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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만찬에 대하여

기사승인 2021.10.19  16: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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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수일 목사와 함께 하는 주제로 읽는 성경 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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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전서 11장에 있는 성만찬 전승은 복음서들보다 더 오래된 전승이라는 것이 학문적 연구결과입니다. 모든 교회가 성만찬 예식에 사용하는 제정의 말씀도 바로 이 말씀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 예식과 마찬가지로 성만찬을 둘러싼 성사(성례전) 논쟁도 제기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동방 정교회는 공식적인 교리로 성사의 숫자를 제한하지 않고 교회의 전통을 존중하여, 교회축성, 수도서원 등을 첨가하기도 하지만, 세례와 성만찬만을 진정한 성사로 인식합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일곱 개의 성사를 지키고 있습니다.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 고해성사, 혼인성사, 병자성사, 성품성사가 그것이지요. 이 일곱 가지 성사는 13세기 교황 클레멘스 4세가 동방정교회에 동의를 구한 이후 교리화 했고, 16세기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이 교리를 다시 한 번 확립하였습니다.

성공회는 성경에 나오는 성사인 세례성사와 성만찬을 성사로, 혼인, 조병, 서품, 견진성사는 성사의 성격을 가진 성사적 예식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신교는 서방교회의 전통인 7개의 성사를 성례전과 예식으로 구분합니다. 신약성경에 따라 성만찬과 세례를 예수께서 제정한 ‘성례전’으로 이해하며 다른 것들은 ‘예식’으로 봅니다. 결혼, 성직안수, 입교(견신례) 등은 예식이라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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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함께 성사(성례전)의 숫자와 의미가 변해 왔고, 또 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문제는 성만찬을 둘러싸고 교회가 오히려 분열했다는 것이지요. 성만찬의 방법과 의미, 기념설과 화체설, 성만찬의 빈도, 성만찬에 사용하는 떡과 포도주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최근 코로나 사태로 이동식 성찬기를 사용하여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면서 집에서 할 수 있는지, 왜 가톨릭교회는 개신교인이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지 등등의 문제들 때문입니다.

오래 전, 한국기독교회협의회와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대표단들이 바티칸 교황청과 제네바에 있는 세계교회협의회, 이스탄불에 있는 정교회 본부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기도회를 하는데, 천주교 사제들은 별도로 성만찬을 나누면서, 개신교 목사들의 참여를 허용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양해를 구했습니다. 솔직히 좀 서운했습니다. 또 다른 사건은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교회의 날’ 행사에서 진행된 성만찬에서 개신교인에게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준 신부가 교회로부터 경고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교리가 그렇다고 해도,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하신 저녁식사 자리에 누군가 배제된다는 것은 성만찬의 본질과 의미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도대체 무슨 교리에 근거하여 개신교인은 가톨릭 성만찬에서 배제되어야 하는 것인가? 이런 의문이 생겼습니다.

자연스럽게 대화의 자리가 마련되었고, 우리는 그것이 교회론의 차이에서 온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주교 중심의 교회론은 최초의 주교인 성 베드로와 그를 계승한 주교로부터 사제직을 위임받은 사제에 의해서만 모든 성사가 집행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주교가 없는 개신교의 교역자는 주교로부터 사제직을 위임받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개신교는 유효한 성직품을 보존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개신교 교역자가 행하는 성만찬, 세례 등 성례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가톨릭교회는 가톨릭 신자가 개신교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주교로부터 성직품을 계승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교가 없는 개신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만찬에서 배제된다는 것은 실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를 위한 주님의 죽으심과 새 언약을 기억하고, 선포하는 과제로 제자들을 하나가 되게 하는 성사가 오히려 제자들을 분열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지요.

