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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하나님 나라의 경계

기사승인 2022.06.04  20:5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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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기 목사와 함께 하는 <성서와 위로>

▲ 일상 속에 하나님 나라와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살아야 하지만 그 경계는 분명해야 한다. ⓒGetty Image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이나 마시는 것이 아니요 성령 안에 있는 (공)의와 평화와 기쁨이다. 이것으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에게 받아들여지고 사람에게 인정받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화의 일과 서로에게 덕 세우는 일을 추구한다.(로마서 14,18-19)

바울의 로마서는 12장에서 실천에 대해 다룹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고 이를 실천하려고 애쓰는 것이 자신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물로 드리는 것이고, 이것을 영적 예배라고 명명합니다. 그에게 또 우리에게 이러한 실천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바울이 11장까지 중요하게 다루어온 문제는 유대 기독교인들과 헬라/이방 기독교인들의 대립이었고 이를 극복하고 상호 인정과 존중에 이르기 위한 토대를 믿음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맺어진다는 것, 다시 말해 누구든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에서 찾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그 논거를 마련하기 위해 시도한 모든 것들은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유대 기독교인과 헬라/이방 기독교인의 동등성과 평등성을 확립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이 ‘이론적’ 목표가 실현되었다고 이것이 최종적인 것일 수 없음은 자명합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분별해낸 또는 깨달은 하나님의 뜻에 투신해야 한다는 ‘실천적’ 목표를 제시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본문은 그 뜻이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되어 있음을 시사합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그의 나라를 세우시려고 합니다. 그의 나라에 사는 삶의 모습이 이 땅에서 그를 믿는 사람들에 의해 드러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먹고 마시는 것으로 그 나라를 오해했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이란 말은 그것들로 대표되는 모든 행위들을 다 포괄하는 표현으로 자기 이익이나 자기 만족 또는 자기 평안만 꾀하는 행위들을 가리킵니다. 이것들은 갈등과 파벌을 낳고 독점과 지배를 향하고 배제와 혐오를 부추기고 불법과 불의를 따릅니다. 그러고도 이에 하나님의 나라나 하나님의 뜻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바울이 ‘성령 안에’라는 말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자기(들)만을 위한’일 것 같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자기의 굴레’로부터 해방시키고 우리의 속을 넓히고 겨자씨 비유에서 처럼 새들을 품고 사람들을 품을 수 있게 합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자랄 것입니다.

이 때문에 바울은 평화의 일과 서로에게 덕 세우는 일을 추구합니다. 이렇게 할 때 하나님과 사람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바울은 말하지 않지만 우리는 모래 위에 세운 집이라는 말로 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후변화와 전쟁 위기가 커져 가는 세상에서 평화의 사람이 되어가는 오늘이기를. 보다 큰 사람으로 이끌어가시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의 나라를 품고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람으로 사는 이날이기를.

김상기 목사(백합교회)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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