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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기사승인 2021.12.14  16: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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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수일 목사와 함께 하는 주제로 읽는 성경 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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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天使), ‘신을 보좌하면서, 하늘의 뜻을 전하는 사자’를 의미하는 이 단어의 영어는 ‘에인절’(Angel)인데요, 이 단어는 ‘사신’ 혹은 ‘사절’을 뜻하는 그리스어 ‘앙겔로스’에서 유래합니다. 그런데 히브리 성서 어디에도 ‘에인절’에 상응하는 정확한 단어는 없지만, 그런 존재들을 표현하는 단어들은 성서 안에 풍부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신적인 위상을 가진 ‘신의 아들들’이나 ‘신적 존재’를 나타내는 단어들과 그들의 기능을 표현하는 단어들이 그것입니다. ‘주인’, ‘대장’, ‘군대’, ‘관리자’ 등의 역할이 그 기능이지요. 이런 여러 기능적 용어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히브리어는 ‘말라흐’(Mal'ak)로서, ‘메신저’, ‘사절’을 의미하고, ‘에인절’은 ‘말라흐’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제2 성전 시기(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에 등장하는 성서 외 문헌들에는 천사에 대한 여러 다양한 개념들이 반영되어 있는데요, ‘감시자’, ‘영들’, ‘영광스러운 존재’, ‘왕좌’, ‘권세들’, ‘하늘의 군대’, ‘능력’ 등 다양한 서술적 기능적 용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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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하나님의 메신저 역할을 하는 천사의 형태는 어떤 모습일까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하는 성화들이나, 성서에 묘사된 모습을 보면, 천사는 등에 독수리처럼 생긴 하얀 날개가 달린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에는 날개가 세 쌍이 달린 존재가 등장하지만, 그것이 천사인지 아닌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천사의 머리에는 고리 모양의 후광이 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이것은 특별히 구별된 존재임을 나타내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그에 반해 천사를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불타는 신의 전차’(Chariot)의 바퀴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천사는 때로는 위압감과 거룩함을 드러내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성인 남성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천사가 여성으로, 여성 전사로, 때로는 아기의 모습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그리스-로마 문화, 혹은 북유럽의 신화와 접목되면서 일어난 현상입니다.

천사의 모습이 비록 이렇게 다양하게 표현되기는 하지만, 공통점은 하나님의 대리인, 혹은 메신저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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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는 유일신 신앙에 같은 뿌리를 둔 유대교에서만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이슬람에서도 신을 보좌하는 영적인 존재이자, 메신저 역할을 하는 신의 심부름꾼으로 이해되고, 공경을 받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천사들은 주로 ‘주님의 천사’라고 불리는데요(창 16,7 등), 특별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천사들도 등장합니다.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 등이지요.

미카엘은 ‘누가 하나님과 같으랴?’라는 뜻으로, 천국에서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에게 맞서 싸울 때 그가 외쳤던 말이라고 합니다. 다니엘서에서는 미카엘이 ‘천사장 가운데 하나요’(단 10,13),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는 우위대한 천사장’(단 12,1)으로 등장하는데요, 유대인은 그래서 미카엘을 유대 민족의 수호천사로 생각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미카엘을 하나님의 군대를(천사들) 이끌고 하늘에서 사탄의 군대와 맞서서 싸우는 지휘관의 모습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후 4세기 경부터 그리스도교 안에서 미카엘은 병이나 상처를 치유하는 천사로 공경받기도 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하나님의 사람’, ‘영웅’, ‘힘’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 세 종교 모두 하나님의 전령(메신저)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가브리엘은 다니엘이 본 환상을 풀이해주고(단 8,15-26; 9,21-27), 마리아에게 세례자 요한과 아기 예수님이 탄생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합니다(눅 1,26-38). 성경은 가브리엘을 천사장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 루터교 등에서는 미카엘과 더불어 가브리엘도 천사장으로 부릅니다.