성만찬과 관계된 다른 문제는 성만찬에서 사용되는 성체와 보혈이 꼭 전병이나 포도주여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 감옥에 갇힌 그리스도인들이 감옥 안에서 포도주를 구할 수 없어, 물이나 음료수를 가지고 성만찬을 나누었을 때에도 같은 질문이 제기된 적이 있었습니다. 꼭 포도주여야 하는가, 왜 막걸리는 안 되는가 하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포도주가 그 색깔 때문에 보혈을 상징하는데 적합하긴 하지만, 당시 널리 애용된 음료라는 점에서, 포도주를 다른 음료로, 혹은 무알콜 포도즙으로 대체하는 것이 위법한 일이냐는 것이지요. 또 빵도 발효된 빵을 사용해야 하느냐(동방교회), 발효되지 않은 빵을 사용해야 하느냐(서방교회)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과연 얼마나 빈번히 성만찬을 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매주일 성찬을 나눌 것을 권고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매월 첫째 주일에, 한 달에 한 번 성만찬을 하지만, 일반적으로 다른 개신교회에서는 일 년에 두 번, 부활절과 성탄절에 하기도 합니다. 물론 성만찬 횟수가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능한 자주 하는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횟수가 아니라, 그 의미이지요.

▲ 가톨릭교회는 성 베드로의 전통을 이은 주교의 축복으로 빵과 포도주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한다고 설명한다. ⓒGetty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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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세례만이 아니라, 성만찬 문제 때문에 교회가 분열되고, 일치의 교제를 나누지 못하는 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세계교회협의회는 1982년, 리마에서 ‘세례, 성만찬, 직제에 대한 문서’(BEM)를 채택했습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리마 문서의 세례 예식에 이어, 성만찬 이해를 여러분에게 소개하려고 합니다.

‘리마 문서’라고도 불리는 이 문서는 성만찬을 성부 하나님께 대한 감사로 이해합니다. 성만찬으로 번역된 ‘유카리스트’(Eucharist)라는 말 자체가 감사를 의미하기 때문이지만, 성만찬은 창조와 구원과 성화에서 완성된 모든 것에 대하여, 인간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세계 속에서 하나님께서 완성하신 모든 것에 대하여, 장차 하나님 나라를 완성시킴으로써 이룩하실 모든 것에 대하여 성부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행위입니다.

둘째 의미는 그리스도에 대한 기념으로서의 성만찬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동시에 당신을 따르는 모든 제자들을 위하여 기꺼이 식탁을 열어주시는 메시아적 하나님 나라 약속을 선포하는 축제라는 것이지요.

셋째, 성령 임재로서의 성만찬입니다. 성령은 성만찬에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참으로 임재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신 그리스도를 신앙공동체에 임하게 하시고, 성찬 제정의 말씀 안에 포함된 모든 약속을 성취 시킵니다. 또한 성령은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성례전적 상징이 되도록 하시며,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를 미리 맛보게 하고, 이를 통하여 교회는 새로운 창조의 생명과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확증을 얻게 됩니다.

넷째, 성도의 교제로서의 성만찬입니다. 함께 먹고 마실 것을 나누는 것은 평등한 교제의 상징이지요. 성만찬을 중심한 성도의 교제는 개교회 성도들만의 교제가 아니라, 교회들 사이의 교제이기도 합니다. 성만찬 예전은 개교회의 개별적 행사가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나 성만찬을 거행하는 그리스도인은 모두 그리스도의 지체, 한 형제자매라는 것입니다. 성만찬 안에서 세계의 그리스도인이 모두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성만찬은 창조의 종국적인 갱신으로서 약속된 하나님의 통치를 대망하도록 해주고, 그 나라를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성만찬은 이미 현현된 하나님 나라와 장차 올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을 열어 주고 하나님이 통치하는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미리 경험하게 하는 식사입니다. 가톨릭 신학자이자 에큐메니칼 신학자인 독일의 한스 큉(Hans Kueng, 1928-2021) 교수는 ‘과거의 관점에서 주의 만찬은 회상과 감사의 식사이고, 현재의 관점에서 주의 만찬은 교제의 식사요 언약의 식사이며, 미래의 관점에서 주의 만찬은 메시아의 종말적 식사에 대한 예견이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만찬은 회상과 감사, 교제와 언약, 메시아적 하나님 나라에 대한 실현된 희망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성만찬이 행해지는 어디에서나, 주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기억되고 기념되며, 세계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평등한 교제가 이루어지고, 약속된 하나님 나라를 미리 맛보는 축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어떤 이유로도, 주님이 베푸시는 이 거룩한 만찬에서 배제될 수 없습니다.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sooilchai@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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