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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주의 연구, 사라진 기독교 전통을 찾는 발걸음

기사승인 2022.01.20  15:3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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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세기 영지주의와 성서해석 ⑴

▲ 한스 요나스(사진 왼쪽)와 마르틴 하이데거(사진 오른쪽)

이 글에서는 원시 기독교에서 초대 교회로 넘어가면서 누락된 하나의 전통을 고찰하고자 한다. 이들은 영지주의자들인데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은 영지주의자들을 단순히 역사상 존재했던 이단으로만 알고 있다. 영지주의의 성서해석 전통을 추적해서 그들 역시 원시 기독교에 있었던 다양한 전승궤도 중 하나였다는 점을 논의하고자 한다.

하르낙과 릿츠만

영지주의에 대한 현대적인 논의의 출발점은 하르낙(A. von Harnack)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영지주의를 <기독교의 급진적 헬라화>(akte Hellenisierung des Christentums)라고 평가했다.(1) 하르낙에 따르면 2세기 기독교 전체가 헬라화 되었다. 고대 교회와 같이 기독교와 헬라주의가 서로 느리게 융화된 곳에서는 삼위일체와 양성론과 같은 <교리>가 생기고, 기독교와 헬라주의가 흡사 빠른 화학반응으로 하나 된 곳에서는 영지주의와 같은 기독교적 <종교철학>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릿츠만(H. Lietzmann)은 영지주의가 기독교의 <급진적 동방회귀화>(akute Rückorientaliesierung)(2)라고 주장하였으나 폭넓은 인정을 받지는 못하였다. 종교사학파의 거장 부셋(W. Bousset)은 영지주의를 종교사적인 견지에서 기독교 이전의 <이란과 바빌론 종교의 충돌>로 말미암아 발생한 것으로 보았다. 부셋의 주장의 중요성은 영지주의를 신화론적 특징을 가진 기독교 이전의 현상을 취급한 것에 있다.(3)

바우어와 요나스

1934년은 영지주의 해석사에 있어서 두가지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해이다. 우선 발터 바우어가 『고대 기독교에서의 정통과 이단』이라는 제목의 문제작을 내어 놓았다. 이 연구는 서구에서 이단과 정통에 대한 기존의 논의를 뒤엎는 결정적인 사건이었다.(4) 또한 이 해에 한스 요나스(H. Jonas)는 『영지주의와 후기고대의 정신』(Gnosis und spätantiker Geist)에서 영지주의를 실존철학적 의미에서 재해석했다. 요나스는 하이데거(M. Heidegger)와 불트만(R. Bultmann)의 영향력 하에 있을 때 이 책을 저술했다. 그는 그의 책에서 “영지주의를 실존주의로 읽을 뿐 아니라 실존주의를 영지주의적으로 읽는” 작업을 시도했다.(5) 요나스에 의해서 영지주의는 세계(κοσμος)와 자아의 문제를 실존주의적으로 접근한, “특정한 생존태도와 이 태도에서 온 존재해석”을 시도한 현대 실존주의의 먼 조상으로 묘사된다.(6)

위탱과 페이절스

세르쥬 위탱(S. Hutin)에게도 영지주의자들의 태도는 매우 <근대적>이다. 그는 영지주의를 해설하면서 <혼합>이라는 부정적인 용어를 버리고 <합류>라는 긍정적인 용어를 사용했다. 그에게 영지주의는 동양적 열망과 서양적 열망을 <종합>하는 탁월한 성격의 종교운동이다. 그래서 그는 해탈을 열망하는 <형이상학적 동양>과 구원을 열망하는 <종교적 서양>의 위대한 만남의 장을 영지주의로 보았던 것이다.(7)

일레인 페이절스(E. Pagels)를 따라 최근의 영지주의 연구를 개관하면 다음과 같다. ① 영지주의와 헬라 철학과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그룹 - 요나스(Jonas), 녹(A. D. Nock), 그리고 레이튼(Bentley Layton), ② 영지주의 문서에 대한 문헌적, 양식적으로 접근하는 그룹 - 로빈슨(J. M. Robinson), 쾨스터(H. Koester), 타디유(M. Tardieu), ③ 영지주의와 유대교의 관련성을 연구하는 그룹 - 퀴스펠(Quispel), 피어슨(Pearson), ④ 보다 폭넓게 조로아스터교, 바빌론의 종교들, 헬라 기원의 종교들, 동양의 종교들, 불교와의 관계를 연구하는 그룹 - 그란트(R. M. Grant), 야마우치(E. Yamauchi), 윌슨(R. Wilson), 아라이(S. Arai), 콘즈(Edward Conze).(8)

