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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영웅이 필요할까? 영웅에서 벗어나기

기사승인 2021.10.27  17: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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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 NCCK신학위 <사건과 신학> 9월호 ⑷

▲ 민중을 위한다는 허명의 영웅만 남은 것은 아닌가 ⓒGetty Image

‘영웅’이라는 단어는 많은 경우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영웅’은 우리 삶의 모델이기도 하며 목표가 되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인류의 역사는 ‘영웅’들을 요구하였고 또한 그들을 필요로 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우리는 ‘영웅’을 세우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만들기도 하였다. 어찌 보면 인류의 역사는 영웅의 역사라고 불러도 큰 무리가 없을 정도이다. 이처럼 우리의 역사는 수많은 영웅의 이야기로 가득 채워져 있다.

성경도 예외는 아니다. 성경의 이야기는 ‘영웅 이야기’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이다. 우리가 교회교육을 통하여 성경에 대해 배운 것은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측면에서도 ‘영웅’에 관한 이야기이다. 우리의 성경 지식이 ‘영웅’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의미이다.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노아를 건너 아브라함을 거친다. 이삭과 야곱 그리고 마침내 요셉의 이야기에 도달한다. 꿈꾸는 자, 요셉은 모든 학부모의 기도에서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모세, 그는 잊을 수 없는 역사의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사울이라는 ‘영웅’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우리가 절대 따라서는 안 될 ‘영웅’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사울에 비해 다윗은 어떠한가? 다윗은 우리 모두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큰 영웅’이다. 인류의 역사는 이처럼 큰 ‘영웅’들에 의해 지배되었고 ‘영웅’은 우리 모두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영웅’은 우리의 삶에 의미와 에너지를 제공해 준다. ‘영웅’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영웅’ 없는 시대는 상상할 수 없고 또 다른 의미에서 ‘영웅’ 부재 현상은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한 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아직도 ‘영웅’의 시대는 계속되고 있는가? 오늘 우리에게 영웅이 필요할까? 

나는 얼마 전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민중들을 위해서 일하고 싸운다고 한다. 그런데 남는 것은 없다. 아무것도 변하거나 나아진 것은 없다. 오직 남는 것은 소위 ‘영웅’들뿐이다. 슈바이처는 ‘영웅’으로 남아 있지만, 아프리카 토착민의 삶은 여전하다. ‘영웅’이 되지 않아야 하는데. 지하철 타고 출근하면서 문득 객차 안 창가에 걸려있는 한 ‘영웅’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천사는 더 천사 되고 밥 얻어먹는 사람은 오늘도 밥을 얻어먹고 산다.”

‘영웅’은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왔다. 그런데 화려한 ‘영웅’이 사라진 뒷자리는 어떠한가? ‘영웅’이 이끌어 온 역사는 어디를 향하여 흘러갔는가? 나는 수십 년을 라틴아메리카에서 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해방신학을 공부하면서 실천적인 삶을 살고자 노력해왔다. 해방신학은 무엇보다도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것을 기반으로 하는 신학운동이다. 1968년 콜롬비아의 메델린에서 개최된 제2차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해방신학은 70~80년대를 지나면서 혹독한 박해와 시련에 시달리며 수많은 순교자를 양산한 ‘탄압받는’ 신학의 대명사였다. 억압적이고 불의한 권력에 의해 목숨을 잃은 수많은 순교자(영웅)들이 나타났다.

순교자뿐인가? 이름만 들어도 우리 모두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학자들을 배출했다. 20세기에 출현한 신학 중에서 해방신학보다 더 많은 순교자와 유명한 학자들을 배출한 신학운동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 해방신학이 출현한 지 50년이 넘은 이 순간에 라틴아메리카의 억압받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어떠한가?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50년 전부터 가난은 고착되었을 뿐만 아니라 일명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는 희망조차 완벽하게 사라진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여기에 해방신학자로서의 고민이 있다. 해방신학의 영웅들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해방신학이 억눌리고 가난한 사람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면서 시작되었고 또 가난한 사람들의 역사적 위력과 구원의 주체 세력을 인정하고 있지만, 과연 실질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주체적인 위치에서 그들의 역사적 위력을 발휘하였는가는 의문이 남지 않을 수 없다. 라틴아메리카 역사에서도 단 한 번도 가난한 사람들이 역사적 주체로서 힘을 발휘한 적이 없다. 라틴아메리카 각국의 독립은 스페인 귀족의 후예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왜 이러한 일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역사가 ‘영웅’ 이야기로 변질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우리에게 영웅이 필요할까?

