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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피복 공장’ ‘미싱 타는 여자들’과 함께 교회가 있었다

기사승인 2022.05.03  02:4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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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미싱 타는 여자들>에 대한 짧은 단상

▲ 영화 ‘미싱 타는 여자들’은 1970년대 여성 노동자들의 해방 서사를 담았다. ⓒ영화사 진진

점심시간이 지나갈 즈음 동생 하나로부터 전화가 왔다.

“형, ‘미싱 타는 여자들’ 상영회 하는데 같이 가볼래요?”

그 제안에 약속 장소를 정하고는 후다닥 일을 마치고 저녁도 먹을 겸 영화 상영 시간보다 일찍 만났다. 이런저런 수다를 떨면서 ‘오늘 영화 상영회는 어떻게 추진된 것인지’, ‘누가 마련한 자리인지’ 등의 영화와는 하등 상관없는 이야기들만 나눴다. 영화의 구체적인 내용은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영화에 관한 이야기들은 조금 들어 알고 있었기에 ‘영화 보고 감상평 하나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정보를 수집했던 것이다.

청계천 피복 공장에 미싱 타는 여자들의 노동 해방 서사

그렇게 상영 시간이 다 되어, 계단식 형태의 극장이야 늘 그렇지만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에게는 좌석에 대한 별 선택권이 없기에, 상영관 제일 꼭대기 뒷 통로에 휠체어를 대고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그런 기다림의 짧은 찰나에 ‘오늘 일진 사납겠군.’ 하는 생각이 몰려들었다. 내 성향상 감정이입이 과도해지는 영화나 드라마는 관람하지 않는 성격인데, 감정이입이 과도해지면 어린애처럼 펑펑 울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 감정이입이 과도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주인공과 내 큰 누님이 동년배였기 때문이다. 사실 나이 문제가 아니라 내 큰 누님도 바로 저들과 같이 ‘미싱 타는 여자들’ 중 하나였다. 영화가 흘러가는 내내 큰 누님이 생각나 펑펑 울었다. 그리고는 영화 상영회에 대해 주워들었던 정보들은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다 사라졌다. 그냥 영화 내내 펑펑 울다가 나왔다.

그 당시에는, 국민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영화에 등장하는 대사처럼 ‘미상 타는 여자들’이 ‘청계천 피복 공장’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던 “여자가 배워서 뭐해” 혹은 “집안이 어려우니 공장에서 일해야 해’라는 두 가지 이유가 내 큰 누님에게도 그대로였다. 그렇게 국민학교를 졸업했을 무렵인 14살 전후의 ‘미싱 시다’들을 눈뜨게 했던 ‘노동 교실’과 ‘노동조합’을 지켜내려는 목숨을 건 어린 여공들의 이야기가 109분 동안 이어진다. 특히 노동교실을 사수하려는 과정에서 “제2의 전태일은 여공이었다.”는 이들의 증언에 귀가 번쩍했다.

전경(전투경찰)이 노동교실을 침탈하기 위해 밀어닥치는 급박한 상황에서 스스로 목숨을 던지려했던 어린 여공의 이야기에서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요동침을 느꼈다. 그렇게 스스로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언니이자 동생이자 선배를 붙잡고 “제발 그러면 안 된다.”고 외쳤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기까지 했다. 그러한 결기에도 불구하고 ‘1977년 9월9일 청계천 노동교실 사수 투쟁’은 전경에 의해 진압되고 미싱 타는 여자들은 모두 체포되어 수감되고 만다.

그간 남성 중심의 노동운동 서사에 가려진 여성 노동자들, “가장 힘이 없고 탄압 받았던 시다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했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영화 곳곳에 등장했던 ‘청계피복노동조합’의 자료들과 개인 자료들이 비춰질 때면 마치 보물을 발견하는 듯했다. 수감되어 있는 한 언니에게 한 동생이 쓴 “면회를 가지 못해 미안하다”는 편지 구절을 당사자가 직접 읽을 때는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연신 눈물을 닦기에 바빴다.

한편 이런 생각도 머리를 스쳤다. ‘저들이 죽지 않아서 저들의 목숨을 건 투쟁이 드러나지 못했던 것일까’ 아님 ‘여자라서 가려진 것일까’ 하는 약간은 삐딱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럼에도 이렇게나마 여성 노동 해방 서사가 화면에 펼쳐지는 것이 고마웠다.

