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남은 자, 세월호의 남은 자들!(이사야 6장 8-13)

기사승인 2022.05.21  16:41:43

공유
default_news_ad1

-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를 2022년 첫 세월호 예배에서

▲ 인양된 세월호가 녹슬어 가고 있다. ⓒ이정배
지난 19일 시청 앞에서 윤석열 정권 탄생 이후 첫 ‘세월호 예배’가 있었습니다. 새 정권 하에서 세월호 진실이 어찌될 지 유족들의 걱정이 더 커졌습니다. 서로 힘을 얻고자 나눈 말씀입니다. 첨부한 사진의 세월호는 20일 목포에서 찍은 세월호의 지금 모습이구요. 이전보다 녹이 더 많이 끼였습니다. - 저자 주

지난 8년간 세월호 어머니들 증언을 어느 설교보다 좋게 들었고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 분 한분의 증언이 마음을 후벼 파는 멋진 설교였습니다. 그렇기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오롯이 이분들 말씀 듣고자 예배현장에 있고자 했습니다. 저뿐 아니겠지만 윤석열 정권의 탄생 이후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되는 일이지만 눈과 귀를 닫고 살고 싶었습니다. 어느 지인 목사님은 지난 대선 이후 35일간 세상과 단절한 채 온종일 한 권의 책만 번역했다 합니다. 설교를 부탁받았을 때 제 마음도 이러했습니다. 이번 예배에서도 말하기보다 어머니들 오롯한 말씀을 듣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예배가 어쩌면 이곳서의 마지막 예배가 될 수 있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5월 10일 이후 달라진 세상을 여실히 마주했던 것이지요. 지난 8년의 세월도 모자라 향후 5년 동안 그들이 겪을 고통과 절망, 좌절이 얼마나 클지 가늠할 수조차 없습니다. 윤 정권 하에서 드리는 오늘 첫 예배에서 어떤 말씀을 나눠야 할지 많이 생각했습니다.

처음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매해 5월, 우리들 가슴에 붉은 카네이션 꽃 대신 세월호의 노란 리본만이 달려 있을 것이라 선언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세월호로 인해 새로운 삶을 경험했습니다. 세상도 달리 보였고 국가가 무엇인지 묻게 되었으며 교회가 고작 이런 것이었는지 절망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국가의 총체적 부실을 여실히 경험했고 진실을 은폐하는 이들 권력에 온 몸으로 저항했습니다. 가난을 상실한 대형교회들의 막 말로 상처를 입었으나 그런 유족들 ‘곁’이 되어준 ‘작은’교회들로 힘을 얻고 함께 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우리는 스스로 세월호가 낳은 자식들이라 여겼습니다. 수많은 아이들을 잃었지만 우리가 그 때문에 다시 태어났다 고백했던 것이지요. 세월호가 아니었더라면 경험할 수 없을 세상을 알게 된 까닭입니다. 그럴수록 세월호 진실을 파헤치는 일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습니다. 8년 이란 긴 세월이 지났음에도 이런 열정을 품은 벗들이 곳곳에서 지금껏 활동 중입니다. 이런 열정과 공감 탓에 그간 우리들 삶은 고통만이 아니라 행복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뀐 지금 우리들 희망에 어깃장 놓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니 걱정입니다.

세월호 7시간을 해명치 못한 박근혜가 방면되었고 그 시간을 조작했던 자가 국정원장이 되었으며 오세훈이 재선할 경우 우리들 예배 처소도 사라질 운명에 처했습니다. 약속된 안산 기억공간의 계획도 어찌 변경될지 안심되지 않습니다. 5년 내내 희망고문만 하다 미안하단 말없이 고향 땅으로 내려간 문 대통령도 원망스럽습니다. 마지막 이별의 순간, 최소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가대했었습니다. 전 국정원장 박지원의 말도 가관이었습니다. 조사할 것 다했다는 대못 박는 말을 퇴임 시 남겼던 것이지요.

세월호 진실을 찾고자 8년을 거리서 보낸 유족 및 우리들 현실이 이렇듯 절망스럽게 되었습니다. 미래가 잘 보이질 않습니다. 향후 5년간 어떤 힘으로 지혜롭게 현실과 맞서야 할지 답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유족들이 마주하기에는 너무나도 가혹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며칠간 성서를 읽고 또 읽다가 오늘의 본문을 찾았습니다. 무섭고, 두렵고 떨리는 말씀이라 피하고 싶었으나 짧은 지면에 생각을 담아 봤습니다.

본문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두 개의 핵심단어(Keyword)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소서”란 말과 “그 땅에서 그루터기가 될 것”이란 말씀입니다. 짧은 지면에 이사야서 본문을 주석할 수 없어 유감이나 핵심은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 죽게 될 처지를 한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를 앞선 본문에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악한 것을 선하다 하고, 선한 것을 악하다 하는 자들, 어둠을 빛이라 하고 빛을 어둠이라 하며, 쓴 것을 달다 하고 단 것을 쓰다(사 5:20).” 말하는 위정자들 탓이란 것입니다. 온통 거짓이 난무하여 나라 자체가 재앙에 빠질 것을 백성들이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가짜뉴스가 난무하고 법 권력을 갖고 바른 소리하는 이들을 내치며 진리를 어둡게 만드는 오늘의 현실이 오늘 본문과 중첩되며 향후 5년간 우리가 맞닥뜨릴 세상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자신을 그들, 위정자들에게 ‘보내 달라’고 하늘에 청원합니다. 이스라엘의 재앙을 막기 위해 거짓과 거짓을 말하는 자들 앞에 나서 보겠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하늘의 소리는 그의 기대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들 마음을 둔한 상태로, 지금껏 하던 그대로 내비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더욱 자신들 귀를 막고 눈을 감도록 하여 듣지도 보지도 못하도록 내깔려 두라 했습니다. 위기를 전혀 알아챌 수 없도록, 깨닫지 못하도록, 둔한 상태로 방치하라 말씀한 것입니다. 하느님은 오히려 그들이 섣불리 고침을 받고 깨닫게 될 것을 걱정, 염려하셨습니다.

