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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기 영지주의자들은 기독교인들이었다

기사승인 2022.01.27  15:5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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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세기 영지주의와 성서해석 ⑵

▲ 나그함마디 문서들 ⓒGetty Image

2세기의 영지주의자들을 기독교인으로 보는 시각은 지난 세기에 발굴된 ‘나그함마디’ 문헌에 의해서도 보충된다. 나그함마디 문헌은 2~3세기의 것으로 대부분이 기독교적인 저작임이 판명되었다.(1) 문헌목록을 살펴보면 플라톤의 『공화국』과 같은 저작은 거의 드물고 압도적으로 기독교적인 제목들을 볼 수 있다.

나그함마디 문헌에서는 『요한의 비사』(The Apocryphon of John)이 3개의 복사본을 가지고 있어 가장 인기 있는 문헌이었다고 추측하게 한다. 2~3세기는 앞에서 언급한 ‘바실리데스’와 ‘발렌티누스’ 및 그의 <학파>가 활동한 시기였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할 때 2세기 영지주의자들이 <분명한> 기독교인이었다는 판단은 설득력을 갖는다.

그러므로 “영지주의에서 기독교를 빼도 그것은 여전히 영지주의이다”(Quispel)(2)는 말이나 ‘기독교적 영지주의’는 ‘원 영지주의’의 <여러 갈래 중의 하나>이며 그것이 <기독교적 영지주의>라고 불리는 까닭은 “그 소재를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가져오기 때문”(3)이라는 말은 2세기 영지주의자들에 대한 정확한 묘사로 인정할 수 없다. 오히려 그들은 <영지주의자로서 기독교인이었고 기독교인으로서 영지주의자들>이었다. 2세기 영지주의자들은 영지주의라는 하나의 초점을 가진 원이 아니라 영지주의와 기독교라는 두 초점을 가진 타원과 같다.

시몬 마구스

1세기 유대교적 영지주의자들은 2세기의 기독교적 영지주의자들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다. 사도행전 8:9-25에 출현하는 ‘시몬 마구스’(Simon Magus)는 교부들에 의해서 일관되게 영지주의의 창시자로 불려왔다. 시몬 마구스는 구약성서와 모세전승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

미국 예일대학교의 교회사 교수였던 ‘야로슬라프 펠리칸’(J. Pelikan)은 시몬 마구스의 신관에서 성적인 묘사를 볼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인격적 지혜에 관한 유대교의 사색으로부터 차용”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여러 가지 면에서 유대교의 영향력이 뚜렷한 마술사 시몬은 기독교와는 밀접한 연관성이 없는 유대교적 “이단”의 한 형태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시몬 마구스의 제자였던 ‘메난더(Menander)’도 마찬가지로 유대적 경향이 강했다.

‘케린투스’와 ‘사투르닐루스’

기독교 복음을 영지주의적으로 <재해석>하려한 최초의 작업은 ‘케린투스(Cerinthus)’에게서 이루어졌다. 케린투스에게도 유대교적 성향은 두드러진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필로(philo)에게서 배웠고 모세의 율법을 가르쳤다.

그는 신약의 문헌 중에서는 수정된 『마태복음서』만을 인정하였다. 유세비우스(Eusebius)는 사도 요한이 케린투스에 대해서 적대적이었다고 전하고 있다. 특히 케린투스가 “사도의 이름으로 된 『계시록』을 사용하고 요한의 이름을 써 넣었다”(4)는 말은 유세비우스가 『계시록』의 저자를 케린투스로 생각했음을 지시하는 것이다.

‘메난더’의 제자였던 ‘사투르닐루스(Saturnilus)’는 랍비 전승을 영지주의적 계보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그에게 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케린투스에게서 시작된 최고의 신/창조주의 이분법을 그리스도의 하나님/유대교의 하나님으로 적용시켰다는 점이다.

이상과 같은 1세기에 활약하였던 영지주의자들은 모두 유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시몬 마구스와 메난더가 거의 비기독교적 <마술가>였다면 케린투스와 사투르닐루스는 유대교 영지주의와 기독교 영지주의 사이에 있었던 과도기적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케린투스가 유대적 특징이 강했던 반면, 사투르닐루스는 반유대주의적 성향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몬 마구스에서 사투르닐루스까지의 영지주의자들은 유대교 혹은 유대적 기독교의 배경에 서 있었다.

‘바실리데스’와 ‘발렌티누스’

시몬 마구스에서 사투르닐루스까지의 영지주의자들은 <사도적 전승>을 주장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2세기 중엽의 ‘바실리데스’와 ‘발렌티누스’에게 이르게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바실리데스(Basilides)는 자신이 <사도> 맛디아(Mathias)에게서 배웠으며 예수는 맛디아에게 계시했다고 주장했다.(5)

또한 그 자신의 가르침을 베드로와 마태의 비밀전승에로까지 소급시킨다. 그는 글라우키아스라는 베드로의 통역자에게 복음의 전승을 이어받았다는 것이다.(6) 발렌티누스는 자신이 예수 → 바울 → 드다 → 발렌티누스로 이어지는 비밀 전승의 계보에 속해있다고 주장했다.(7)

발렌티누스 학파는 『요한복음서』를 사용했다. 발렌티누스 학파는 지속적으로 『요한복음서』를 주석한 것으로 보아서 이들이 요한에 대한 전승관계를 주장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요한문헌의 영향력 하에 있었다는 사실은 충분히 알 수 있다.

