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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눈 팔지 말아라(출애굽기 20:14)

기사승인 2021.10.18  16: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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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정의 위기와 해체에 제7 계명의 의미

▲ 가정의 위기와 해체는 또 다른 형태의 가정을 위한 출발점이기도 하다. ⓒGetty Image

인류의 역사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졌던 인간제도가 무수히 있습니다. 사상과 철학 체계가 그러했습니다. 정치제도들도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문화, 경제 제도도 마찬가지 입니다. 종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여러 가지 모양의 종교들이 나타났지만 얼마 있다가는 사라져 버리고 만 종교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렇듯 인간의 제도는 한시적이었던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 최근 들어서서 퇴조의 기미를 보이고 있는 중요한 제도(institution)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을 가정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최근의 통계와 추세를 보면 인류가 만들어 낸 제도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가정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만들고 있습니다.

특별히 전통적인 의미의 가정-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하여 자녀들을 낳아 공동체를 이루고 산다는-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한 복판에는 결혼제도의 붕괴가 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결혼율이 30%를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함께 살면서도 결혼이라는 제도를 거치지 않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유럽 사람들에게는 결혼이라는 제도는 별 흥미를 끌지 못하는 것이며 구시대의 산물일 뿐입니다. 결혼제도를 반대하며 그것을 사람을 억압하는 제도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의 사회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은 인간은 애초부터 한 사람만을 평생 사랑하고 살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들의 말에 의하면 결혼이라는 제도는 이 같은 자유분방한 사람들의 사랑에 대한 욕구를 근본적으로 억압하는 것입니다. 이 말에 동조하여 결혼제도를 거부하는 젊은이들이 유럽에서는 놀라운 속도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제 결혼이라는 제도는 점차 적어도 유럽의 젊은 세대에서는 해 묵은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정의 파괴와 위기를 초래하는 것은 결혼을 하지 않는 현상뿐만이 아닙니다. 이미 형성된 가정들이 이혼이라고 하는 현상으로 인하여 급격하게 해체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경우 2019년도의 통계를 보면 한국사회의 가정해체의 위기도 서양사회의 그것 못지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2019년 한 해 동안에 결혼은 인구 1000명당 5건입니다. 그러나 같은 해 이혼은 1000명당 2.2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혼의 숫자가 결혼의 숫자의 42%인 거의 절반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혼율은 2.8/1000에 달하고 있습니다. 물론 1000명당 6건 이상의 이혼이 발생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 사회에 비해서는 낮은 편이지만 가정 중심으로 이루어진 전통적인 한국사회임을 감안할 때 놀라운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바로 인류사회에서 결혼과 가정이라는 제도가 붕괴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많은 인간 사회의 제도들이 역사 속에서 명멸해 갔습니다. 그러나 결혼과 가정의 붕괴 위기는 다른 여느 제도의 사라짐과는 그 결과에 있어서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회적 제도와는 달리 결혼과 가정은 인류가 지구상에 그 모습을 나타낸 이후로 인류 사회를 유지해 온 유일한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부일처제’라든지 일부다처제 혹은 다양한 결혼제도가 있었지만 그 근간은 결혼이라는 약속과 그것에 의한 가정형성이라는 것이 전제로 깔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선 인류는 결혼과 가정의 붕괴라는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서 “간음하지 말라”라고 말씀하는 제7 계명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제7 계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가정이 붕괴되는 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좀 더 심각하고 진지하게 이 계명의 무게를 다루어야 할 것입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이 계명이 가정으로 상징되는 인류공동체의 보존에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로 삼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혼자 사는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여자와 함께 사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이 사실은 단순하게 남자와 여자가 만나 한 몸을 이루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함께 사는 공동체적인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공동체적 삶이라는 것은 인간은 서로 도우며 부족한 점을 서로 채워가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공동체적 삶이라는 것은 인간은 혼자서 제 아무리 능력이 있고 똑똑하고 뛰어난 재주가 있을 지라도 만일 그것을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다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간의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서로서로를 인정하면서 함께 살아갈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인간 창조의 섭리를 이해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가정을 비롯한 공동체의 삶은 인류의 미래에 핵심적입니다. 공동체적 삶은 우리로 상대방의 존재의 소중함을 알게 만듭니다. 상대방을 자신의 파트너로 이해하게 되고 적이 아닌 동지로서 이해하게 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우리는 인류라는 공동체 의식 속에서 운명을 함께 하는 같은 공동체의 일원임을 깨닫게 됩니다. 공동체적인 삶의 의미를 배우거나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사회에 나가서 그와 만나는 사람들을 모두 경쟁자 혹은 적으로 간주하게 됩니다. 상대방에 대하여 심각한 적대감을 나타나게 되고 서로가 서로를 물고 뜯는 그러한 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공동체 붕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간음하지 말라’라고 하는 제7 계명은 단순한 성적인 문란에 대한 경고만은 아닙니다. 구약 시대에서의 간음은 주로 이미 결혼한 사람들끼리의 성적인 관계 다시 말하자면 결혼한 남자가 결혼한 다른 여자와 관계를 갖는 사건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친 것은 그가 성에 대하여 금욕적인 태도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 여자가 보디발의 이미 결혼한 아내, 즉 다른 사람의 아내였다는 것입니다. 성서의 여러 가지 사건을 보면 ‘간음하지 말라’라는 계명은 근본적인 의미에 있어서 결혼과 가정을 넘어 인류 공동체를 보호하려는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단순히 내가 결혼외의 성적관계를 갖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제7 계명을 준수하고 있다고 자위해서는 곤란합니다. 제7 계명은 성적 윤리를 규정하는 것을 넘어서 가정으로 상장되는 공동체를 지키라는 명령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늘 우리들은 어떤 공동체적 삶을 살고 있습니까? 가정은 어떠합니까? 부부사이의 관계가 사람은 공동체적인 삶을 사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함께 살면서 같은 운명을 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일방적인 관계 속에서 남편이 혹은 부인이 각각 혼자서 주도권을 잡고 상대 배우자를 무시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까?

