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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욜 3:14-21; 롬 7:1-6; 마 2:1-12)

기사승인 2021.11.26  16:3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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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병학 목사의 공동성서정과(CCL), 대림절 첫째 주일(11월28일)

1. 최병학 목사의 공동성서정과(CCL, Choi’s Common Lectionary)

오늘은 아기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을 준비하는 대림절 첫째주일입니다. 교회력 가운데 개정공동성서정과(The Revised Common Lectionary, RCL)는 대림절로 시작되어 성령강림절로 한 해가 끝이 납니다. 그러나 삼위일체교회력은 창조절로 시작해 성령강림절로 끝이 나죠? 우리 달력으로는 8월 말에 성령강림절이 끝나고 9월 첫째 주부터 창조절기가 시작됩니다. 따라서 교회 한해 예결산 정리나 한해 마감과 달라, 삼위일체교회력은 세상 주기와 다릅니다. 물론 RCL은 11월 말, 혹은 12월 첫 주가 대림절이고 대림절로 교회력이 시작되기 때문에 세상 주기와 맞아떨어집니다.

아무튼 우리는 지난 6년간, RCL 3년과 삼위일체교회력 세본문으로 3년, 이렇게 두 교회력 모두를 주일낮예배 말씀을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따라서 3년 주기로 돌아가는 교회력을 다시 한번 반복하기보다는 지난주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최병학 목사의 공동성서정과(CCL, Choi’s Common Lectionary) 세 본문 말씀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2021년 9월 코로나 자가격리 기간 중 하나님께서 집중할 시간을 주셔서 각 복음서를 중심으로 4년 동안 전체 신구약 성서를 다 살펴볼 수 있는 교회력을 만들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물론 CCL도 삼위일체 교회력 절기를 따릅니다. 왜냐하면 삼위일체교회력은 RCL을 개혁하며 나온 것이고, 삼위일체교회력에 있는 창조절기는 기후 위기의 시대에 매우 중요한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번 주부터 CCL 그 첫해인 마태복음의 해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CCL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합니다.

① 삼위일체교회력을 중심으로 편성하였습니다. 삼위일체교회력은 ‘창조절-대림절-성탄절-주현절-사순절-부활절-성령강림절’ 등 7절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② 4복음서를 중심으로 4년으로 편성합니다. 가해는 마태복음을 기준으로 전체 주제를 ‘생명의 하나님’으로, 나해는 마가복음을 기준으로 전체 주제를 ‘평화의 성령님’으로, 다해는 누가복음을 기준으로 전체 주제를 ‘정의의 예수님’으로, 라해는 요한복음을 기준으로 전체 주제를 ‘사랑의 교회 공동체’로 잡았습니다.
③ 복음서, 구약, 사도행전~요한계시록 세 본문의 주제를 말씀 별로 넣어두었습니다. 목회자에게는 설교를 준비할 때 혹은 성도님들에게는 예배 참석 전 본문 말씀의 전체 주제를 파악할 때 좋습니다.
④ 설교자는 설교할 때 먼저 각 세 본문의 핵심을 파악하고 그 핵심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성경 본문을 모두 사용하여 설교문을 작성합니다. 설교는 본문 말씀 선포가 우선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본문들의 의미와 본문들 사이의 연결 지점을 잘 파악하여 설명하면 설교는 ‘말씀 중심 설교’가 됩니다.
⑤ 설교자는 처음에는 한 본문으로 설교를 하고(3×4=12년), 이후 세본문을 연결하여 세본문 설교를 하면(4년), 16년 설교 본문이 준비됩니다. 이제 목회를 시작하는 목사님들께 꼭 권면하는 교회력입니다. 이렇게 CCL로 설교를 하고 이후 RCL, 그리고 삼위일체교회력으로 넘어가면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특별히 CCL은 성도님들에게도 4년 동안 성경 전체를 교회력 절기에 따라 읽을 기회가 됩니다.

이렇게 성도님들은 세 본문의 주제가 교회력 전체 주제와 또한 절기의 의미와 함께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묻고, 예배에 참여하면 정말 말씀 그 자체를 통해서도 큰 은혜를 받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통해 한국 교회가 새롭게 변화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세 본문 말씀은 먼저 구약의 말씀을 통해 여호와의 날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요엘이 선포한 이 여호와의 날은 곧 아기 예수님의 오심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여호와의 날이 성취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아기 예수님의 오심은 이 땅에 기쁜 구원의 소식만은 아닙니다. 불의한 이들에게는 두려움의 소식입니다. 따라서 복음서에 나오는 헤롯이 바로 그 예죠? 결국 이것은 예수님을 율법의 조문으로 가두어 버린 유대인들과도 같은 모습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것을 잘 지적합니다.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라고 하는데, 이렇게 대림절 첫 주를 맞아 율법의 조문, 곧 문자에 얽매이지 말고, 새로운 영으로 변화되어 아기 예수님을 영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