2세기 영지주의와 사도전승

2세기 영지주의자들이 자신들을 베드로와 바울의 후계자로 자처했다는 사실은 인상적이다. 이런 점에서 2세기의 기독교적 영지주의자들은 기원전의 이교적 영지주의자들이나 1세기까지 존재했었던 유대교적, 유대-기독교적 영지주의와는 구별되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영지주의자들에게 <사도전승>이 개인적으로 전해지는 일종의 <비밀전승>,곧 <문서전승>(written tradition)이라기보다는 <구전전승>(oral tradition)이었다는 사실은 지나칠 수 없는 대목이다.

“이 전통(영지주의 전통)을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성서로부터 진리가 추출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영지주의자들은 진리는 기록된 문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음성(viva voce)에 의해 전달되었다고 확언하기 때문이다”(Gärtner).(8)

여러 가지 면에서 전승은 단순한 전달 이상의 것이었다.

나그함마디 문헌에서 발굴된 저작들의 제목을 보아도 많은 작품들이 사도들의 이름으로 된 것들이다. 나그함마디 문헌의 저자로 거론되는 사도들은 사도 바울, 야고보, 요한, 도마, 빌립, 베드로의 이름으로 된 <복음서>와 <비밀>(Apocryphon)의 책들이 존재한다. 『베드로와 열두 사도의 행전』의 존재를 고려할 때 영지주의자들은 12사도의 권위를 수용한 것 같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사도는 바로 요한이었다. 『요한의 비사』는 나그함마디 문헌 중에서 가장 많은 복사본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영지주의자들 사이에서 그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케린투스’와 ‘바실리데스’의 성서

케린투스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다른 복음서를 거절하고 수정된 『마태복음서』만을 인정하였다. 그는 또한 아마도 아직 정경으로 자리 잡지 못한 『요한 계시록』을 소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바실리데스가 사용한 정경의 목록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그렇지만 단편적인 기록들은 남아 있다. 그는 <하나의 복음서>를 저작했다고 전해지며 다른 복음서들에 대해서 24권의 주석서를 기록했다고 한다.(9)

바실리데스는 다른 곳에서 바울서신을 인용했다. 그는 로마서 8:19과 히브리서 11:1을 인용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그가 『마태복음서』와 바울서신, 그리고 『히브리서』 등의 정경복음서를 알았고 그것을 경전으로 수용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충분히 타당하다. 바실리데스 학파의 일원이었던 마르쿠스(Marcus)는 외경도 영감된 책으로 받아들였다.(10)

발렌티누스 학파의 성서

발렌티누스 학파가 선호했던 복음서는 『요한복음서』와 『진리의 복음서』였다. 이 두 복음서는 서로 유사한 측면이 있다. 발렌티누스가 『진리의 복음서』의 저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진리의 복음서』에서는 영지주의의 견지에서 요한복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읽을 수 있다.(11)

발렌티누스는 요한복음 서론과 골로새서, 에베소서를 알고 있었다.(12) 발렌티누스 학파에서는 헤라클레온이 『요한복음서』 주석을 저술했을 뿐 아니라 역시 발렌티누스 학파에 속하는 ‘프톨레미(Ptolemy)’도 『요한복음서』의 서언을 발렌티누스 체계로 해석하려고 노력했으며 요한을 진전된 발렌티누스주의자로 보았다.(13)

미주

(미주 1) H. Küng, 『그리스도교 - 본질과 역사』, 이종한 역(왜관: 분도출판사, 2002), 193; Susanne Heine, 『초기 기독교 세계의 여성들』(서울: 이화여대출판부, 1990), 179; 소기천, 『예수말씀의 전승궤도』(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0), 125-145에 낙함마디 문헌에 대한 자세한 개관이 있다.
(미주 2) J. Pelikan, 『고대교회 교리사』, 박종숙 역(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5), 118.
(미주 3) H. Jonas, 『생명의 원리 - 철학적 생물학을 위한 접근』(서울: 아카넷, 2001), 438.
(미주 4) Eusebius Pamphilus,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엄성옥 역(서울: 은성, 1995), 169.
(미주 5) J. L. González, 『기독교사상사 (Ⅰ) - 고대편』, 이형기, 차종순 역(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88), 167.
(미주 6) P. Schaff, 『니케아 이전의 기독교』, 이길상 역(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4), 444.
(미주 7) 『기독교 대백과 사전』(서울: 기독교문사, 1980), 722.
(미주 8) Pelikan, op. cit., 131.
(미주 9) 오우성, “이레니우스, 터툴리안, 오리겐의 성경관과 성경주석에 관한 비교 연구”, 『계명신학』 제 5집 (1990): 51.
(미주 10) Ibid.
(미주 11) I. H. Marshal 편집, 『신약해석학』, 이승호·박영호 공역 (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4), 29.
(미주 12) Schaff, op. cit., 446.
(미주 13) Ibid.

김재현(계명대) verticalkj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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