표들이 용정의 천주교 교회당에 모여 연합대회를 열고 이인구를 회장으로 하는 동만청년총연맹을 만들었다. 2월에는 120여 명의 청년운동지도자들이 평우동맹을 조직하여 간도여자청년회, 간도소년회, 노동회 등 공산주의 연구그룹들과 군중혁명단체들을 통일적으로 지도하였다.

그 후 동만청년총연맹과 평우동맹은 선전대와 문예대를 조직하여 농촌과 공장, 가두에 나가 공산주의 사상을 선전하였다. 그들은 농촌에서 식자반, 야학교 등을 만들고 강연회와 문화체육 활동으로 문화지식을 가르치며 러시아의 10월 혁명을 적극적으로 선전하였다.

이 시기의 북간도청년학생들은 “맑스, 레닌을 추모하여”, “레닌 탄신가”, “현대사회모순의 노래”, “가난한 자의 노래”, “5월 행진곡”, “부녀 해방가” 등을 망라한 많은 혁명가요를 창작하였다. 이런 가요들은 20년대 연변 농촌에서 널리 애창되어 공산주의와 혁명사상을 대중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만들었다.(8)

청년학생들에 의하여 공산주의가 공장과 농촌에 전파되면서 노동자 단체들도 차례로 설립되었다. 1923년 김봉익, 오일근 등 북풍파 성원들이 용정에서 노동운동을 조직하면서 매수공인조합, 용정양무직공호조회, 건설자동맹을 세움과 동시에 이병석을 회장으로 하는 노동회와 노동학원을 창립하였다. 이외에도 연길에 연길운수조합, 연길계량기조합 등 노동자단체를 설립하였다. 1924년 용정의 노동자들은 용정건설자동맹의 지휘 하에 노동자들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하여 파업을 단행하였다.

미주

(1) 강영덕, 남일성 외 5인, 『중국조선족교육사』 (동북조선민족교육출판사, 1991), 42, 44, 45.

(2) 양소전, 차철구 외 3인, 『중국조선족혁명투쟁사』 (연변인민출판사, 2009), 254.

(3) 원호는 러시아의 국적을 가진 고려인들을 뜻한다.

(4) 김영만, 리송영 외 11인 저, 『연변조선족사 상권』 (연변인민출판사, 2011), 164.

(5) 공산주의 서적은 러시아 10월 혁명이 노농계급을 위한 진정한 해방의 길임을 주장하는 내용, 자본주의의 허구성과 부패를 폭로하며 사회주의 혁명을 통하여 무산계급과 조선의 해방이 온다는 내용, 노동인민을 착취하는 자본주의 사회제도의 부패와 압박과 착취에 대한 고발의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6) 김영만, 리송영 외 11인 저, 『연변조선족사 상권』, 165.

(7) 양소전, 차철구 외 3인, 『중국조선족혁명투쟁사』, 257.

(8) 양소전, 차철구 외 3인, 『중국조선족혁명투쟁사』, 258.

이이소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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