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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지옥>, 종교의 흥망성쇠를 기록하다

기사승인 2021.11.22  17: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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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지옥>을 읽는 한 방법

▲ 드라마 <지옥> 포스터 ⓒ넷플릭스

한 카페, 한 남성이 스마트폰의 시계를 응시하며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주위를 살핀다. 그리고 시계가 1:20을 가리키자 굉음과 함께 정체를 알 수 있는 초자연적 존재 셋이 등장하고 이 남자를 쫓는다. 초자연적 존재를 피해 도망치던 이 남자는 처참한 폭력을 당하고 결국 소멸 당하는데 마치 무언가에 태워지는 것처럼 보인다.

장면이 바뀌어 이해할 수 없는 이 현상을 설명하는 남자에게로 카메라는 향한다. <새진리회> ‘정진수’ 의장이 기현상의 “의도”에 대해 설파한다. 공포스러운 이 현상은 인간과 인간 사회를 향해 “더 정의로워야 한다”는 신의 뜻이 전해지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또 다시 카메라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한 가정에 등장하는 장면을 비춘다. 두 자녀에게 생일 축하를 받는 상황에 등장한 초자연적인 존재는 5일 후에 이 여성이 “지옥에 간다”며 “고지”하고 사라진다. 이 고지를 듣게 된 여성은 <새진리회>를 찾아가게 되고 정 의장은 이 여성에게 초자연적 존재가 나타나는 “시연” 상황을 생중계 하고 싶다며 그 댓가로 30억을 제안한다.

그리고 5일 후 이 여성에게 초자연적 존재 셋이 찾아오기로 한 날은 <새진리회> 뿐만 아니라 공중파 방송사까지 이 시연을 생중계하기 위해 여성의 집 앞에 장사진을 이룬다. 물론 많은 사람들까지 이 장면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한 기다림 끝에 마침내 등장한 초자연적 존재 셋은 이 여성을 무참하게 도륙하고 알 수 없는 빛으로 여성을 소멸시킨다.

시연 장면이 생중계 되며 <새진리회>는 그야말로 천군만마를 얻은 듯 단박에 종교의 위치로 격상된다. 사람들은 “더 정의로워 한다”는 교리에 복종하며 <새진리회>가 예언한 새로운 사회를 고대하게 된다. 한국 사회를 넘어 전세계로 <새진리회>는 전파되는 모양새를 띈다.

종교의 등장과 사라짐

▲ 두 아이를 힘들게 양육하던 한 여성에 초자연적인 존재가 나타나 고지를 하고 초자연적인 존재가 등장해 이 여성을 공격한다. ⓒ넷플릭스

지난 19일 공개된 전체 6화로 구성된 드라마 <지옥> 전반부에 해당하는 3화까지의 큰 줄거리이다. 이 드라마 역시도 인간과 사회를 다루고 있다. 대부분의 드라마가 그러하듯 인간이나 사회를 과장되게 그려내지만, <지옥>은 현실과 너무 가까이에 있다, 물론 한국 사회와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 드라마 전체를 다 시청하고 나서 종교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 전체로 따지자면 지엽적인 부분일 수 있지만 배운 게 뭐라고 그러했다는 뜻이다. 종교의 태어남과 사라짐이 내 눈앞에 그려지는 것으로 읽었다.

근대 종교사회학의 창시자 중 하나라고 하는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이런 말을 남겼다.

“종교를 정의하는 것, 즉 그것이 무엇인지 말하는 것은 이런 연구발표의 서두에서는 불가능하다. 종교에 대한 정의는 비록 가능하다면 오직 연구의 결론에서나 시도될 수 있을 것이다. 종교의 본질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우리는 특정한 사회적 행위의 조건과 결과를 연구함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The Sociology of Religion, trans., E. Fischoff [Boston: Beacon Press, 1963], 1)

베버의 저 말은 종교사회학은 종교의 본질을 묻지 않는다는 일차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대신에 종교사회학은 사회학 분야에서 사용되는 도구와 방법을 이용해 종교의 신념, 관행 및 조직 형태 등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연구의 결과를 통해 혹시 가능하다면 종교의 본질을 제시할 수도 있다는 것이 베버의 논지이다.

베버의 이 말을 따라가 보자. 먼저 <새진리회>는 정진수 의장의 경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중·고등학생 시절, 정 의장은 초자연적인 존재로부터 20년 후에 지옥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고지를 듣게 된다.

