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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와 동정녀 탄생

기사승인 2021.12.21  15:3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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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수일 목사와 함께 하는 주제로 읽는 성경 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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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둘러싼 이야기들 가운데, 가장 논쟁적인 사건은 이른바 ‘동정녀 탄생’입니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자가 어떻게 임신하여 아기를 낳을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은 물론, 과학적 사실에도 부합하지 않는 기적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전능하신 하나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믿음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동정녀인 마리아만이 아니라, 혼인했으나 임신할 수 없었던 여인들도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아기를 낳은 이야기가 있는데요, 사무엘의 어머니(삼상 1,19-20) 한나와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눅 1,5-25) 엘리사벳이 그런 경우이지요.

또 어떤 사람들은 자연세계에는 ‘양성생식’만이 아니라, ‘단성생식’, 또는 ‘처녀생식’도 있는 자연현상을 근거로 동정녀 탄생을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단성생식’은 몇몇 종에서 일어나는데, 일부 식물이나 물벼룩, 진딧물, 벌, 개미, 전갈, 새우 등과 같은 무척추동물, 혹은 몇몇 파충류, 물고기, 드물게는 새나 상어 등의 척추동물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은 납득하기 어렵고, 궁색한 정당화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마태와 누가 복음서 저자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 2 >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간, 영웅적이고 신적인 인간의 탄생에 얽힌 설화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단군, 주몽 신화, 알에서 나와 신라를 건국했다는 혁거세거서간 이야기들도 탄생의 신비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이런 인물들이 보통 사람들과는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이해됩니다.

석가모니 탄생도 신비에 싸여 있습니다. 샤캬 공화국의 왕비였던 석가모니의 어머니는 6개의 이빨을 가진 흰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임신했고, 석가모니는 어머니의 오른쪽 겨드랑이 밑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태어나자마자 석가모니는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었는데, 그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올랐고, ‘우주 안에서 오직 나만이 높다. 삼계가 모두 괴로움이니, 이제 내가 그들을 편안하게 하리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군사적, 정치적 영웅들의 탄생설화보다 종교 창시자들의 탄생설화는 훨씬 더 신비에 쌓여 있습니다. 이런 신비한 탄생 설화의 배경에는 인간의 성(性)을 부정한 것으로 보고, 신적 인간의 신성을 강조하기 위한 시각이 반영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태어나시던 당시의 종교적 배경에 그런 관념이 깔려 있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유대교 성결법이나, 금욕주의, 영지주의 등은 인간의 성, 특히 여성에 대한 배제와 차별을 정당하게 여겼지요.

그러나 성을 죄악시하고, 성관계를 통해 형성되고 태어나는 인간을 부정한 존재로 규정하는 것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여라’(창 1,28)고 강복하신 하나님의 창조질서에도 어긋나는 주장입니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그리스도교가 고백하는 성육신 신앙과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몸의 부활 신앙과 충돌된다는 것이지요.

< 3 >

그렇다면 마리아의 동정녀 탄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우리는 먼저 마리아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네 가지 교리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마리아에 대한 신학적 논쟁은 오랫동안 복잡한 과정을 거쳐 전개되었는데요, 마침내 네 가지 교리로 정리되었습니다.

첫째,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Theotokos)라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를 낳으셨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이시니, 따라서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이시다는 주장이지요.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부르는 것이 승인된 것은 433년 안티오키아의 주교 요한에 의해서였습니다. 그후 451년의 칼케돈 공의회에서 그 결정을 재확인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는 “동정 마리아께서는 천사의 예고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과 몸에 받아들이시어 ‘생명’을 세상에 낳아 주셨으므로 천주의 성모로 또 구세주의 참어머니로 인정받으시고 공경을 받으신다.”(교회헌장, 53항)고 규정했습니다.

두 번째 교리는 동정녀(Beata Virgine)라는 것입니다. 동정 잉태는 이성적으로나 과학적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신비를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마리아의 동정 잉태는 이사야서(7,14)의 예언이 성취된 사건이며, 하나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눅 1,37)는 증거이자, 동시에 예수님의 메시아성을 증명하는 징표로 이해되었습니다. 성경은 동정 잉태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거나, 성을 속된 것으로 여기는데 관심하지 않습니다. ‘동정’은 전적인 헌신과 봉헌을 의미합니다. 마리아의 동정 잉태는 하나님에게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인간의 지고한 사랑과 순종의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마리아에 대한 세 번째 교리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분’(Immacolata Conception)이라는 주장입니다. 마리아는 잉태는 물론 태어날 때부터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총의 특전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죄에 물들지 않았기에, 성령의 은혜로 하나님의 아들을 받아들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에서는 마리아의 원죄 없음을 확인하였고, 비오 9세 교황은 회칙 ‘형언할 수 없으신 하나님’(Ineffabilis Deus)에서 1854년 12월 8일에 ‘천주의 성모 동정녀 마리아의 무염시태’를 교의로 선포했습니다.

마리아에 대한 네 번째 교리는 ‘하늘에 오르신 분’(Assumptio)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능동적으로 승천하셨다면,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수동적으로 하늘에 불려 올려졌다는 것이지요. ‘성모승천대축일’(8월 15일)도 있고, ‘성모승천기념교회’라고 이름 붙은 성당들이 많이 있는 것도 이 교리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제260대 교황 비오 12세(재위 1939-1958)는 회칙, ‘지극히 자애로우신 하나님’(Munificentissimus Deus, 1950년 11월 1일)에서 ‘성모 승천’을 교의로 선포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복되신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 그리고 성좌의 고유한 권위에 따라, 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이신, 하나님의 어머니, 마리아께서 지상의 생애를 마치신 다음, 영혼과 육신이 함께 천상의 영광으로 들어올림을 받으셨다는 교의를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대로 공언하고 선언하며 분명히 정의하는 바이다.”

