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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아름다움과 ‘나’로부터의 자유, 이슬람 사랑의 신비주의의 발전

기사승인 2022.06.21  00:5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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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람 신비주의 (2)

▲ 알 할라즈(Al-Hallaj)

8세기 중엽 이슬람에서 순수한 사랑의 신비주의를 알리는 기운이 독실한 신앙인들 사이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인물은 바스라의 라비아(Rabiah of Basra, 717-801)라는 여성이었다. 라비아는 여자 노예였다. 그녀는 힘든 노예생활 속에서도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였고, 이에 감복한 주인이 라비아를 노예 신분에서 해방시켜 주었다고 한다.

신의 아름다움을 사모하다

라비아는 자유의 몸이 된 후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기도생활에 헌신하는 신비주의자가 되었다. 어느 날 그녀는 한 손에는 물동이를, 다른 손에는 횃불을 들고 바스라의 거리에 나타났다. 무슨 일이냐는 질문에 그녀는 말했다.

“사람들이 지옥에 대한 두려움이나 천국에 대한 희망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 분의 영원한 아름다움을 사모하여 기도하도록 지옥에는 물을 쏟아 붓고 천국에는 불을 질러 그 두 개의 장막이 사라지도록 하려 하오.”(1)

라비아는 또 다음과 같은 유명한 기도문을 남겼다:

“오, 신이시여, 만일 제가 지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당신을 섬긴다면 차라리 저를 지옥 불에 태워 없애소서. 만일 제가 낙원에 대한 욕심 때문에 당신을 섬긴다면 저를 낙원에서 i아내소서. 그러나 만일 제가 오직 당신의 영광을 위해 당신을 섬긴다면 당신의 영원한 아름다움의 은총을 제게서 거두지 마소서.”(2)

‘나’로부터의 자유를 위해

라비아 사후, 1세기 반이 경과할 즈음, 사랑의 이론은 더욱 정교해지고 확대되었다. 그녀의 고향 이라크에서는 수많은 신비주의자가 사랑의 체험을 포함하여 여타 신비 체험의 상태와 그 단계를 정의하려 노력했다. 냉철하게 자신의 영혼(무하사바)을 탐색했다는 의미에서 이름 붙여진 바그다드의 심리학자 무하시비(857년 사망), 그와 동시대 인물로서 이집트에서 활동하면서 자연을 하나님의 놀라운 활동을 증거 하는 것으로 인식한 둔-눈(859년 사망), 자신이 체험한 황홀경을 천상에로의 여행이라는 상징으로 표현한 페르시아 출신의 바예지드 비스타미(Bistami, 874년 사망)(미주 3), ‘가난한 사람의 공작새’라고 불린 바그다드의 주나이드(Al Junayd, 910년 사망)(4), 초인적인 금욕주의로 명성이 높았던 주나이드의 제자인 할라즈(Al-Hallaj) 등이 사랑의 신비주의자에 포함된다.

그러나 할라즈가 압바스 정부의 눈에 벗어난 것은 그의 신비주의적 가르침보다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다. 그는 물탄 지방의 카르마트파 사람들과 접촉했으며 역모와도 관련이 있다는 혐의를 받았다. 그는 무슬림들에게 종교를 피상적으로가 아니라 내면적으로 이해하라고 역설하면서, 하나님과 자기 자신 사이에 있는 베일을 거두어 주기를 청했으며, 사람들에게 자기를 죽이라고 청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들이 행한 경건한 행위에 대해 보상을 받고, 자신은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스스로를 드러내시는 하나님과 자기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촉구했다(5):

“나를 죽여 다오, 나의 귀한 벗들이여,
죽음, 그 속에 진정 나의 삶이 있나니.“

할라즈는 922년 3월 26일 잔혹하게 처형당했다. 그는 이라크 지역을 떠돌며 이슬람 제국의 칼리프 통치체제에 반대하고 새로운 사회질서의 건설을 역설한 죄로 당시 집권세력에 붙잡혀 예수처럼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 당시 사람들이 그에게 가장 경악한 것은, 그가 무아적인 신비 체험을 하면서 “내가 진리다”라고 외쳤기 때문이었다.(미주 6) 이슬람은 ‘알-하크’(Al-Haqq, 진리)가 신의 이름의 하나로, 인간이 스스로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우상숭배의 죄를 저지르는 것이었고, 따라서 자신이 곧 진리, 신이라고 주장한 알-할라즈의 신인합일 신비체험의 표현은 당시 무슬림에게 용납될 수 없었던 것이다.(7)

그가 남긴 짧은 시편들은 감각적인 사랑이 아니라 신비적 사랑을 노래한 아랍시 중에서 가장 섬세한 것들이다. 후대의 수피들에게 할라즈의 죽음은 사랑을 위해 선택한 죽음의 전형이 되었으며, 그는 이슬람 세계 동부 지역의 시문학계에 굳게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할라즈의 죽음은 ‘주의주의적(主意主義的) 신비주의’라고 할 수 있는 제1기 고전적 수피주의의 시기를 마감하는 사건으로 볼 수 있다.(8)

할라즈가 노래한 시 한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당신과 나 사이에 머무적거리는 ‘나’라는
그것이 나를 괴롭히오니
아, 당신의 은총으로 없이하여 주소서.
우리 사이에 놓인 ‘나’라는 그것을
나는 곧 내가 사랑하는 그분
내가 사랑하는 그분은 곧 나이니
우리는 한 몸 안에 머무는 두 개의 영인 것을
당신이 나를 보면 당신은 그 분을 뵙는 것,
당신이 그 분을 뵈면 당신은 우리 둘을 다 보는 것을”(9)

 

미주

(1) 안네마리 쉼멜, 『이슬람의 이해』, 김영경 역 (경북 왜관: 분도출판사 1999), 152.

(2) 카렌 암스트롱, 『신의 역사 II』, 배국원·유지황 역 (서울: 동연출판사, 1999), 417; 김승혜, “세계 종교전통 속의 수도생활”, 김승혜 외,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수도생활』 (서울: 바오로딸, 1998), 41.

(3) 비스타미는 라비아처럼 신에게 연인으로서 접근하려고 하였다.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모든 소유와 소망을 포기하는 것처럼, 그도 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신을 기쁘게 하는 신에 대한 사랑을 완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내면의 성찰을 중시함으로써 인격적 신 개념을 극복했다. 카렌 암스트롱, 『신의 역사 II』, 418 참조.

(4) 주나이드는 신적 존재를 발견하기 위해 자아의 미혹에서 벗어난 사람은 보다 위대한 자아 실현과 자아 통제의 단계에 도달함으로써, 완전히 성숙한 인간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그러므로 수피들의 궁극적 목적은 창조될 당시 신이 의도했던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태와 존재의 근원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라고 보았다. 카렌 암스트롱, 『신의 역사 II』, 419-420 참조.

(5) 안네마리 쉼멜, 『이슬람의 이해』, 157.

(6) 카렌 암스트롱, 『신의 역사 II』, 421.

(7) “나는 내가 사랑하는 그이며, 내가 사랑하는 그는 나입니다. 우리는 한 몸 속에 거하는 두 개의 영혼이기에, 당신이 나를 바라볼 때 당신은 다름 아닌 그를 바라보는 것이며, 당신이 그를 바라볼 때 당신은 하나된 우리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카렌 암스트롱, 『신의 역사 II』, 422 참조.

(8) 안네마리 쉼멜, 『이슬람의 이해』, 158.

(9) 김승혜, “세계종교전통 속의 수도생활”, 42.

채수일(전 한신대 총장) sooilchai@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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