라파엘은 ‘하나님께서 고쳐주셨다’는 뜻인데요,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는 치유의 천사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서에는 예수님이 예루살렘 ‘양의 문’ 곁에 있는 베드자다라는 못에서 38년 동안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고쳐주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님의 천사가 때때로 못에 내려와 물을 휘저어 놓는데, 물이 움직인 뒤에 맨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에 걸렸든지 나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언급된 ‘주님의 천사’가 치유와 관련된 라파엘의 역할 때문에 라파엘 대천사라고 여겨지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라파엘은 여행가와 눈이 먼 사람의 인도자, 간호사, 약사, 의료인의 조력자, 신혼부부 등의 수호천사로 공경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라파엘은 신구약 정경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고, 외경 ‘토빗기’에만 등장하기 때문에,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가 함께 천사의 이름으로 확실하게 인정하는 이름은 미카엘과 가브리엘뿐입니다. 라파엘을 인정하는 교회는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이고, 성공회를 제외한 개신교에서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 뉴욕 시에 소재한 성 미가엘 교회에 전시되어 있는 천사장 미가엘 동상 ⓒGetty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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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천사는 신학적으로 어떻게 이해되고 있을까요? 스콜라 철학의 대부인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5?-1274)는 천사를 ‘사람에 비하면 무형이고 비물질적이지만, 하나님과 비교했을 때에는 물질적이고 형체이다.’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즉 몇몇 경우 신체를 지니기도 하지만, 통상적으로는 신체가 없이 영혼의 힘들만 있는 존재라는 것이지요.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M. Luther, 1483-1546)는 천사와 악마를 실제적인 존재로 보았고, 그들이 인간의 삶과 사건에 큰 영향을 끼치는 존재임을 인정했습니다. 무수히 많은 선한 천사들과 악마들은 지금도 인간들을 위해 끊임없이 전투를 벌이고 있으며 하나님이 이러한 방식으로 사탄의 분노를 억제하고 있다고 본 것이지요. 루터는 천사가 특히 어린이들에게 매우 중요해서, 천사들이 도와주어야 아이들이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사탄보다 훨씬 힘이 강하고 지혜롭고 자비로운 천사는 그리스도인과 평생 동안 함께 있으며 그가 죽을 때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천국으로 인도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스위스의 종교개혁가인 장 칼뱅(Jean Calvin, 1509-1564)은 천사와 악마에 대한 미신적 해석들을 철저히 경계하면서도, 천사와 악마의 존재를 결코 부정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긍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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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에 만들어지고, 우리나라에서 1993년에 개봉된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가 있었습니다. 원제는 ‘베를린의 하늘’(Der Himmel über Berlin), 독일의 영화감독 빔 벤더스가 만든 영화인데, 독일 영화상 최고의 영화로 평가받은 작품입니다.

분단된 독일의 옛 수도 베를린에 어느 날 두 천사가 내려옵니다. 다미엘과 카시엘은 어린 아이의 눈에만 보일 뿐 어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다미엘과 카시엘은 베를린의 거리를 순회하며 병들고 가난에 찌든 노인이나 상념에 빠진 사람들에게 위로의 손길을 뻗칩니다. 하지만 천사들은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냄새, 맛, 몸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미엘은 서커스단에서 공중그네를 타는 마리온을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마리온을 잊을 수 없게 된 다미엘은 카시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천사의 생활을 포기하고 인간이 되기로 하고, 인간으로 지상에 내려옵니다. 그런데 다미엘은 자신처럼 천사의 길을 포기하고 인간이 된 사람을 만나면서 인간이 된 천사가 세상에 적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카시엘은 천사로서의 임무를 마치고 다시 승천하고, 다미엘은 한 여인의 남자로 지상에 남게 된다는 이야기이지요.

천상에서의 불멸의 삶을 포기하고, 지상에서의 필멸의 삶을 선택한 천사 다미엘 이야기는 천사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수정해줍니다. 천사는 하늘에서 내려온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메신저이자 우리의 보호자일 뿐만 아니라, 우리처럼, 이 지상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가까운 이웃들이라는 것이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안에,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기쁜 일들이 일어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 상처받고 고통에 시달릴 때, 우리 가까이에서 우리를 위로하고, 힘이 되어준 가족, 친구들, 너무 가까이 있고, 너무 평범하고, 일상적이어서 그들이 천사임을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그런 천사들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주님의 천사들을 보내셔서 우리를 도우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지만, 그러나 보이는 천사들도 보내셔서, 우리와 함께 때로는 시끄럽게 수다를 떨면서 크게 웃고, 때로는 탄식하면서 함께 웃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돕고 계시지요. 그래서 아직 세상은 고통스럽기는 해도, 참을만하고, 원망스럽기는 해도, 소망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가 봅니다.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sooil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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