마리아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4가지 교리를 종합하면, 성모 마리아는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친, 모든 신앙인의 어머니’, ‘원죄없는 잉태로 구원사에 동참한 인간’, ‘하나님께 순명한 신앙의 모범’이자, ‘승천’을 통해 구원의 희망을 전한 신앙인이라는 것입니다.

▲ Johann Christian Schr&#246;der, 「The Annunciation」 (1690) ⓒWikipedia

< 4 >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성모 마리아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네 가지 교리는 개신교 신도들에게는 매우 낯설고, 특별히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교리는 더욱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개신교와의 신학적 대화를 해 온 가톨릭 교의학자 심상태 교수(수원 가톨릭대학교)는 마리아 숭배 또는 공경의 타당성을 ‘하나님의 어머니’로서, 온 인류와 세계를 위한 구원사적 기능을 수행한 데서 찾습니다: ‘마리아는 그리스도 성육신 사건에 어머니로 참여했고, 하나님의 구원 사업에 자의적으로 적극 협력했으며, 자유로운 신앙과 순명(順命)으로 인류 구원에 협력했다. 따라서 교회가 만물의 창조주인 하나님께 바치는 공경인 흠숭지례(欽崇之禮)보다 낮으나 일반 성인들에게 바치는 공경지례(恭敬之禮)보다 한층 높은 상경지례(上敬之禮)로 마리아를 각별히 공경함이 지당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일부 개신교인들이 가톨릭교회가 마리아를 숭배하기 때문에 이단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가톨릭교회를 완전히 오해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 5 >

그렇다면 교리가 아니라, 신약성경 자체가 증언하는 마리아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요?

예수님 탄생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복음서는 마태와 누가입니다. 마태에 의하면 마리아는 스스로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 오직 수동적으로만 등장합니다. 그런데 마태와 달리, 누가복음은 요셉이 아니라 마리아를 크리스마스 이야기의 주역으로 전면에 등장시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오히려 요셉이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마리아의 그늘 뒤편에 서 있을 뿐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수태 고지를 요셉이 아니라, 그의 약혼한 처녀 마리아에게 합니다. 태어날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라는 말도 요셉에게가 아니라, 마리아에게 합니다. 누가에는 마리아가 천사의 말을 순종하여, ‘보십시오, 나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눅 1,38)고 말합니다. 임신을 못하는 나이 많은 엘리사벳에게 수태고지는 축복이었지만, 아직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 마리아에게 수태고지는 위험한 저주였습니다. 처녀가 남편의 아기가 아닌 다른 아기를 임신했다는 것은 당시 유대 법에 따르면 투석형을 당해야 할 죄였습니다. 마리아는 동정 잉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지만, 죽음을 무릎 쓰고 다만 순종한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마리아의 동정잉태는 과학적 문제가 아니라, 생사가 걸린 문제였습니다. 마리아는 죽음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 놀라운 신비에 순종함으로써, 영원한 성모, 거룩한 하나님의 어머니로 고백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자녀들 때문에 얻는 기쁨과 자녀들 때문에 겪는 고통의 전형임을 보여줍니다. 첫 아들을 얻은 기쁨도 잠시, 마리아는 이집트로 피난을 가야 했고, 자기 아기 때문에 두 살짜리로부터 그 아래의 사내아이들이 모두 헤롯에 의해 살해당한 것을 들어야했습니다(마 2,16). 한 편에는 아들을 얻고 기뻐하는 마리아, 그 반대편에는 자식을 잃고 위로받기를 거부하며 통곡하는 라헬이 있습니다(마 2,18).

한 편으로는 평화의 왕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그를 낳은 어머니 마리아를 복된 여인으로 찬미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자식들을 잃고 위로받기를 거부하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 자식을 먼저 가슴에 묻어야 했던 모든 어머니들의 슬픔과 고통, ‘세월호’ 희생자의 어머니들, 지금도 전쟁과 테러로 목숨을 잃는 이들의 어머니들을 기억하고 마음에 간직하는 곳, 바로 그곳이 여관에는 들어갈 방이 없어(눅 2,7) 마리아가 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님과 지금 함께 계시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자, 하나님의 어머니, 모든 인류의 거룩한 어머니로 고백되는 것이지요.

크리스마스는 우리가 해마다 축하하는 것처럼 그렇게 목가적이고, 행복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평화와 정의의 왕으로 오시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은 폭력과 살육의 사건과 결부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삶의 마지막도 십자가 죽음이었습니다. 탄생과 죽음의 사건에서 드러나는 이 잔혹한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구속하러 오신 악의 깊이를 드러냅니다. 그리고 예언자 시므온의 예언은 어머니 마리아가 자신이 겪은 고난을 통해 반드시 구속받아야 할 악을 드러내는데 동참하게 될 것임을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통하여, 아니,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통하여 악을 구속하는 길, 그것은 더 큰 악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철저한 자기 비움, 십자가의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나사렛의 비천한 여종의 몸을 빌려 인간이 되신 하나님, 인간의 모든 한계와 죄와 악함을 스스로 짊어지신 하나님, 고통 받는 하나님만이 악을 구속하시고, 죄인을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 이것이 크리스마스의 역설이자, 동정녀 탄생의 신비입니다.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sooilchai@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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