지금까지 우리 가정들은 대개가 가부장적인 제도 하에서 여자는 꼼짝도 못하고 무조건 남편의 명령에만 복종해야 하는 그런 제도였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러한 가부장적 제도는 ‘간음하지 말라’라는 제7 계명의 깊은 의미를 위반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좀 더 평등한 가정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우리네 가정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동체적 삶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간음하지 말라’라는 계명 속에서 우리의 가정을 비롯한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를 하나님의 나라로 아름답게 만들어 가라는 하나님의 음성과 명령을 듣습니다.

그러면 이 같은 내용의 제7 계명이 우리의 삶에 주는 정신과 원리는 무엇입니까? 저는 그것을 ‘신실함’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간음하지 말라’라는 명령 속에 나타난 가정 보존의 의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가정과 나의 배우자와 나의 자녀들에게 신실해야 합니다. 신실함, 어떠한 것에도 한 눈을 팔지 않는 꾸준함은 우리의 가정을 지켜나가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 혹은 결혼계약 관계로 규정짓고 있습니다.(호세아 1장; 예레미야 2:1; 이사야 3:1, 50:1; 에스겔 16장과 23장).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정조(신실함, fidelity)를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도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 정조를 지키겠다고 약속합니다. 어떠한 일에도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간음하지 말라’라는 명령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신실함입니다.

우리는 가정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서 ‘간음하지 말라’라는 계명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모든 면에 있어서 신실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조그마한 이익 혹은 조그마한 오해 때문에 오랫동안 함께 하던 친구들에 대한 신실함을 잃어서야 되겠습니까? 신실함이라는 것은 자기 이익과 오해 등의 여러 가지 부정적인 요소들을 넘어서는 능력입니다. 신실함이 있는 사람은 배반하지 않고 늘 꾸준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많아 질 때 우리 사회는 배반의 역사가 사라지는, 다시 말하면 ‘사회적 간음’의 역사가 그 자리를 잃게 되고 말 것입니다.

인류는 ‘공동체붕괴’라는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우리 믿는 이들의 역할이 한층 더 요구되는 시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인류공동체에 대한 하나님의 확고한 섭리를 다시 굳게 확인해야 합니다. 교회가 인류공동체를 화합하게 하고 통합되도록 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차별과 혐오를 조정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간음하지 말라’의 계명은 우리로 공동체와 우리 이웃들을 향하여 신실한 삶을 살아갈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제7 계명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천해 나갈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하면서 가정을 비롯하여 공동체의 삶이 붕괴위기를 맞고 있는 인류에게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이기적인 이익을 기반으로 한 배반의 역사로 물들은 사회를 향하여 믿는 이들은 신실함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간음하지 말라’라는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한 눈 팔지 말고 삽시다. 하나님의 나라에 우리의 눈을 고정한 채 신실함을 중심으로 어떠한 어려움과 고난도 헤쳐 나가 승리하는 우리가 됩시다.

홍인식 목사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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