영지주의와 성서해석학

영지주의 연구가 국제적으로 이렇게 활발함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소개되는 예는 거의 드물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국내에 번역된 자료들을 살펴보아도 영지주의를 종교적, 철학적, 신학적, 교리적으로 다룬 경우는 있어도 성서해석학적인 측면에서 의 접근을 시도한 예는 거의 전무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짧게나마 이글을 통하여 영지주의자들의 성서해석에 대해서 고찰해보고자 한다.

영지주의 정의의 어려움

영지주의는 마치 <만화경>처럼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그래서 전문학자들이라도 하나의 요소를 중점적으로 부각시켜 “그것이 영지주의”라고 성급히 정의한다면 비판을 면키 어렵다. 위에 페이절스의 분류를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영지주의가 기인하고 있는 전통은 헬라신화와 철학, 유대교, 조로아스터교, 바빌론의 종교들, 동양의 종교들, 불교등의 다양한 전통과 만나게 되며 이 중에 하나를 선택하기 어렵다.

원-영지주의와 기독교 영지주의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 의해서 하나의 합일점에 도달하게 된 사항이 있다. 그것은 영지주의를 <원-영지주의>(proto-Gnosticism)와 <기독교 영지주의>로 구분하는 것이다. 원-영지주의는 기독교 이전의 하나의 정신적 흐름 혹은 운동이었다. 하지만 저스틴이나 이레니우스가 대결했던 사람들은 기독교인으로서 영지주의자들이었던 기독교 영지주의자들이었다. 이 두 영지주의 사이의 구분은 명칭은 다르더라도 학자들 사이에서 용인되고 있다.

필자는 이하의 논의를 진행함에 있어서 영지주의에 대한 이 시대적 이분법을 수용하면서도 보다 세분화하여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1) 원-영지주의
(2) 1세기 말엽까지 혹은 2세기 초엽까지 존재했던 유대교적 혹은 유대 기독교적 영지주의. 이들은 기독교적 영향에 대해서 무관하지만은 않았지만 유대교적 성향이 더 강했다.
(3) 2세기 중엽에 크게 영향력을 끼친 바실리데스(Basilides)와 발렌티누스(Valentinus)로 대표되는 기독교 영지주의.
(4) 바실리데스나 발렌티누스와는 차별성을 가지는 마르시온(Marcion)의 교회적 영지주의. 제목에서 말하는 2세기 영지주의자들은 바실리데스와 발렌티누스 그리고 그의 제자들인 기독교 영지주의를 의미한다.

 

미주

(미주 1) 이규호, “영지주의 구원론에 관한 연구: 우주론을 중심으로,” (석사학위논문, 목원대학교 신학대학원, 2000), 4.
(미주 2) Ibid.
(미주 3) H. Conzelmann, A. Lindemann, 『신약성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 박두환 역(서울: 한국신학연구소, 2000), 307.
(미주 4) 소기천, 『예수말씀 복음서 Q 개론』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4), 151. 바우어의 연구는 초기 기독교를 지역별 공동체로 나누어 각각의 공동체가 지니고 있는 정통과 이단에 관한 신학적 제도를 분석한 것이었는데 1945년의 낙 함마디 문서라는 고고학적 증거에 의해서 신빙성이 더해지고 있다고 한다.
(미주 5) H. Jonas, 『생명의 원리 - 철학적 생물학을 위한 접근』(서울: 아카넷, 2001), 441.
(미주 6) R. Bultmann, 『기독교 초대교회 형성사 - 서양고대종교사상사』, 허혁 역(서울: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93), 165.
(미주 7) S. Hutin, 『신비의 지식, 그노시즘』(서울: 문학동네, 1996), 10-18 참조.
(미주 8) 이상훈, “영지주의와 불교 그 상관성에 관한 비교종교학적 논의”, 『종교연구』17(1999), 194. n1 참조.

김재현(계명대) verticalkj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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