그때부터 정 의장은 자신은 어떠한 죄나 악을 범한적인 없는데 자신에게 왜 이러한 일이 발생했는지 고민하게 된다. 이것을 알아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던 중 티벳에서의 한 경험을 통해 자신 나름대로의 교리를 확립하게 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러한 초자연적인 현상에서 드러난 것은 “더 정의로워야 한다”는 신의 의도가 개입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교리에 대한 확신으로 정 의장은 전세계적으로 일어난 동일한 현상들을 해석하기 시작했다. 초자연적인 존재의 고지를 듣고 소멸 당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죄로 인해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 의장의 주장은 미디어 시대, 특히 인터넷 시대를 맞이하며 확장되어 가다가 한 여성의 소멸 장면이 생중계 되며 하나의 종교로 모습을 갖춘다.

드라마의 후반부는 종교의 형태를 갖게 된 <새진리회>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새진리회>의 관행과 조직 형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정 의장이 고지대로 소멸되고 난 후 2대 의장으로 등극한 ‘김정철’이 조직을 어떻게 운영하고 관행적으로 움직이는지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이러한 이야기를 종교 일반으로 옮겨 보자. 어느 종교이든 창시자는 신의 음성 혹은 계시를 듣는다. 이 계시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다른 사람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 계시를 들은 당사자만이 알 수 있고, 특히 계시를 들은 당사자의 해석을 통해 알 수밖에 없다.

계시를 들은 당사자는 자신의 해석을 통해 그 계시를 전파하게 되고 그 해석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계시를 들은 당사자의 제자가 되고 급기에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 이 가운데 기존 종교와의 갈등뿐만 아니라 종교가 없는 사람들과도 불화에 놓일 수 있다. 갈등과 불화를 넘어가게 된다면 공동체를 넘어 종교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세계의 모든 종교는 이 과정을 밟아 왔다. 갈등과 불화를 이겨낸공동체는 하나의 정통 종교로 자리 잡게 되고, 갈등과 불화를 이겨내지 못한 공동체는 기존 종교로부터 “이단”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고 ‘게토(ghetto)’화 된다. 자신들만의 리그를 이루며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에 이른다.

넓게는 그리스도교, 좁게는 가톨릭과 개신교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구약의 종교를 지나 제2 성전기 유대교와의 갈등과 불화를 견딘 원시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그 범위가 로마로 확장되며 제국의 종교가 되었다. 중세 천년을 이어 온 로마가톨릭은 신흥 프로테스탄트 공동체를 탄압하지만 이를 견딘 공동체는 개신교라는 지위를 얻게 된 것이다.

종교의 본질을 묻기 전에

▲ <새진리회> 의장단은 자신들의 교리를 넘어서는 현상이 발생하자 고민한다. ⓒ넷플릭스

이제 다시 드라마로 돌아가 보자. 드라마의 후반부에 한 사건이 발생한다. 태어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영아에게 초자연적인 존재가 등장해 며칠 후면 지옥에 가게 된다고 고지한다. 이 장면을 아이의 엄마가 목격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아이의 엄마가 <새진리회>를 찾아가며 알려지고 그야말로 <새진리회>는 벌컥 뒤집어진다. 정 의장으로부터 출발한 <새진리회>의 교리를 넘어서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초자연적인 존재로부터 고지를 받은 사람들은 그들의 죄 때문인데 태어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영아가 무슨 죄를 범했기에 고지를 받았는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극중에는 이런 대사가 등장한다.

“뭐 이제는 원죄론으로 가야되지 않나. 그러니까 인간은 원래 태어날 때부터 죄를 가지고 태어나...”
“안 돼요, 그건. 우리 새진리회가 이렇게 단시간 내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 죄인들이 지옥에 간다는 거였는데 원죄론을 인정하는 순간 개신교 하고 뭐가 다르냐는 이야기가 나올 게 뻔합니다. 순식간에 세력이 쪼그라 들 거에요.”

교리가 설명할 수 없는 현상 앞에 교리가 무너지는 걸 막기 위해 자구책을 마련하려는 난상 토론에서 등장하는 대사이다. 이는 마치 미국의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Thomas Kuhn)’의 “패러다임 전환(The Paradigm Shift)”이 연상되는 장면이다. 기존의 학설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가설이 등장하고 이 가설은 기존의 가설과는 공약불가능하다는 것 말이다.

하지만 <새진리회> 의장단의 선택은 저 아이를 제거하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이른바 종교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것이다. 종교의 교리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종교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혈안이 된 모습을 부끄럽도록 보여주고 있다.

난 종교사회학의 간단한 이론을 따라가며 이 드라마를 읽으니 베버가 이야기한 종교사회학의 이야기가 새롭게 다가왔다. 종교를 사회학의 방법을 통해 연구한 결과를 통해 종교의 본질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말이다. 우리는 종교가 행한 결과물을 통해 종교의 본질을 알 수밖에 없다는 것 말이다.

예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마태복음 12:33)

내가 읽은 드라마 <지옥>은 나에게 이런 결론을 속삭여 주었다.

이정훈 typology@naver.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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