의외의 답을 들은 이사야는 거듭 묻습니다. 언제까지 그리 둘 작정이십니까? 라고. 말이지요. 하늘의 답변이 무섭게 들려왔습니다. “성읍들이 황폐해 질 때까지, 사람이 없어 빈집이 될 때까지, 자연이 황무지가 될 때까지 … 이곳 땅이 온통 버려질 때까지” 그리 할 것이라 말씀합니다. 하늘은 진실을 거짓으로 호도하고 거짓을 진실로 둔갑시킨 위정자들과 그들에 동조했던 백성들에게 고통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이런 위정자들의 다스림(정치행위) 자체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설령 그들 탓에 더 많은 백성들이 고통 할지라도 참고 견뎌내시겠다 합니다. 새로운 세상을 위해 하느님도 인내하겠다는 것이지요.

저는 오늘 본문 속에서 윤 정권 하에서 우리들 사는 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당신들 백성조차 벌하시는 하느님의 모진 인내를 배우면서 말입니다. 우리들 힘으로 이들 거짓을 밝힐 수 없습니다. 법까지 독점한 이들의 힘을 이길 능력이 우리에게 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저항하며 그들과 각을 세우겠지만 섣부른 해결은 결코 답이 될 수 없습니다.

보십시오. 그들은 5.18추모식에 대거 참석했고 ‘님을 위한 행진곡’을 따라 불렀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호남표심 얻기 위한 정치적 행위였을 뿐입니다. 아직도 미완 과제로 남은 40년 전의 이 사건을 해결할 의지가 말뿐입니다. 진실을 덮으려는 거듭된 거짓이 이번 5.18 망월동에서도 재현되었습니다.

그렇기에 감히 말씀드립니다. 오늘 찾아 읽은 본문말씀처럼 눈감고 귀 닫은 채, 법을 멋대로 운용하는 그들 정치를 지켜보십시다. 하느님의 인내를 믿으면서 말입니다. 이 백성들 또한 위정자를 잘못 선택한 대가가 얼마나 혹독한지를 처절하게 느껴야 합니다. 향후 우리는 민영화를 통한 경제, 정치, 환경, 의료, 교육, 노동현실의 몰락을 아프게 지켜보십시다. “부패한 정권일수록 민영화를 주창한다.”는 말을 ‘촘스키’라는 현인이 말했다지요. 자신들 평화헌법을 부정하며 한반도에 전운을 감돌게 하려는 일본의 야욕도 5년 이내에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현 정권의 각료라는 사람들 탓에 가치관이 무너지는 현실이 두렵습니다. 소유 여부에 따라 교육환경 다를 수 있음을 당연시 여기는 자들이 이 시대의 정치가들인 탓입니다. 가난했던 세월호 유족들은 지금보다 더 많이 조롱당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늘은 ‘세월호의 자녀’들을 남은 자로 세웠고 택했습니다. 세월호가 낳은 자녀들이 아직도 곳곳에 살아있습니다. 고통 하는 피조물들이 하느님 아들들 출현을 기다리듯(롬 8:19) 세상이 우리를 바라며 급기야 인내했던 하느님이 세월호 자녀들을 불러 낼 것입니다.

나무가 통째로 잘렸더라도 그루터기, 밑 둥마저 죽는 법은 없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하늘은 새로운 세상, 미래를 위해 씨앗을 남겨 두었기 때문입니다. 碩果不食(석과불식)이란 말이 바로 그것이겠지요. 이 그루터기에서, 남겨진 씨앗에서 새 싹이 돋아나 이전과는 다른 생명을 잉태할 것입니다.

이는 세월호 진실이 밝혀질 때 가능합니다. 이것이 묻히면 우리 앞에 놓인 5년이 50년으로 연장될 수도 있습니다. 거짓이 거짓을 낳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이 죽음의 길이지만 말이지요. 그렇기에 앞으로 5년간 새로운 것들을 더 많이 배우고 공부하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지난한 과정을 다짐하십시다.

세월호 진실 밝히는 문제로 시작했으나 우리는 나라를 근본에서부터 바로 세우는 과제를 걸머진 존재가 되었습니다. 예전보다 더 자주 힘껏 모입시다. 함께 책을 읽고 공부하고 토론하며 새 세상을 준비해야겠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위해 남겨 진 씨앗들입니다. 죽은 듯 보이지만 새 생명을 잉태할 힘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말라 죽지 않도록 온도와 습도를 맞춰가며 우리들 생명력을 키워나갑시다. 그루터기 신앙이 우리들의 삶을 지탱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말씀을 전합니다.

이정배(감신대 은퇴교수, 현장아카데미 소장) ljbae2016@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