최근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서 몇몇 유력 후보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들 후보들은 한결같이 청년세대들을 위한 정책을 발표한다. 위기에 처한 젊은 세대들을 구원(?)할 사람은 오직 자신 만이라고 강조한다. 이들의 정책과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자신이 청년세대를 위한 영웅이 되겠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영웅) 자신을 선택한 (젊은) 사람들을 ‘영웅’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영웅적인(?) 제안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들의 젊은이들은 영웅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 오늘도 젊은이들이 영웅에 열광하고 있을까?

오늘의 상황에서 영웅의 존재는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첫째는 우리는 영웅을 찾고 그를 보면서 위안을 갖는다. 어떤 면에서 영웅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의 사회가 바라보고 있는 영웅은 대체로 소비적인 문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운동선수, 연예인 그리고 성공한 전문가들의 면면은 소비적 문화를 대변하고 있다. 이러한 영웅들은 고소득과 높은 인기 그리고 세련된 일상과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들이 제시하는 환상과 꿈은 막연하다.

오히려 그것은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2007)가 지적했던 《치명적인 전략》 (Stratégies fatales, 1983)이 될 가능성이 많다. 그에 의하면 우리는 상품을 소비하면서 상품을 지위, 품위를 상징하는 기호(記號)로 받아들인다. 기호와 소비는 개별적인 욕구를 넘어서 사회의 욕망체계를 반영하며 우리는 그 안에 매몰되고 결국현실은 시뮬라크르 현상으로 변질되고 만다. 이제 시뮬라크르는 실재보다 더 실재가 된다. 이 영웅들은 현실 변화에 관한 비전을 빼앗아 버린다. 영웅은 젊은이를 비롯한 우리 모두를 ‘가상의 현실’ 안의 ‘가상의 나’로 만든다. 소비적 영웅은 오히려 우리에게서 꿈을 빼앗는다. 치명적 전략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오늘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영웅이 아니라 오히려 영웅으로부터 벗어남이 아닐까?

두 번째로 오늘의 소비사회에서 진정한 영웅은 누구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소비적 영웅에 의한 가상현실에 매몰되어 가는 오늘의 사회에서 드물지 않게 또 다른 형태의 ‘영웅 찾기’가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의 양극화가 심각해지고 기후위기로 전 우주적 파멸을 눈앞에 두고 있는 오늘의 인류사회에서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는 삶을 사는 작은(?) 영웅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 영웅들은 우리에게 미래를 향한 작은 희망과 비전을 보여주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에서 적은 사람들을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작은 영웅들을 주변에서 찾아보는 것은 매우 유익할 것이다. 이 영웅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지칠대로 지치고 희망을 상실해 가고 있는 우리에게 희망을 던져줄 수 있을 것이다. 내 주변에는 어떤 영웅들이 있을까를 살펴보자. 그리고 희망과 용기를 갖고 미래를 향하여 오늘의 삶의 발걸음을 내디뎌 보자.

그러나 결국 삶의 발걸음을 옮겨야 하는 주체는 ‘나 자신’이다. 진정한 영웅을 찾아 그를 따라 나서는 것도 좋겠지만 오히려 영웅을 넘어서 ‘나 자신’을 찾는 ‘영웅 벗어나기’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시뮬라크르를 극복하고 온전한 현실에 근거하는 삶의 세계를 향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모두를 영웅에서 벗어나서 내자신 안에 있는 진정한 영웅을 발견하게 만들지 않을까?

홍인식(NCCK 신학위원, 한국기독교연구소 소장) kncc@knc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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