요엘서 말씀은 베드로 사도가 오순절 성령강림을 이야기하면서 인용함으로 그 신학적 가치가 한층 높아졌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요엘서의 ‘여호와의 날’에 대한 예언이 부분적으로 성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엘서의 예언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또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으로 말미암아 부분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성취되지 않은 나머지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재림하실 때 완전히 성취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세계에 대한 심판(욜 3:9-17)과 축복의 약속(18-21)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여호와의 날이 성취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먼저 심판에 관한 말씀입니다.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그 빛을 거두도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내시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리로다.”(욜 3:14-16a)

하나님께서 시온성 거룩한 예루살렘에서 부르짖고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축복의 약속이 이어집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시리로다. 그런즉 너희가 나는 내 성산 시온에 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알 것이라. 예루살렘이 거룩하리니, 다시는 이방 사람이 그 가운데로 통행하지 못하리로다. 그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성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욜 3:17b-18)

그리고 심판과 축복을 함께 이야기하며 말씀을 끝맺습니다. 악을 행해 심판받을 애굽과 에돔은 멸망당할 것이고 유다와 예루살렘은 영원히 살 것이라 선포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그러나 애굽은 황무지가 되겠고 에돔은 황무한 들이 되리니, 이는 그들이 유다 자손에게 포악을 행하여 무죄한 피를 그 땅에서 흘렸음이니라. 유다는 영원히 있겠고 예루살렘은 대대로 있으리라. 내가 전에는 그들의 피 흘림 당한 것을 갚아 주지 아니하였거니와 이제는 갚아 주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에 거하심이니라.”(욜 3:19-21)

핵심은 이렇습니다. 유다 자손의 피를 흘린 애굽과 에돔을 심판하러 하나님께서 시온에 거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서 말씀드렸지만, 아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또한 부활 승천하신 후에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으로 시작되었습니다.

3.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이렇게 요엘의 약속이 이제 이 땅에 아기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다시 한 번 반복됩니다. 그러나 아기 예수님의 오심은 이 땅에 기쁜 구원의 소식만이 아닙니다. 애굽과 에돔같이 포악을 행하여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이들에게는 두려움의 소식입니다. 바로 헤롯 왕과 같은 불의한 권력자 같은 이에게 그렇습니다. 복음서 말씀을 볼까요?

▲ <헤롯과 동방박사> 스테인드글라스, 15세기 초 제작(1999년 F. Pivet 복원)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마 2:1-6) 

그러자 헤롯이 어떻게 하죠? 거짓말로 동방박사들을 꾑니다.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마 2:7-8) 

마침내 박사들이 길을 떠나 별의 인도대로 아기 예수님께서 나신 곳에 다다릅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고 예물을 드리죠?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마 2:9-11)

이제 헤롯에게 돌아가 아기 있는 곳을 알려줘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마 2:12)”게 됩니다. 이후의 일은 잘 아시겠지만,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베들레헴과 근처 지역의 두 살 아래 아이들을 다 죽여버립니다(마 2:16). 물론 예수님의 가족은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애굽으로 가라고 일러 헤롯이 죽기까지 그곳에 있게 됩니다(마 2:13-15).

이렇게 이 땅에 생명의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오셨지만, 그를 죽이려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생명을 짓밟는 이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대림절 촛불을 켜면서 다시 예수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녕 아기 예수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나요? 생명이신 아기 예수님이 아니라, 허울 좋은 종교의 껍데기만 남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바울 사도 당시 유대인들이 그랬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건만, 율법의 묵은 조문(條文)으로 예수님을 가두어 버립니다. 오늘로 치면, 문자로 생명을 가두고 교리로 예수님을 묶어 버린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외칩니다.

4.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롬 7:1-3)
 
결혼의 법적 효력은 살아 있을 때입니다. 죽은 이후에는 그 법이 필요 없습니다.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됩니다. 바울은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이렇게 쉬운 예로 설명한 다음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롬 7:4)

무슨 말씀인가요? 율법은 이제 죽었다! 법적 효력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그리스도께서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했기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곧 율법의 조문에 따라 죄 없으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완성했으니, 이제 더 이상 율법의 조문에 묶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실 율법은 우리에게 “하라! 하지 말라!”라는 요청과 금지의 명령입니다. 우리를 구속합니다. 물론 우리를 살리는 ‘선한 구속’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리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율법의 조문으로, 그것을 지킬 능력이 없어 죄와 사망에 얽매여 있던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이제 더 이상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말씀을 볼까요?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롬 7:5-6)

▲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대림절 첫째주일 ‘기다림과 소망의 촛불’을 키면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신 아기 예수님을 온전히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모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다시 태어납니다. 여러분의 영이 새롭게 변화됩니다. 이렇게 영의 새로운 것으로 아기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반대했던 헤롯이나 또 구약의 애굽과 에돔과 같지 않고, 늘 주님만 바라보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며 생명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 hak-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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