자녀들에게 누가 될 것 같아 출연을 망설였던 주인공들과 영화를 제작한 ‘이혁래’·‘김정영’ 감독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었다. 직접 주인공들과 감독들과 대화하고픈 생각도 들었고. 가능할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주 거기 계셔서’ ‘물가에 심어진 나무같이 흔들리지 않게’

▲ 영화의 주요 등장 인물 세 명이 추억을 되새기며 바닷가를 찾는 장면에서 찬송가 “뜻이 무릎 굻는”을 함께 부른다. ⓒ영화사 진진

그리고 이 영화를 관람하면서 몇 번을 놀랐지만, 정말 나를 깜짝 놀라게 한 두 장면이 있었다. 영화 중반부 영화의 중심인물인 ‘이숙희’·‘신순애’·‘임미경’ 세 여성이 옛날을 추억하며 바닷가를 다시 찾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리곤 숙희 씨가 그 옛날 함께 불렀던 노래를 같이 하자고 제안한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노래, 아니 찬송가를 함께 부른다.

“자, 하나 둘 셋”

뜻 없이 무릎 꿇는 그 고통 아니요
운명에 맡겨 사는 그 생활 아니라
해 아래 압박 있는 곳 주 거기 계셔서
두 팔로 막아주시어 정의가 사나니

그리고 영화의 제일 마지막에 이르러 ‘미상 타는 여자들’이 노동했던 청계천 피복 공장을 찾는 장면에서 또 다른 복음성가가 배경음악으로 장엄하게 흐른다.

▲ 영화의 제일 마지막에는 그 당시 함께 불렀던 복음성가 “흔들리지 않게”를 출연자들이 합창한다. ⓒ영화사 진진

흔들리지 않게 우리 단결해
흔들리지 않게 우리 단결해
물가에 심어진 나무 같이 흔들리지 않게

흔들리지 흔들리지 않게
흔들리지 흔들리지 않게
물가에 심어진 나무 같이 흔들리지 않게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물가에 심어진 나무같이 흔들리지 않게

흔들리지 흔들리지 않게
흔들리지 흔들리지 않게
물가에 심어진 나무 같이 흔들리지 않게

이 노래를 복음성가라 칭했지만, 원곡은 Joan Baez(조안 바에즈) 여사의 “We Shall Not Be Moved”이었기에 민중가요로 보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 당시 외국 노래나 민중가요는 교회를 통해 유입되고 번안되어 유포된 예가 수도 없이 많기에 이 노래의 출발지는 교회였을 것이고 복음성가였을 것이다. 특히 가사 중에 등장하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같이 흔들리지 않게”는 시편 1편 3절을 인용한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이 노래가 복음성가인지 민중가요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미싱 타는 여자들’이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한 것일지 모르겠다. 모진 압박과 서러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말자’는 결심과 각오가 중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영화가 끝나갈 즈음 그 당시 함께 했던 ‘미싱 타는 여자들’이 등장해 합창한 ‘흔들리지 않게’가 이들의 목소리로 다시 배경음악이 되어 흐른다. 그리곤 옛날 ‘시다 시절’ 찍은 사진 속 자신들에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고마워”, “수고했어”, “열심히 잘 살았어, 너를 칭찬하고 싶어”, “잘 견뎌내줘서 고맙다”, “잘 살았어, 지금도 잘 살고 있어.”

▲ 영화의 마지막에 자신들이 일했던 청계천 피복 공장을 찾은 출연자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의 사진을 보며 스스로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사 진진

에큐메니칼 사회운동은 여전히 현장에 있다

그렇게 노래를 들으며 이내 또 다시 눈물을 흘리며 생각에 잠겼다.

‘청계천 피복 공장 그곳에, 미싱 타는 여자들과 함께 교회가 있었구나’

언제부턴가 에큐메니칼 사회운동 단체들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토론회나 집담회가 열리면 꼭 등장하는 수사가 있다. “현장에 답이 있다.” 백번 천 번 맞는 말이다. 에큐메니칼 사회운동 단체들과 활동가들은 여전히 현장에 있다. 입에 단내가 나도록 현장에서 열심히 활동한다. 곁에서 지켜보는 것이 늘 미안할 정도이다.

저런 장면에서 교회를 떠올리는 어쩔 수 없는 교회 언저리를 서성거리는 사람이고 에큐메니칼 진영의 한 사람이다. 저 장면에서 우리의 역사가 자랑스러워 가슴이 벅차기도 하다. 그리곤 이내 현장은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미상 타는 여자들’의 노동 해방 서사이기도 하지만, 우리들에게는 또 다른 희망으로 다가온다. 우리의 자리를 다시 돌아보고 우리가 선 곳이 틀리지 않았음을, 그것을 이어가고 있음을 확인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에큐메니칼 사회운동 단체들과 활동가들에게 큰 힘이 되는 영화이리라 생각한다.

영화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영화를 권했던 동생의 한 마디가 가슴에 내내 남는다.

“그들과 우리 모두를 치유하는 영화였어요.”

▲ 청계천 피복 공장 ‘미싱 타는 여자들’과 함께 교회가 있었다. ⓒ영화사 진진

이정훈 typology@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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